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 나무에는 좀 문제가 있다. 일단 거의 매년 벌레가 낀다. 5월 정도엔 잘 모르겠다가 6월경부터면 나뭇잎 2/3 정도와 감 열매에 하얗게 벌레들이 낀다. 유전적으로 벌레가 잘 끼는 건지? 둘째, 감나무들이 밀집해 있어 다른 감나무를 오염시킬 위험성이 높았다. 셋째, 나무 가지와 잎이 주차장으로 넘어 들어와 가을이면 밑에 세워 둔 차들에 익은 감(작은 감이 참 많이도 달린다.)들이 툭 툭 떨어져 감칠을 해 놓는다. 그래서 관리사무소에 수년 째 이 나무를 잘라달라고 했는데 ‘다른 동민들이 동의할지 모르겠다.’, ‘그래도 큰 나무인데 아깝지 않냐’, ‘비가 많이 오면 벌레는 없어진다' 등의 이유로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었다.
여러분은 이 ‘앞의 감나무’ 현상에서 무엇을 보시겠는가?
다 다르겠지만 나는 ‘기성권력’과 ‘나’가 떠올랐다. 나무는 크나 부분 벌레 먹고 매년 벌레 먹으며 사람들의 시선까지 병들게 만들며 주차장까지 넘어 들어와 차를 더럽히는. 사실 정치, 재계, 언론, 예술계, 교육, 지역 권력 등에 그런 ‘앞의 감나무’ 현상은 꽤나 보이지 않는가! 방정환 선생은 1930년에 이미 “삼십년 사십 년 뒤진 뒷사람들이 삼십년 사십년 앞 사람을 잡아끌지 말자. 그래야 밝은 데로 나아갈 수 있고 새로워질 수가 있고 무덤을 피할 수 있는 것이다”라는 말씀으로 ‘앞의 감나무’ 현상이 초래하는 위험을 경고했었다.
그러나 그런 기성권력과 뒷사람인 감나무들은 오히려 자신들의 존재 크기를 더 부각시켜왔음을 우리는 안다. 지금 2-30대 신세대들을 잉여니 행동 불능이니 꿈이 없는 세대니 부르며 조롱하고 비웃는 짓들도 일견 그런 것들로 보인다. 가려져 있는 감나무일지도 모르는데. 시청률과 인기에만 목을 매는 방송이나 언론, 연예계도 그런 앞의 감나무를 그냥 두거나 심지어 부각시키는 일들을 하고 있는 게 심심치 않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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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에서도 '미생'의 마부장 같은 사람들은 관록을 작은 감 열매처럼 주렁주렁 달고 자랑하나 그 감 열매는 이젠 벌레 먹은 것일지도 모른다. 정년 연장? 가정의 안녕과 그동안 수고한 세대의 노후 보장이란 취지는 좋으나 그에 기생하여 앞의 감나무가 되는 것은 스스로 막아야 한다. 정년 연장보다 중요한 게 사회와 생태계 건강성이다. 세상엔 조경 담당이 없다. 그러니 스스로 가지를 쳐라. 가지를 친 그 감나무는 비로소 살아 있는 것처럼 보였고 세 그루 나무는 서로가 다 커보였다.
그럼 나는? 문득, ‘나도 그 앞의 감나무?’ 공포감이 든다. 내 안의 벌레와 더러움, 내가 넘어 들어간 주차장 공간. 살피고 또 살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