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성희롱 고발 당한 A교수 "결백하지만 삶은 이미…"

모두다인재 김현정 기자 2015.07.28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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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희롱 '올무' 걸리면 진실 가릴 새도 없이 낙인효과로 파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여성 조합원이 지난 3월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세계 여성의 날을 홍보하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사진=뉴스1 제공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여성 조합원이 지난 3월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세계 여성의 날을 홍보하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사진=뉴스1 제공


#성희롱을 했다는 의혹을 받은 A교수는 '자신은 결백하다'고 토로했다. 피해자의 말은 대부분 사실이 아니라는 것. 조용히 넘어가길 바라는 학교 측의 입장에 지위를 보장받기 위해서 처분에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억울함을 밝힐 수 있는 증거를 확보하고 있다는 그는 최근 소송을 진행 중이다.

우리사회에서 성희롱이라는 단어는 굉장한 민감성을 지닌다. 특히나 위계질서가 명확한 조직사회에서 벌어지는 권력형 성희롱의 경우 가해자는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는 것도 모자라 영영 재기가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



성희롱은 성에 관계된 말과 행동으로 상대방에게 불쾌감 또는 굴욕감 등을 주거나 고용 상에서 불이익을 주는 등의 피해를 입히는 행위를 가리키며, '양성평등기본법 제3조 2항', '남녀고용평등 및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국가인권위원회법' 등에 성희롱을 방지하기 위한 조항이 규정돼 있다.

이는 대학사회에서 보다 엄격하게 적용될 수 있다. 도덕적 잣대가 일반 사회집단에 비해 높고, 스승과 제자라는 사회적 관계는 '성(性)'과 관련된 그 어떤 행위도 허락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교수가 제자 혹은 동료를 성희롱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 사실 여부의 판단 이전에 파렴치한으로 낙인이 찍히는 것이 일반적인 상황이다.



A교수는 "사건이 불거진 그날 이후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 바깥에 나갈 수가 없었다"며 "억울함을 당장이라도 밝히고 싶지만 법정 소송에 가서 제가 한 일이 아니라는 판결을 받기 전까지 달라지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성희롱은 마땅히 지탄받아야 할 행위임은 분명하다. 또한 대학에서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학생이 있다면 교수에게 그 책임이 있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상대적으로 사회적 약자인 학생 입장에서 교수를 고발하는 것은 불이익에 대한 각오와 큰 용기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신진희 피해자 전담 국선변호사는 "대학에서 피해자가 어떠한 일을 당했다고 진술을 하게 되면 교내 양성평등센터에서 조사를 하게 되고, 당시 그런 정황이 분명히 있었다면 진술의 신빙성이 입증되는 것"이라며 "내부에 있었던 일을 피해자가 굳이 악의적으로 신고할 일은 보통 없다"고 설명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교수와 제자의 관계는 권력을 가진 자와 권력을 가지지 않은 자와의 관계인데, 관계 자체가 이미 불평등하다"며 "그런 점에서 성희롱이나 성추행과 같은 도덕적인 문제가 불거졌을 때에는 그런 말이 나오도록 한 교수에게 책임이 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성희롱의 특성상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은 무고함을 밝히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통상 물증이 없어 말이나 행동을 증거로 제시해야 하기 때문에 반박이 쉽지 않다. '성희롱 교수'라는 낙인이 한 번 찍히면 공평한 여론이나 처분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신 변호사는 "성희롱의 경우 모함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며 "구체적인 시간과 날짜에 피해 여성이 가해 교수의 방이 아닌 다른 곳에 있었다는 알리바이 등을 입증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가해자 입장에서 누명을 벗는 것이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런 점에서 성희롱이 집단에서 상대방을 견제할 수 있는 도구로 전락했다는 의견도 나온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과거 남성 우월적인 지위를 이용한 권력형 성희롱에 대한 문제 제기는 옳지만 성희롱이 어느 순간 사람을 낙인찍는 수단화, 도구화가 됐다"며 "모성의 가치와 성윤리에 관련된 것들은 우리 사회에서 민감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우리사회의 집단 문화인 한풀이 문화는 권력을 가진 자에 대한 문제 해결을 구조적인 차원에서 시도하기 보다는 일순간의 감정을 쏟아 붓는 형태로 이뤄졌다"며 "성희롱이라는 단어의 민감성과 한풀이 문화가 결합해 한국사회에서 한 사람을 매장시키는 전략이 생겨났다"고 전했다.

이에 독립성과 중립성을 가진 대학 내 전담기구를 통해 가해 의혹 당사자와 피해자 간에 종합적인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구 교수는 "비단 성희롱 문제 뿐 아니라 학생과 교수, 대학 구성원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인권 침해적이고 파벌적인 관행들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대학마다 독립적인 전담 기구를 구성해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억울한 측면이 없도록 엄격한 조사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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