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행령 위법' 왜 막지 못했나…시행령에 무력화된 국회 입법권

머니투데이 박다해 기자 2015.05.28 17:59
글자크기

[the300] 시행령 의무제출·수정요구 규정한 국회법 조항 '유명무실'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가 공무원연금 개혁 협상을 마무리 하기 위해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회동을 갖고 악수하한뒤 굳은표정을 짓고 있다./사진=뉴스1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가 공무원연금 개혁 협상을 마무리 하기 위해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회동을 갖고 악수하한뒤 굳은표정을 짓고 있다./사진=뉴스1


28일 본회의 통과를 앞두고 있던 공무원연금 개혁 등 민생법안이 야당의 '세월호 시행령' 수정 요구로 발이 묶인 가운데 시행령이 상위법에 위배되더라도 이를 국회 차원에서 견제할 수 있는 장치가 없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 시행령이 상위법 위반해도…'있으나마나'한 견제장치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은 상임위 전체회의에서 세월호 시행령이 상위법인 세월호 특별법을 위반한다는 문제점을 지속적으로 제기해왔다.



그러나 번번이 지적에 그쳤다. 현행 국회법 상 시행령이 상위법을 위배해도 이에 대해 국회가 시행령 개정을 이끌어낼 수 있는 강제조항이 없기 때문이다.

국회법 98조의 2항은 상임위 소관 중앙행정기관이 제출한 대통령령 등이 법률의 취지나 내용에 합치되지 않는다고 판단될 때 해당 행정기관의 장에게 그 내용을 '통보'할 수 있다고만 규정하고 있다. 이 때 행정기관의 장은 통보받은 내용에 대한 처리계획과 결과를 지체없이 소관 상임위에 보고해야 한다. 그러나 이를 어긴다고 해도 별도의 처벌 조항 등이 없어 실효성이 떨어진다.



또 98조의 2항에 따르면 중앙행정기관의 장은 법에서 위임한 대통령령·총리령·부령·훈령·예규·고시 등이 제·개정 또는 폐지된 때 10일 이내에 해당 내용을 소관 상임위에 제출해야 한다. 특히 대통령령의 경우 입법예고를 할 때에도 입법예고일로부터 10일 이내에 상임위에 해당 시행령을 제출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이 규정 역시 강제성이 없다. 실제로 해양수산부는 지난 3월 27일 세월호 시행령을 입법예고했으나 시한 내에 국회 농해수위에 해당 내용을 제출하지 않았다.

이처럼 제출의무를 위반하는 일은 다른 상임위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정무위원회 소속 민병두 새정치연합 의원이 금융위원회와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14년 5월 13일까지 금융위는 전체 181건 가운데 100건, 공정위는 전체 69건 가운데 22건의 시행령 제·개정 내용 등을 소관 상임위인 정무위에 제출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관련 개정안만 9건, '국회 입법권 강화' 움직임 계속됐지만…

국회법 개정을 통해 사실상 유명무실해진 98조의 2항의 실효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움직임은 계속돼왔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지난해 11월 행정입법 시정요구권을 도입하는 국회운영제도 개선안을 여야에 제안한 바 있다.

정 의장의 개선안은 상임위 내 법안심사소위에 행정입법 검토 업무를 부여했다. 행정입법 검토 대상에는 대통령령과 총리령, 부령 외에 규제개혁위원회에 심사를 요청한 규제 관련 고시 등도 포함했다. 이와 함께 국회 법제실이 행정기관의 시행령 검토 업무를 담당해 국회가 행정입법을 통제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관련 개정안도 다수 발의됐다. 김태년 새정치연합 의원은 28일 정부의 행정입법에 대한 국회의 검토절차를 강화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와 유사한 내용을 담은 국회법 개정안은 이미 운영위원회에 8건이 계류돼 있는 상태다. 새정치연합의 이춘석·유성엽·강창일·심재권·민병두·김민기·김영록 의원, 새누리당의 윤영석 의원이 각각 발의했다.

개정안의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대부분 정부가 상임위의 수정요구를 반영한 시행령 개정안을 의무적으로 다시 상임위에 제출토록 하는 등 상임위의 구속력을 높이는 방향이다. 국회 고유의 권한인 입법권이 행정부의 재량으로 무력화되는 일이 사라지도록 하자는 취지다.

가장 강도가 높은 개정안은 민병두 의원의 개정안이다. 민 의원의 개정안은 상임위 심사결과 상당한 문제점이 있다고 판단되는 행정입법의 경우 상임위 의결로 소관 중앙행정기관의 장에게 시정을 요구하고 행정기관은 이를 반영, 3개월 이내에 그 처리결과를 상임위에 보고토록 했다.

만약 이를 보고하지 않을 경우 상임위는 해당 행정입법을 본회의에 부의할 수 있다. 본회의에서도 법률의 취지나 내용에 합치되지 않는다고 심의·의결되면 행정입법은 그 효력을 상실토록 하는 조항도 포함됐다.

유성엽 의원의 개정안도 유사하다. 다만 상임위의 요구사항대로 수정·변경이 어려운 경우에도 행정기관이 상임위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단서조항이 추가됐다.

김태년 의원의 개정안은 이미 공포된 시행령이라도 위법하다면 국회의원 10명 이상의 동의로 소관 상임위에서 검토하고 시정을 요구할 수 있도록 했다.

상임위 대신 법안을 발의한 의원의 권한을 확대한 개정안도 있다. 심재권 의원의 개정안은 중앙행정기관의 장이 시행령 제ㆍ개정 내용을 법 공포 후 6개월 이내에 해당 법을 발의한 의원에게 제출하도록 했다. 의원이 이에 대해 검토 의견을 제시하면 행정기관은 1개월 내에 처리 계획 및 결과를 다시 의원에게 제출해야 한다.

◇ 1년 전 발의된 개정안, 상정조차 안 된 이유는

그러나 이같은 개정안은 국회법 소관 상임위인 운영위원회에서 사실상 논의가 되지 못하고 있다. 1년 전인 지난해 6월 발의된 김영록 의원의 개정안은 아직 운영위 전체회의에 상정조차 되지 않은 상황이다.

국회 관계자들은 개정안이 논의되지 않는 이유로 운영위 자체의 특성을 꼽는다. 한 국회 관계자는 "운영위는 정치관련 법이 많다보니 정치개혁이라던가 있을 때야 비로소 같이 논의가 되지 운영위 소관 법안, 특히 국회법 자체만으로 논의를 하는 경우가 흔치 않다"고 말했다.

발의된 법안을 차례로 심사해나가는 것이 아니라 국회 운영개혁과 관련된 이슈가 먼저 대두가 된 뒤에야 관련 개정안들을 검토한다는 설명이다.

또다른 관계자 역시 "국회법의 경우 양당 대표 수준의 합의가 있어야 개정이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며 "이번 여야 간 협상에서 해당 조항을 개정하자는 의견이 거론됐으니 합의가 원만히 진행된다면 이번 일을 계기로 개정이 추진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