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팩트]우주인 이소연을 그만 놔주자

머니투데이 류준영 기자 2015.06.24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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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 활동 과학자의 '노블리스 오블리제'…민간외교활동으로 韓 국제적 위상 높였다고 보면 안되나

편집자주 보도되는 뉴스(NEWS)는 일반 시청자나 독자들에게는 사실(FACT)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뉴스가 반드시 팩트가 아닌 경우는 자주 있다. 겉으로 보이는 것만이 진실은 아니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발로 뛰는 머니투데이 베테랑 기자들이 본 '뉴스'와 '팩트'의 차이를 전하고, 뉴스에서 잘못 전달된 팩트를 바로잡고자 한다.

이소연 박사/사진=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소연 박사/사진=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한국 첫 우주인' 이소연이 최근 미국 우주 관련 민간 교육 프로그램에 강연자로 참여해 또 다시 여론의 따가운 눈초리를 받고 있다.

24일, 미국 오하이오 대학에서 시작된 국제우주대학(ISU) SSP15(Space Studies Program 2015)에서 '우주인에 물어보세요'란 강좌에 연사로 참여한 게 언론보도로 알려지면서 논란의 불씨가 됐다. SSP는 우주 전문가 양성을 위한 9주짜리 프로그램.



누리꾼들 반응은 이번에도 냉소적이다. 한마디로 압축하면 "거액의 나랏돈(265억원)을 투자해 우주인으로 키워놨더니 정작 한국인이 아닌 해외에서 우주인 경험·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는 비난 일색이다.

누리꾼의 이런 반응은 '한국 떠난 한국 첫 우주인, 美 우주교육 프로그램 활동 드러나'란 제목과 관련 기사에서도 알 수 있듯 이소연씨에 대한 비난 기사로 시작됐다. '260억원의 지원'을 받은 자가 배은망덕하다는 논리다.



지난 2012년 8월, 경영학 석사(MBA)과정을 밟기 위해 항우연에 휴직계를 내고 미국 유학길에 올랐던 그가 '돌아오지 않는' 선택을 했으니 비판받아 마땅하다는 시각도 있다.

◇ 약속위반의 아쉬움 그러나 미성숙된 韓과학문화 민낯


하지만, 오히려 항우연측은 입장이 다르다. "이 박사는 재직 4년간 200회 이상 우주 관련 강연을 진행하며 맡은 바 소임을 다했다. 지금은 특혜만 누리다 '먹튀'한 것으로 비춰지고 있지만, 당시엔 아무도 이 박사의 행보를 거들떠보지 않았다."

항우연의 공식 입장은 아니나 과학계 전반의 기류다. 이 박사는 한국에서 정부 지원을 받은 만큼 최선을 다해 '복무'했다는 의미다.


무엇보다 이후 '이소연 키드'들이 우주개발자 꿈을 키워가고 있다. 본지가 창간기념으로 진행한 '젊어지자 대한민국! 미래 희망 키우는 새싹-미국 우주대회 1등한 한국 고교생 편'에 출연한 학생들도 이 박사를 우상으로 꼽았다. 그가 미국 시민권자가 되든 청소년들에겐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잊혀질만하면 일종의 '마녀사냥'이 반복된다. 과학계에서조차 "선진화 되지 못한 과학문화 민낯을 마주하게 된다"고 말한다.

이번 건은 특히 그렇다. 이 박사는 '사이언스 커뮤니케이터'(Science Communicator·SC)이다. SC는 과학계와 일반 대중을 잇는 역할을 한다. 과학기술계 종사자라면 모름지기 은퇴 후 SC로 활동하며 지식기부에 동참한다. 과학자들만의 '노블리스 오블리제'라고 하겠다. 직업이 있더라도 시간을 내 SC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정부 지원을 받았으니 이를 사회에 환원하는 일종의 책무인 셈이다.

이들 활동 무대는 국경을 초월한다. 이 박사는 지역사회 요청으로 지난해 매주 한 차례 시애틀 보잉필드에 있는 비행박물관에서 방문자를 대상으로 우주 경험담을 들려주는 자원봉사 일을 했다고 한다.

이렇게 활동하는 한국인 SC는 그뿐만이 아니다. 일본 과학미래관(미라이칸)에서 만난 한국인 첫 SC 김지희 씨는 "나름 국위선양에 기여한다는 자부심으로 일한다"고 말했다.

◇민간 외교활동으로 보면 안 되나

스포츠 무대로 시선을 옮겨보자.

태권도 종목에서 각국 대표팀을 이끄는 한국인 지도자를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중동 팀들을 제외한 거의 모든 국가에 한국인 감독·코치들이 포진해 있다.

세계 양궁은 한국인 감독들의 경연장이 된 지 오래다. 명장으로 꼽히는 한국인 출신 감독들이 많다. 이 덕에 한국식 훈련법은 세계 양궁의 매뉴얼이 됐다.

때론 이들이 국내 뛰어난 기술들을 자국에 전수, 한국팀을 위협한다. 체육계는 이에 대해 "세계 양궁계에 한국인 지도자가 많아지고, 이들이 한국과 선의의 경쟁을 한다면, 한국 양궁도 발전할 수 있다"고 반긴다.

이 같은 맥락에서 볼 때 이 박사가 우주인이 되기까지 겪은 과정과 경험을 미국인을 대상으로 얘기한 것이 그렇게 잘못된 일인지 물어보고 싶다. 한국의 달라진 우주기술 위상을 알리고 뽐내는 나름의 민간외교 활동을 했다고 볼 수는 없는 걸까.

미국에는 이 박사 말고도 우주기술 경험을 전수할 우주인은 많다. 청중은 분명 그로부터 어려운 역경을 딛고 우주인의 꿈을 이뤄낸 것에 함께 기뻐하고, 그 속에서 희망의 메시지를 마음에 담았을 것이다.

이 박사가 오른 강연무대에는 그 말고도 캐나다인(우주인 밥 써스크), 이탈리아인(우주인 파올로 네스폴리)도 있었다. 우주 선진국 과학자들 사이에서 한국인 우주인이 어깨를 나란히 했다는 건 의미 있는 일이다. 이를 지켜본 참관객들은 한국을 바라보는 시각도 아마 달라졌을 것이다.

끝까지 한국국적을 갖고 한국 과학 발전에 직접 이바지하지 않는다 해서 '먹튀'로 붙잡는다면 이 박사는 그가 가진 재능과 소신조차 발휘하지 못한 채 그저 민간인으로 살라는 주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박사가 공유할 지식은 대한민국이나 글로벌이 아닌 '우주'임에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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