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 합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기업이 임의대로 임금피크제를 운용할 수 있도록 한 정부 방침에 노동계가 발끈한 것이다. 예고된 파행이었다.
◇기업 vs 노동자 시각차 극복해야
기업은 비용(임금) 부담을 덜기 위한 명예퇴직 수단으로 바라보는 반면 노동자는 정년보장 또는 연장의 수단으로 임금피크제를 인식한다는 주장이다. 이 교수는 "상충된 관점은 노사간 갈등이 잠재돼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며 "이런 여건에서 임금피크제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노사 모두에 직격탄을 날렸다.
기업 입장에선 숙련된 근로자일수록 오래 붙들고 싶지만 한국의 임금구조가 발목을 잡는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신입사원 임금을 100으로 보면 한국은 근속연수가 20~30년 미만일 때 283.2로 3배정도 상승했다. 이는 한국과 비슷한 급여체계를 가진 일본(254.8)보다도 높다. 임금피크제를 임금삭감의 기회로 인식하는 기업만 몰아붙일 일이 아니라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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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피크 원조, 일본 사례 적극 연구해야
전문가들은 임금피크제의 원조격인 일본 기업들의 사례를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산요전기의 경우 2000년부터 임원을 제외한 전 직원들이 60세에 정년퇴직을 할 것인지, 기간을 연장해 65세까지 근무할 것인지 선택하도록 한다. 기간연장을 선택하면 임금피크 시점을 55세로 설정, 55~60세에는 피크임금의 70~75%를 지급하고 60세 이후에는 별도 조정에 들어간다.
미쓰비시전기는 60세 정년을 기준으로 근로자가 원하는 추가 근로기간만큼 먼저 퇴직한 뒤 재고용 계약을 맺는다. 예를 들어 63세까지 근무하길 원하는 근로자는 58세 전후로 퇴직을 한다. 이렇게 되면 퇴직시점 임금이 피크임금이 돼 60.5세까지 피크임금의 80%, 그 후에는 50%가 지급된다.
정보통신 업체 쿄와엑시오는 옵션이 다양하다. 60세에 정년퇴직하거나, 55세 또는 57세에 퇴직한 뒤 63세까지 촉탁사원으로 근무할 수 있다. 55세에 재고용되면 60세까지 피크임금의 73.5%, 60세 이후에는 52.5%를 준다. 57세를 선택하면 60세 기점으로 63%, 42%를 각각 지급한다.
한국과 일본의 가장 큰 차이는 우리는 60세 정년 보장단계에서부터 사회적 갈등이 심각한 반면 일본은 60세 정년을 넘어 63~65세까지 선택적으로 추가근로를 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돼 있다는 사실이다.
◇걸음마 한국, 전반적 사회안전망 고민해야
이는 기초연금 지급 시점(65세)까지 고용안전성을 최대한 이어가도록 정부와 기업이 노력한 결과다. 정년퇴직 이후 국민연금 지급(65세)까지 생계 안전망을 구축하는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한 한국과는 크게 대비된다.
이지만 교수는 이에 대해 "일본 기업들이 저출산-고령화 사회문제를 인식, 시니어사원제도 필요성에 공감하고 종업원 역시 일자리 보장 측면에서 임금피크제 필요성을 인식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한국에도 모범 사례가 없는 건 아니다. 포스코의 경우 직원들에게 2년의 정년연장과 2년의 재고용 기회를 부여하는 대신 단일호봉 형태의 기본급과 직능급을 동결하고 있다.
고연령 직원들의 업무효율을 높이기 위해 인센티브제와 인사 적체를 해소하기 위한 직책 용퇴제도 병행했다. 직책 용퇴는 일정 나이가 되면 자신의 직책을 후배들에게 양보하게끔 하는 장치다.
박준성 성신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정년 연장을 위해서는 연봉제보다는 기본급의 자동승급 구조를 개선하거나 시간외 수당, 상여금 등 항목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며 "노사 합의로 생애소득 보장 장치, 신규 채용 및 승진 보장 등을 병행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