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줌의 후회도 가책도 망설임도 없”는 ‘남편 살인’을 다룬 추리소설이지만 격차사회의 명암, 황혼 이혼 등 진지한 주제들이 배경에 깔려 있기에 결코 가볍지만은 않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또 어떤가? 그의 소설들은 개인의 겪는 우연한 사건이 세계사적인 변전과 맞물려 있음을 제대로 보여준다. ‘용의자 X의 헌신’은 순애소설을 좋아하는 독자까지 끌어들이기 위해 여성의 흥미를 끄는 제목과 표지를 선택해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니 이 소설이 한국에서 장기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일 것이다.
오쓰카 에이지는 “사회 속에서 점점 더 자아실현을 하기 힘든 상황에 놓여” 있는 현대인들은 ‘이야기’가 만들어놓은 “가공의 세계 속에 틀어박혀 놀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문화상품을 인터넷을 누비며 자유롭게 소비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니 젊은이들이 이야기를 직접 만들어보기를 권유한다.
그럼 한국문학에서 이야기성이 강한 소설을 내놓는 작가는 누구인가? ‘내 심장을 쏴라’ ‘7년의 밤’ ‘28’ 등 세 소설만으로 ‘하나의 현상’을 만들어낸 정유정은 간호사 출신이다. ‘달려라 아비’ ‘두근두근 내 인생’의 김애란은 극작과를 다녔다. ‘고래’ ‘고령화 가족’ ‘나의 삼촌 브루스 리’ 등 ‘영화 소설 3부작’의 작가인 천명관은 10년 동안 시나리오를 쓴 경험이 있다. ‘살인자의 기억법’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의 김영하는 경영학 전공자였다. 이들이 모두 문체를 강조하는 문예창작과 출신이 아니라는 것에 우리는 희망을 걸어볼 만하다. 참, 오구다 히데오는 광고기획사에 다닌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