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활성화 외친 정부, 대기업·부자 증세 나선 이유

머니투데이 세종=정진우 기자, 유엄식 기자 2015.08.06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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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법개정안](종합)1조892억원 세수증대 효과, 대기업·부자가 97%(1조529억) 부담

경제활성화 외친 정부, 대기업·부자 증세 나선 이유


# 정부는 새해벽두부터 연말정산 파동을 겪었다. 3년 연속 세수가 펑크나자 정부가 직장인 등 급여생활자들의 지갑을 털어 세수를 메운다는 논란이 일었다. 가뜩이나 담뱃값 인상으로 흉흉해진 민심은 크게 요동쳤다. 정부에 대한 불신이 커졌고,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도 곤두박질쳤다. 정부는 5월초에야 연말정산 환급 등 소급입법을 통해 논란을 잠재웠다.

연초부터 홍역을 치른 정부는 한숨을 돌리고 5월말부터 올해 세제개편 방향을 잡기 시작했다. 정부 앞엔 세수부족 해결이란 목표가 놓였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대형 변수가 생겼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가 전국을 강타한 것. 수십명이 사망하고, 수만명이 격리치료를 받았다. 모든 부처를 다독이면서 세법개정을 본격적으로 준비해야할 6월, 정부는 메르스 극복에 매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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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여파 경제활성화 최우선= 메르스 여파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분기 경제성장률이 예상치보다 더 떨어지는 등 5개월 연속 0%대를 기록했다. 소비와 투자는 크게 감소했고, 고용마저 큰 폭으로 줄었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 여파로 위축된 경기가 조금씩 살아나나 싶더니, 메르스로 다시 비상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정부의 세법개정 방향도 세수확보에서 점점 경제활력 강화 쪽으로 틀어졌다. 결국 세수확보와 경제활성화란 두마리 토끼를 잡아야하는 상황이 됐다.

정부는 지난 2개월여 경제활력을 높이는 방안 찾기에 몰두했다. 고민의 고민을 거듭한 끝에 청년 일자리 확대를 답으로 제시했다. 많은 청년들이 일자리를 얻어야 미래 성장동력도 확충되고, 세금도 많이 걷을 수 있기 때문이다. 큰 방향을 청년 고용절벽을 해소로 잡았다. 그러면서 소비여건을 개선하고, 기업들의 수출과 투자를 촉진하는 방안도 만들었다. 청년 고용절벽세제와 대형가전제품 개별소비세 폐지, 수출 중소기업 부가가치세 납부유예 등이 나온 배경이다.



민생안정도 신경썼다. 근로자의 재산형성을 위해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를 도입하고 자영업자와 농어민에 대한 지원을 확대했다. 펀드 과세체계도 개편하는 등 금융세제 체계를 확 바궜다. 이같은 정책으로 세수는 약 9100억원 줄어들 전망이다. 청년고용증대세제로 1200억원, ISA로 5500억원, 해외주식투자전용펀드 신설 1000억원 등이다.

경제활성화 외친 정부, 대기업·부자 증세 나선 이유
◇사실상 대기업·부자 증세 논란= 하지만 정부의 세수확보 노력으로 전체 세수는 오히려 늘어날 전망이다. 업무용 승용차를 활용한 탈세를 막아 과세형평성을 높이고, 시설세액공제율 인하 등 대기업 대상으로 과도하게 적용했던 비과세·감면을 줄였다. 종교인 과세도 다시 추진하기로 했고, 각종 공평과세 제도를 도입했다. 정부는 이를 통해 약 2조원의 세금을 걷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결국 늘어나는 세금에서 줄어드는 세금을 차감한 1조892억원의 세수증대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세목별로 살펴보면 △소득세 3786억원 △법인세 2398억원 △부가가치세 3135억원 △기타 1573억원 등이다. 세금은 고소득자(6415억원)와 대기업(4114억원)이 97%(1조529억원)를 부담한다. 나머지 1888억원은 외국인과 비거주자가 낸다. 반면 서민·중산층은 1413억원, 중소기업은 112억원 등 모두 1525억원 세금 감면 혜택이 있을 전망이다.


이런 이유로 일각에선 부자·대기업 증세란 지적이 나온다. 앞에선 경제활성화를 외친 정부가 뒤에선 그나마 돈을 쓸 여력이 있는 고소득층과 대기업으로부터 세금을 걷는단 논리다. 그러나 정부 생각은 다르다. 기존에 보지 못했던 사각지대에 과세, 세수를 늘렸단 입장이다. 문창용 기재부 세제실장은 "경제활력의 방점은 청년과 근로자, 자영업자들의 소득을 늘리는 방향에 찍혔다"며 "경제위축을 피하면서 세수를 늘릴 수 있는 방안을 찾다보니, 무늬만 업무용 승용차와 같은 사각지대들이 보였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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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 "소득·법인세 근본적 고민 필요"= 전문가들은 정부가 마련한 올해 세법개정안과 관련해 향후 재정건전성 확보 차원의 세수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고 봤다. 향후 복지재원 마련을 위해서는 소득세, 법인세 등 주요세목의 세율과 과표구간을 비롯한 근본적 개편안을 논의해야 되는데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부가 추동력을 갖기 어려웠다는 분석이다.

홍기용 인천대 세무회계학과 교수(한국세무학회 회장)은 "올해 세법개정에 따른 세수효과는 향후 5년간 1조원 안팎으로 예년보다 크지 않은 편"이라며 "올해 연말정산 파동과 최근 경기침체 현상을 반영해 추가 세원발굴보다는 경기활성화에 초점을 맞춘 것 같다"고 말했다.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는 "이번 세제개편안의 세수효과로는 향후 소요될 복지재원 마련에 턱없이 부족하다"며 "소득세, 법인세 등 중요 세목의 세율, 과표구간 등 전체적인 틀을 바꾸는 논의가 계속돼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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