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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35, 키 178, SKY 졸업, 의사 집안, 대기업 과장, 도곡동 주택보유, BMW5, 영어·중국어 능통.' 필요한 기능만 갖춘 연인 로봇이라도 만들고 싶은 걸까. 그런데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나열인 것 같았다. 닮은꼴은 어렵지 않게 찾아냈다.
고사양의 노트북을 원하는 목적은 안정된 게임구동과 원활한 그래픽 작업 등이다. 기업에서 고스펙 직원을 뽑는 건 능력 있는 인재를 통한 효율적인 이익창출을 위해서다. 그럼 위의 기준을 강조하고 강요하는 소개팅의 목적은 뭘까. 능력 있는 남자를 만나 안정된 미래를 꾀해야 하지 않겠냐고 다수의 여성들은 말한다. 편의를 위해 고스펙을 찾는 건 매 한 가지란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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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팅의 합격 기준만 봐도 그렇다. 건강관리를 위해 의사를 만나거나 법률자문을 위해 변호사를 원하는 이가 얼마나 있을까. 대기업 과장의 직업의식과 업무 성취도에 홀리는 사람도 없을 거다. 수입차가 국내차보다 안전하고 서비스 보증기간이 길어서 좋다면 본인이 소유하면 되는 일이다. 직종, 자가 주택 및 차량의 유무가 그 사람의 인성이나 사랑에 대한 가치관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쩐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무기로 쓰일 확률은 높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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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할 수 밖에 없다. 개인의 능력이나 성격조차 물질적인 풍요로움과 비례한다고 여겨지는 세상이다. 오죽하면 용이 태어나는 개천은 적어도 강남에 있는 양재천은 돼야 한단 우스갯소리가 있을까. 여유가 있어야만 다양한 지적능력을 개발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린 경험했다. 지나친 결핍 없이 자란 사람이 타인을 더 배려할 수 있다는 것에도 이견이 없는 사람이 많다. 그러니 누구나 부자가 되고 싶다. 또 그런 배우자를 만나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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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많은 사람은 무조건 연애를 잘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하지만 돈 없는 남자가 편히 연애할 수 있는 세상은 더더욱 아닌 게 분명하다. 보고 싶다는 그녀에게 가기 위해선 왕복교통비가 필요하고, 편지를 쓰려면 편지지를 살 돈 정도는 있어야 한다. 나 역시 너를 사랑하고 있으니 네가 내게 더 표현을 해 달라는 남자가 얼마나 매력을 어필할 수 있을까. 밥값을 선뜻 지불하는 여자는 개념 있다며 칭송받지만 그런 데이트가 반복되면 능력 없는 남자로 평가될 뿐이다. 밥값은 내더라도 모텔비는 내기 싫다는 여자 친구와는 최소한의 사랑을 나누기도 힘들다.
이런 척박한 현실을, 여성을 나무라기만 하는 남성들에겐 확실히 조언하고 싶다. 재력은 부지런함의 척도가 된다는 것을. 물려받는 재산 때문에 시작점이 다른 경우가 많긴 하지만, 부지런히 노력하면 연애를 할 만큼의 재력은 확보할 수 있다. 여성들의 논리를 애써 반박할 시간에 한 푼의 '쩐'이라도 더 확보 하는 게 낫다. 이길 수 없는, 이겨 봤자 훈장도 없는 논쟁에 공들여 봤자 부익부빈익빈의 양극화에 일조할 뿐이다. 결혼 준비 과정에서 그 노력의 한계를 맛보는 씁쓸함이 있긴 하다. 그 부분에 대해선 다음 회에 다시 얘기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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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 있는 여자를 만나지만 본인은 돈 없는 남자가 듣는 말 : 월세 내기도 빠듯한데 데이트 비용 어떻게 감당해. 기념일에 뭐 해줬냐? 남자가 더 얻어 먹으면 욕먹어 임마. 결혼은? 모아놓은 돈 얼만데. 너희 부모님이 엄청 부자도 아니잖아. 집을 같이 한다고? 걔가 과연 진심으로 찬성할까. 대출? 아서라. 요샌 시작부터 그렇게 많은 빚내는 남자 기피하는 여자집도 많더라.
△능력 있는 남자를 만나지만 본인은 돈 없는 여자가 듣는 말 : 이게 이번에 오빠가 사준거야? 기죽지 않으려면 너도 노력해야해. 그래도 뭐 오빠가 능력 있는데 궁상맞게 살진 않겠지. 너희 회사 가까운 곳에 오빠가 집도 사 놨다며. 부럽다. 난 같이 대출받아야 하거든. 심지어 변두리 낡은 아파트. 결혼하면 일 그만둘 거야? 너무 끌려가도 나중에 기 못 펴서 힘들어. 그래도 뭐 괜찮겠지. 오빠가 널 그렇게나 많이 사랑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