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치리포트]'가족'의 진화

머니투데이 황보람 박소연 이미영 , 그래픽=이승현디자이너 기자 2015.07.0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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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종합)

동성·동거·사실혼은 '불건강?'…한국의 '법외가족'

2013년 12월 서대문구청으로부터 혼인신고 불수리 처분을 받은 영화감독 김조광수 씨(오른쪽)와 김승환 레인보우 팩토리 대표가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동성간 혼인신고 불수리 불복 소송 제기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김조광수 감독은 이날 "5월 21일 부부의 날을 맞이해 한국 사회에서는 처음으로 성소수자의 결혼평등을 위한 소송을 제기한다"며 "우리는 이 소송을 통해 성소수자들이 평등한 권리를 보장받고 더 나아가 모든 이들이 어떤 혜택이나 권리에 배제되지 않고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만들 수 있고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보장받는 사회를 앞당기고자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뉴스12013년 12월 서대문구청으로부터 혼인신고 불수리 처분을 받은 영화감독 김조광수 씨(오른쪽)와 김승환 레인보우 팩토리 대표가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동성간 혼인신고 불수리 불복 소송 제기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김조광수 감독은 이날 "5월 21일 부부의 날을 맞이해 한국 사회에서는 처음으로 성소수자의 결혼평등을 위한 소송을 제기한다"며 "우리는 이 소송을 통해 성소수자들이 평등한 권리를 보장받고 더 나아가 모든 이들이 어떤 혜택이나 권리에 배제되지 않고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만들 수 있고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보장받는 사회를 앞당기고자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뉴스1


미국 연방대법원이 동성결혼을 허용하는 판결을 내리고, 국내에서도 관련 소송이 제기되면서 '새로운 형태'의 가족에 대한 재인식 문제가 화두가 되고 있다.

'소수자 인권'차원의 동성혼 문제 이전에 사실혼이나 동거 등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다양한 가족 형태를 법적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지만 국회에서 관련 논의는 더딘 상태다.



6일 한국에서는 최초로 '동성혼 허용' 관련 재판이 열렸다. 이번 소송은 2013년 결혼식을 올린 김조광수 감독과 김승환씨가 서대문구청이 혼인신고서를 '불수리처분'한 데 대한 불복소송으로 진행됐다.

당시 서대문구청은 "민법상 당사자 간의 혼인의 합의가 없다"는 이유로 혼인신고를 수리하지 않았다. 이에 두 사람과 성소수자 가족구성권 보장을 위한 네트워크는 동성혼 소송을 제기했다.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법외가족'은 동성혼 뿐 아니라 사실혼이나 독신가구, 동거가구 등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통계청의 2010년 인구주택 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혼과 이혼은 계속 증가 추세에 있으며 한부모 가족 비율 또한 전체 가구수 대비 2000년 9.4%에서 2010년 11.1%로 점점 늘고 있다.

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지난해 '성적지향·성별정체성 법정책연구회'가 조사한 '한국 LGBT(성적소수자) 커뮤니티 사회적 욕구조사 보고서'에서는 전체 응답자(3159명)의 45.3%가 현재 연애관계를 맺고 있으며 이 가운데 25.5%는 동거중이라고 답했다. 또 40대 이상 응답자의 절반 이상(51.2%)은 5년 이상 관계를 지속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지표들은 우리 사회 가족 구성이 '전형적'인 형태에서 벗어나 점차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같은 현실을 반영, '법외 가족'을 구제하기 위한 법안이 국회에 상당수 발의됐지만 논의 과정은 보수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차별금지법안'이 있다. 2013년 2월 김한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을 중심으로 총 51명이 이름을 올린 '차별금지법'은 발의된지 2달여 만에 '철회'됐다. 김 의원안보다 일주일 늦게 제출된 같은당 최원식 의원안도 같은날 철회됐다.

결정적 철회 이유는 "법안이 지나치게 포괄적이어서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기독교계 등의 반발이었다. 현재 국회에 계류중인 차별금지법은 지금은 해산된 통합진보당의 김재연 전 의원이 발의한 법안뿐이다.

당초 포괄적 차별금지법안은 유엔 인권이사회 등이 한국에 채택하도록 권고하고 촉구하면서 급물살을 탔다. 대부분의 인권 선진국에서는 이를 채택하고 있다.

국회에서는 새로운 가족구성을 인정하고 가능성을 모색하는 '선언적'인 내용의 법안조차 문턱을 넘지 못하는 상황이다.

남윤인순 새정치연합 의원이 지난해 4월 발의한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의 경우 기존의 가족 형태만을 '건강하다'고 정의한 법안의 성격 자체를 재정립하는 내용이지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가로막혔다.

현행 건강가족기본법에서는 '가족'을 '혼인 및 혈연, 입양으로 이루어진 사회의 기본 단위'로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가족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조장하고 있다는 게 남 의원의 설명이다.

개정안은 법안의 명칭을 '가족정책기본법'으로 바꾸고 '건강가정'이라는 편향된 가치가 내포된 표현을 사실상 '가족'으로 통일하는 내용이다. 이 안은 담당 국회 상임위인 여성가족위원회에 상정된 후 3차례 법안심사소위를 거쳐 상임위를 통과했고 법사위로 넘어갔다.

법사위 논의 당시 서기호 정의당 의원은 '시급한 법안'이라고 주장했지만 이한성 새누리당 의원이 "2소위에서 논의하자"는 의견을 내면서 통과되지 못했다. 이후 법사위 2소위에서 해당 법안은 한번도 논의되지 못했다.

'법외가족'에 대한 국회의 벽이 높은만큼 '차별금지법'에 버금가는 법안은 뒤따르지 못하는 실정이다.

진선미 새정치연합 의원은 '생활동반자에 관한 법안'을 지난해부터 준비중이지만 발의하기까지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진 의원 측은 "생활동반자법안 관련 토론회를 이미 한차례 열었고 총 3번의 토론회를 거쳐 법안을 다듬을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호주제 폐지에 멈춘 가족법 개정, '소수가족' 논의 정체

[런치리포트]'가족'의 진화
유교적 종법제를 근간으로 한 남계혈통 중심의 우리나라 가족법은 남녀평등과 양성평등에 초점을 맞춰 개정돼왔으며 그 결과 '호주법 폐지' 등 굵직한 성과를 냈다. 그러나 법의 사각지대를 해결하고 사회변화에 따른 새로운 가족제도를 포괄해야 하는 차원까지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 가족법은 2005년 전통적 가족법의 골격을 형성하고 있던 동성동본불혼제도와 호주제도 등이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폐지되는 역사적 성과를 거뒀다.

혼인신고시 부모 협의로 자녀가 모(母)의 성과 본을 따를 수 있도록 하고 자녀가 원하면 부모와 협의 후 법원의 허가를 얻어 성과 본을 변경할 수 있게 되는 등 '부성(父姓) 추종'도 완화됐다. 여성의 재혼금지기간 삭제, 친양자제도, 입양숙려제 도입 등의 성과도 거뒀다.

이처럼 가족법의 '큰 틀'이 선진화된 이후 한국의 가족제도는 현실에서 새롭게 출현하고 있는 형태의 가족을 제도에 포함시키고 이들이 겪는 제도적 차별을 완화해야 하는 단계에 직면했다.

저출산과 청년실업, 고령화로 인한 혼인율 감소, 주거난 등은 한국인끼리의 '혼인'으로 맺어진 전통적 가족이 아닌 1인 가구, 동성 가구, 동거 가구, 한부모 가족, 다문화가족 등 '대안적 가족'을 탄생시켰다. 이들이 사회에서 배제되지 않고 함께 살 수 있도록 사회복지, 주거, 의료, 세제, 금융, 입양, 교육, 상속 등의 제도를 정비하는 문제에 맞닥뜨린 것이다.

헌법 제36조 제1항은 혼인과 가족생활에 관해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고 규정해 혼인 및 가족제도를 자율적인 개인 선택에 의한 기본적 인권의 제도화로 보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보다 보수적인 법률은 현실에서의 혼인이나 가족에 대한 개인 욕구와 가족형태의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호주제 폐지'와 같이 '큰 변화'는 변화의 필요성이 20~30년간 사회적으로 충분히 공론화됐고 워낙 전근대적 상황에서의 변화라 대중을 설득하기 비교적 쉬웠던 반면 현재의 '소수자', '사각지대'에 대한 제도는 '가치'의 문제라는 성격상 광범위한 공론화나 사회적 동의를 얻기 어렵기 때문이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관계자는 "예전엔 법제도 자체가 없거나 매우 보수적이었는데 호주제를 폐지하고 한부모가족 지원법 마련으로 미혼모를 지원하는 등 큰 변화를 이뤄냈다. 국제무대 나가도 전반적인 법제도는 뒤지지 않는 편"이라며 "하지만 지금은 큰 틀이 짜여진 상태에서 사각지대를 찾거나 현실과 법 작동이 맞지 않는 부분들을 찾는 것이기 때문에 변화가 예전보다 어렵다"고 설명했다.

'신(新) 가족법'은 '가치'의 문제를 수반하며, '가치' 그 자체이기도 하다. 대안적 가족형태를 제도 안으로 받아들일지, 어느 선까지 인정할지, 법외가족을 이루고 사는 이들의 인권을 어디까지 존중할지의 문제가 논의의 중심에 있다. '가치'와 '담론'이 중요하기에 다른 법에서는 관심의 대상도 되지 않을 '단어 하나'를 놓고 수년간 논의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젠더 감수성, 인권 감수성을 갖지 않고는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운 법안이 많다.

현재 국회에서 논의 중인 신 가족법 중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은 '건강가정'이라는 용어를 삭제하고 다양한 가족 및 가정형태에 걸맞게 법률을 개정하는 것을 주 목적으로 한다. 여성계에서는 제정 직후부터 수년간 개정운동이 있었으며 국가인권위원회도 이미 2005년 여성가족부에 "국민의 일상생활속에서 혼인․혈연․입양에 기초하지 않은 가족형태 및 가정형태에 대한 차별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며 법률명 수정을 권고했을 정도로 해묵은 논의다.

그러나 정작 국회엔 이 같은 법안을 제대로 이해하고 제도 변화를 주도할 의원들이 많지 않은 형편이다. 국회 여가위는 겸임상임위라 의원들이 업무에 집중하기 어렵고 예산도 적다. 여성 의원 단 1명에 율사 출신 40~50대 남성 의원들로 이뤄진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여가위 법안이 심도있게 논의되길 기대하긴 어렵다. 건강가족기본법 개정안은 결국 지난 2월 국회 법사위에서 "이 법이 이름을 바꾸는 것인가"라는 한 의원의 몰이해적 발언과 함께 2소위에 계류됐다.

주무부처인 여가부의 애매한 정체성도 제도변화를 더디게 한다. 일례로 '여성발전기본법'은 여성정책의 초점이 여성의 지위향상에서 '성평등'으로 변화하는 흐름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에 따라 2004년부터 '성평등 기본법'으로 바꾸자는 논의가 계속됐으나 결국 지난해 '양성평등기본법'으로 전부개정안이 의결됐다. '성소수자'를 인정한다는 '주홍글씨'를 피하기 위해 스스로 타협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가족법은 여가부가 주무부처이지만 대부분 법무부, 기획재정부, 보건복지부 등 다양한 부처와의 협의를 필요로 하는데, 이 때 여가부가 힘이 부족해 뚜렷한 정체성을 갖고 의견을 관철하지 못하는 것도 구조적 문제로 지적된다.

한 여가위 관계자는 "여가부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 중 하나가 성소수자를 인정하는 부처로 되는 것"이라며 "여성혐오 분위기에서 혐오 부처 오명을 벗으려고 발버둥을 치는데 그럴수록 정체성을 살리기 어렵다. 보다 정확하고 당당하게 아젠다를 제안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신가족법=동성애법? 보수·종교계 극렬반대에 번번이 좌초

2013년 4월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차별금지법 반대 범국민연대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차별금지법안이 국가정체성에 혼란을 준다고 밝히며 차별금지법안을 폐기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뉴스12013년 4월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차별금지법 반대 범국민연대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차별금지법안이 국가정체성에 혼란을 준다고 밝히며 차별금지법안을 폐기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뉴스1
법외가족을 제도 안으로 끌어들이는 '신 가족법'에 대한 가장 강력한 비토세력은 보수·기독교 단체다.

6일 국회에 따르면 2013년 2월 김한길·최원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각각 대표발의한 차별금지법안은 보수·기독교 단체의 극렬한 반대에 부딪혀 모두 2개월 만에 전격 폐기됐다.

이 법은 성별·장애·나이·출신국가·출신민족·인종·피부색·출신지역·용모·학력·혼인상태·종교·정치적 성향·가치관·성적지향·성정체성 등 합리적 이유가 없는 모든 형태의 차별을 금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으로 '신 가족법' 제정의 근거가 되는 선언법적 성격을 띤다.

이미 노무현 정부 말기인 2007년 법무부가 차별금지법 제정을 예고했다 논란을 겪은 뒤 자동폐기된 바 있다. 박근혜 정부는 2013년 유엔인권이사회의 권고에 따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절부터 국정추진과제로 이 법 제정을 추진해왔다. 대부분의 인권 선진국은 이미 채택하고 있으며 강력한 처벌을 수반하는 법률이 아님에도 개신교 진영은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이 금지된다는 이유로 이 법을 '동성애 촉진법'으로 규정, 반대운동을 전개했다.

김한길 의원 측은 수개월간 이어지는 거리집회와 수만장의 전단 배포, 1000만인 서명운동 등 조직적 대응을 견디지 못하고 '항복'을 선언했다. 김한길·최원식 의원은 공동발의자로 참여한 의원들에게 이메일을 통해 "오해를 넘어 지나친 왜곡과 곡해가 가해져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토론이 어려운 상황"이라며 "'주체사상 찬양법', '동성애 합법화법'이라는 비방과 '종북·게이 의원'이라는 식의 낙인찍기까지 이뤄졌다"고 털어놨다.

다수의 여가위 의원실에 따르면 '신 가족법' 등 평등법이 발의되면 이들 단체는 조직적으로 의원실에 같은 내용의 항의전화를 걸어 업무를 마비시키고 '지역에 발 못 붙이게 하겠다', '낙선운동 하겠다'고 협박을 가한다.

한 여가위 야당 관계자는 "의원들이 이걸 견디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몇주간 의원활동 자체를 불가능하게 하는데는 버티기 힘들다"고 말했다.

현대사회에서 이익단체들이 자신과 관계된 제도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문제는 이들 대부분은 법안이나 제도의 내용을 모른 채 자기식대로 잘못 해석하고 무조건적인 반대세력으로 활동한다는 데 있다.

여가위 여당 관계자는 "이들은 신문에 법안 반대광고도 내면서 막상 같이 얘기를 깊게 해보면 내용을 몰라서 스스로 얘기를 접는 경우가 많다. 반대를 위한 반대가 대부분"이라고 귀띔했다.

기존 혈연 및 혼인관계를 뛰어넘는 다양한 형태의 생활동반자관계에 대해 법률적 보호를 제공하는 '생활동반자법' 토론회를 지난해 7월 열고 발의를 예고한 진선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공식사이트는 1년간 '철회 요청'으로 뒤덮였다.

"동성애법의 우회법률이다", "당신의 아들 딸이 에이즈로 죽는다고 생각해보라"는 공격적인 청원이 넘쳐난다. 이 법은 이미 독일·프랑스 등 유럽에서 시행되고 있으며, 주 목적은 현재 실재하는 결혼 밖 가족들에 대한 기본적 권리보장인데도 모든 가족법 개정에서 일부에 불과한 '동성애 허용'만 관심사로 떠올라 정말 필요한 입법까지 막히고 있는 것이다. 국회에서는 이 법안의 발의 자체가 어려울 것이라는 회의론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이들 소수 단체로 제도의 명운이 결정될 만큼 소수자의 인권이나 평등에 대한 사회 전반적인 인식이 부족한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유엔의 권고가 끊임없이 이어져온 차별금지법은 의원입법이 아니라 정부안으로 발의하고 국가가 나서 제도의 필요성과 의의를 설명하고 교육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여가위 여당 관계자는 "국민들을 이해시키는 것은 여가부 혼자 할 수 없다"며 "대통령이 한 말씀 해주시거나 국무총리 산하에서 인식개선과 인권 교육을 담당해야 한다. 무엇이 국가 전체적으로 볼 때 필요하고 옳은지 판단하고 국민을 설득해 관철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가족', 외국선 어디까지 인정되나

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유럽·북미 등에선 가족의 범위를 확대하는 법안이 수십년 전부터 논의돼왔다. 가족의 다양한 형태를 인정하고 개인의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성인 남녀 절반 이상이 동거로 가족을 시작하는 스웨덴과 같은 북유럽 국가가 대표적이다. 스웨덴에선 동거문화가 1960년대 부터 생기기 시작했다. 남녀간 동거를 선택하는 가구가 많아지자, 스웨덴에선 1988년에 동거인법이 도입됐다. 동거 결합을 한 커플의 '사실혼' 지위를 법적으로 보장하는 것이다.

이 법은 2003년 동거에 대한 법적 지위를 명확화하는 형태로 발전했다. '성(性)'과 관계없는 동거인에게도 적용할 수 있게 하는 내용도 이때 도입됐다. 동성 결합을 사실상 인정하는 내용을 법안에 포함시킨 것이다.

이 외에도 동거관계가 끝나더라도 약자의 지위에 있는 동거인에게 법적 안정장치를 마련하는 형태로 발전했다. 동거인과 별거하거나 사별하는 경우, 같이 살 동안 소유했던 재산을 분배받을 수 있는 권리를 인정했다. 또한 동거가 사회적으로 법적으로 인정되는 결혼과 동등한 수준의 시민적 지위(Civil Status)를 부여받는다. 관공서 문서나 각종 신청서의 "Civil Status"는 미혼, 결혼, 이혼 및 동거로 분류되어 있다. 자녀교육, 복지도 결혼한 가정과 동일하게 적용된다.

프랑스에선 동거가 결혼 전 하나의 '사전단계'로 인식되고 있다. 본격적으로 프랑스 정부가 동거 결합을 법적으로 인정한 것은 1999년 도입된 '팍스'(Pacte civil de solidarité-시민연대협약) 이후다. 이는 동거하는 커플들이 법적인 혜택을 얻기 위해 법원에 둘의 동거에 대한 '계약'(contrat)을 신고하는 제도다. 동거 결합을 한 커플이 소득에 대한 세금 공제를 비롯, 유산 상속, 연금, 보험 등을 일반 부부와 똑같이 인정한다.

미국, 호주 등에서는 'domestic partnership'(지역 파트너십)의 형태로 동거 결합을 인정한다. 미국에서 혼외 가족에 대한 논의는 1979년부터 이뤄졌다.

유럽에선 동거 결합 인정이 가족에 대한 인식 변화와 사회 흐름이 반영됐다면, 미국에서 동거결합에 대한 법적 지위는 '동성' 결함을 인정해 달라는 요구에서 시작됐다.

미국에서 가장 먼저 '지역 파트너십'을 인정한 주는 샌프랜시스코였다.1989년 논란 끝에 도입된 이후 결혼을 하지 않은 동거인에게도 고용보험과 의료보험을 확대했고, 재산 분할권도 인정했다. 주 별로 그 형태와 도입 시기는 조금씩 다르지만 캘리포니아, 네바다, 위스콘신 등 8개 주와 호주 뉴질랜드 등지에서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법이 사회적 갈등 없이 추진 된 것은 아니다. 프랑스가 팍스를 도입하기 까지 수년 간 보수단체의 반대를 설득해야 했다. 특히 동성 결합을 법적으로 허용하는 장치일 뿐이라는 비판도 수없이 받아왔다.

미국도 비슷한 상황을 거쳤다. 동성 결합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동거 제도를 적극 추진하면서 사회적으로 반대에 부딪혔다. 그나마 진보적인 주인 캘리포니아주에서 먼저 이 제도가 도입된 후 일부 주에서 동거 제도를 인정했다. 워싱턴 주의 경우, 동거를 62세 이상에게만 인정하는 제한도 이러한 고민에서 비롯된다.

여성가족위원회 관계자는 "가족법 확대가 국가별로 사회적 배경이난 역사적 흐름에 따라 다양하게 진행돼 왔다"면서도 "그러나 국내 동거 결합을 제도화 하려는 것은 동성간 결합보다 기존 동거 커플에게 제공되지 않았던 법적 안전장치를 보호하려는 목적이 강하다는 측면에서 논의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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