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패닉, 닥치고 얼른 다 팔아"…무주식 상팔자

머니투데이 강상규 소장 2015.08.2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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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재무학]<106>항복(capitulation)이 나와야 진짜 주가 바닥

편집자주 행동재무학(Behavioral Finance)은 시장 참여자들의 비이성적 행태를 잘 파악하면 소위 알파(alpha)라 불리는 초과수익을 얻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래픽=김현정 디자이너/그래픽=김현정 디자이너


“지금 본전 얘기할 때가 아니야. 살아야 주식(투자)도 하지. 닥치고 얼른 주식 다 팔아.”

21일 한국증시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시장 패닉(panic·공포)'이었다. 북한 포격도발, 북한 '준전시상태' 선포, 북한 김정은 ‘軍 완전무장’ 명령, 우리 군 ‘진돗개 하나’ 발령 등 남북간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 고조되면서 주식시장은 온통 공포로 휩싸였다. 급기야 '공포지수(fear index)'로 불리는 코스피200 변동성지수는 이날 24.1% 급등하며, 4년 만에 최고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점심시간 식당에서 밥을 먹던 사람들의 대화 속에서도 북한 포격과 주식 얘기가 흘러나왔고, 빌딩 엘리베이터 속 직장인들이 서로 주고받은 얘기 속에도 전쟁 불안감과 주가 폭락이 빠지지 않았다. 지하철 안에서도 시민들이 휴대폰으로 들여다본 건 다름 아닌 폭락한 주가 그래프와 북한 도발 뉴스였다.



이날 한국증시는 폭락을 면치 못했는데, 코스피지수는 2.0%, 코스닥지수는 4.5% 각각 떨어졌다. 이로써 코스피지수는 52주 최저치를 경신했고, 코스닥지수는 직전 최고치 대비 20% 넘게 하락하며 베어마켓(bear market)으로 떨어졌다.

많은 투자자들이 남북간 군사적 충돌 가능성에 대해 한편으론 ‘설마’하며 농담으로 받아들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불안감을 떨쳐 버리지 못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였다. 특히 외국인과 개인은 이날 합쳐서 9800억 원 어치를 팔아 치웠고 삼성전자를 비롯한 코스피시장 시가총액 상위 5개 종목들에 대해선 투매 양상까지 보이며 주가를 2% 넘게 끌어 내렸다.



21일 한국증시가 북한 리스크 때문에 무너진 것이라면 분명 그 충격은 일시적인 선에 그치며 제한적일 것이다. 투자자들은 과거 북한의 1차 핵실험과 1차 연평해전 때처럼 북한 리스크는 오히려 매수기회라는 사실을 학습효과로 익히 터득하고 있다. 과거 북한 리스크가 발생했을 때 주가는 당일 하락했지만 2~3일 후엔 어김없이 반등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북한 리스크는 토요일 오후 전격적으로 남북간 고위급 회담이 이뤄지면서 군사적 충돌의 일촉즉발의 상황은 피해 갔다.

그런데 21일 한국증시를 공포로 몰아넣은 또다른 리스크가 있었다. 그건 바로 전일 미국증시가 2% 넘게 하락하며 올해 가장 큰 하락폭을 기록하며 투자심리를 급격히 냉각시킨 것이다.

미국증시의 하락은 중국(China), 연준(Fed), 석유가격(Oil price) 이렇게 세 요인 때문이었는데, 결국 이 세 요인 때문에 미국증시는 그 다음날에도 연이어 3% 넘게 폭락했다. 연이은 폭락으로 다우지수와 나스닥지수는 직전 최고치 대비 10% 넘게 빠지며 조정장세(correction territory)에 접어들었다. 중소형주 중심의 러셀2000지수도 조정장세에 들어갔다. 다우지수와 S&P500지수, 나스닥지수 3대 지수 모두 올해 상승분을 고스란히 반납하고 마이너스 상태에 빠졌다.


중국경제 성장에 빨간불이 켜지면서 글로벌 경제의 저성장 우려가 심화됐고, 미국 연방준비은행의 금리 인상 시기를 놓고 불확실성이 증폭됐으며, 석유가격은 2009년 3월 이후 처음으로 배럴당 40달러 깨지면서 관련주들의 폭락을 불러 일으켰다.

21일(현지시간) 미국증시도 이 세 요인 때문에 '공포지수'인 VIX가 46.5% 급등, 올해 최고치에 올랐다. 특히 공포지수 VIX는 이번 주에만 2배 이상 (118.5%) 오르며 1990년 VIX지수를 시작한 이래 주간단위로 사상 최고 상승률을 경신했다. 또한 VIX지수 월간 상승률도 기록적이었는데, 이달에만 21일까지 무려 131.3% 급등했다. 이대로라면 월간 기준으로 사상 최고치다. 결국 8월21일은 한국과 미국증시 모두 패닉에 빠지면서 '블랙 프라이데이(Black Friday)'로 기록되게 됐다.

주식시장에선 투자자들의 공포심이 극에 달하면 사람들이 주식을 내다파는 ‘항복(capitulation)'의 단계가 나타나고 증시는 이러한 투매 현상이 발생한 후에야 반등하기 시작한다는 말이 있다.

항복의 단계에선 사람들이 단 몇 푼이라도 건지기 위해 서둘러 주식을 내던지고, 다시는 주식시장에 돌아오지 않겠노라고 맹세하며 시장을 떠난다. 이때쯤 '무주식 상팔자'라는 한탄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급기야 경제부총리나 대통령이 펀더멘탈은 이상이 없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투자자를 안정시키는 말 한마디를 한다. 하지만 그 말을 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증시하락에 기진맥진한 마지막 투자자들이 다만 얼마라도 건지겠다는 마음으로 주식을 내다 팔 때까지 주식시장은 결코 회복되지 않으며, 최후의 낙관론자가 포기할 때까지 주가는 결코 회복되지 않는다.

결국 주가는 그동안 상승한 만큼은 물론이고 상승이 시작될 때보다 훨씬 낮은 수준까지 떨어진 뒤에야 하락을 멈춘다. 주가의 바닥은 누구도 주식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며 모든 사람들이 비관적일 때 비로소 형성된다.

그렇다면 21일 나타난 투매를 항복으로 볼 수 있을까? 코스피시장은 올해 상승분을 모두 반납했지만 코스닥은 여전히 올초 대비 13% 이상 올라 있다. 미국증시에서 대형주 중심의 S&P500지수는 아직 조정장세에 접어들지 않았다.

주위엔 “내 주식 좀 팔아줘요”라는 소리보다 “지금이 딱 물타기 할 기회다"라는 얘기가 더 많이 들린다. 아직 "이제 주식은 쳐다도 안 본다"고 욕하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고 "난 장기투자자야”라며 주가의 회복을 바라는 사람들이 더 많다. 게다가 아직까진 최경환 부총리나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나서 주식시장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지난 금요일 미국증시의 폭락 여파는 아직 한국증시에 반영되기 전이다. 북한 리스크 해소에 안도하기 전에 진짜 큰 '놈(=리스크)'을 어떻게 상대해야할지 걱정해야할 판이다. 많은 이들이 24일 한국증시를 우려하고 있다. 미국 증권방송 cnbc는 일요일 밤 특별 편성을 통해 24일 전개될 아시아와 유럽증시 상황을 생중계한다고 호들갑이다.

결국 이 모든 것들이 주가가 바닥을 형성했다는 신호로 보기엔 충분하지 않다. 여기저기서 주가 바닥을 찾고 있지만 아직도 주식시장은 떨어지는 칼에 가깝다. (관련기사: "지금 주식시장은 떨어지는 칼...잡으면 다친다")

너도 나도 모두 항복해야 진짜 주가 바닥이다. 아직 항복하지 않았다면 주가 바닥은 아직 멀었다. 당신도 아직 항복 안하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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