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일본 전자산업'을 취재하기 위해 들렀던 3년 전 일본은 위기감에 휩싸여 정치와 경제가 모두 불안한 상황이 느껴졌다. 하지만 3년만에 다시 찾은 일본은 20년 장기침체의 불황에서 '희망'이라는 단어를 보고 있는 듯 활기가 느껴졌다.
◇일본 D램 희망 엘피다는 사라졌지만=그리스 신화의 판도라 상자에 마지막으로 남은 '희망(Elpis: 엘피스)'. 그 이름을 따서 한국에게 빼앗긴 메모리 반도체의 헤게모니를 되찾겠다던 마지막 희망이었던 '엘피다메모리반도체'의 간판은 사라졌지만, 또 다른 희망이 일본 내부에서는 피어올랐다.
3년 만에 다시 찾아간 도쿄역 맞은편 스미토모생명 야에스 빌딩 3층에는 여전히 초라한 안내 데스크에도 불구하고, 엘피다를 인수한 미국 마이크론테크놀로지의 간판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6월 17일 아침 오사카현 가도마시에 위치한 파나소닉 본사에 위치한 창업자 마쓰시타 고노스케(동상)의 기념관 앞에 신입사원들이 모여 있다.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한 때 일본 내에서는 '경영의 신'으로 불린 인물이다./사진=오동희 기자 hunter@
니시타나베역 바로 옆에서 약 30년간 한식당인 우심(牛心)을 경영하는 심미향 사장은 "샤프가 돈을 많이 벌 때는 이 인근에 100여개의 술집이 성황을 이뤘지만 샤프가 어려움을 겪은 이후 거의 문을 닫았다"고 말했다. 줄지어 기다리고 있던 택시들도 모두 사라졌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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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노믹스로 인한 기업 회생의 희망가가 샤프에게까지는 미치지 못하고 있었다. 샤프는 니시타나베역 인근 본사 빌딩매각과 희망퇴직 및 임금동결 등의 구조조정에도 지난해 2000억엔(약 1조 8000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샤프 내 엔지니어들은 인근의 소형 가전 업체들로 옮겨가고 있다는 게 현지 주민들의 얘기다.
오사카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히노 요시히로씨는 "신문이나 이런 곳에서 좋아졌다고 하는데, 오사카는 전혀 좋아진 것 없다"며 "일본 내에서도 아베노믹스의 성과에 대해 좋다, 나쁘다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고 전했다.
반면 오사카시에서 고속도로로 20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가도마시(市)에 위치한 파나소닉(마쓰시타)은 샤프에 비해 회복세가 완연하다.
이 회사의 창업자 기념관에서 만난 회사 관계자는 "회사가 좋아지면서 마쓰시타 고노스케의 기념관을 찾는 신입사원들의 수도 늘어났다"고 말했다.
파나소닉은 신입사원들의 교육 과정 중 마쓰시타 고노스케의 기념관을 찾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최근 신입사원 채용이 늘면서 방문자도 자연히 증가했다는 것.
익명을 요구한 일본기업경제연구소의 CEO는 "아베노믹스는 기업을 잘하기 위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지 기업을 살리는 프로그램은 아니다"며 "근본적으로 기업이 살아나는 것은 스스로의 경쟁력에 달렸다"고 말했다. 샤프의 위기와 마쓰시타의 회복은 각각 구조조정이 잘 됐느냐 못됐느냐에 따른 결과라는 게 그의 말이다.
인력개발 회사인 파소나(PASONA)의 이시다 마사노리 취제역전무집행역원 영업총본부 부총본부장(石田正則)은 "최근 경기가 살아나면서 외국으로 나간 기업들이 일부 회귀하고 있다"며 "업계와 업종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대기업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6월 15일 찾아간 오사카시 니시타나베역 인근에 위치한 샤프 본사의 저녁은 한때 세계 전자산업을 호령했던 위용은 사라지고, 한적한 거리에 어두운 불빛만 가득하다./사진=오동희 hunter@
후카가와 교수는 특히 해외자산이 많은 대기업은 경상흑자로 전환했지만 자산이 없는 중소기업들은 더 이상의 엔저가 지속되면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아베노믹스가 3년 정도 됐는데 , 과거 정부가 대책 없이 엔고를 뒀다는 기억이 기업들에게 있기 때문에 기업들은 엔저, 엔고 등에 대비해 적당한 포트폴리오 갖춰 영향이 크지 않다"고 말했다.
"전력, 법인세, 인건비, 엔고 등 6중고였던 일본이 엔저로 만세 부를 일이 없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