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장 기고]유통업계의 '비정상관행' 바로잡아야

머니투데이 정재찬 공정거래위원장 2015.05.27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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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위원장 기고]유통업계의 '비정상관행' 바로잡아야


국가 경제에서 유통산업의 비중이 점차 커지고 있다. 과거 재래시장과 동네 슈퍼마켓이 대부분이던 시기에 유통업은 단순히 제조업체의 상품을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수동적인 역할에 머물렀다. 하지만 유통업체가 대형화·전문화되면서, 고객과의 접점에서 소비자의 취향과 수요를 제조업체에 전달해 상품 기획과 생산에도 영향을 주는 등 제조업과 상호작용은 더욱 긴밀해졌다.

서로 적대적 관계였던 월마트와 P&G가 월마트 내의 판매현황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공유함으로써 비약적인 매출 상승을 이끌어낸 사례는 제조업체와 유통업체간 대표적인 협업사례로 꼽힌다. 최근엔 단순한 정보공유를 넘어 유통업체와 제조업체가 소비트렌드 조사와 상품기획, 생산까지 공동으로 수행하는 JBP(Joint Business Plan) 체결이 대형마트와 온라인쇼핑몰까지 확산되고 있다.



이제 유통업과 제조업은 별개의 영역이 아니라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하나의 생태계를 구성하고 있다. 제조업체의 경쟁력은 자신의 역량 뿐만 아니라 유통업체와의 상호작용에 의해서 결정되며, 유통업체 또한 마찬가지다. 제조업과 유통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선 건강한 유통생태계가 뒷받침돼야 한다.

우리의 유통산업은 경제성장과 궤를 같이 하면서 양적, 질적으로 큰 성장을 이뤄왔다. 대형마트와 같은 새로운 형태의 소매점이 도입돼 값싸고 질 좋은 제품을 소비자에게 제공했으며, 온라인 유통시장의 확대에도 발빠르게 대처해왔다. 하지만 유통생태계의 건전성 측면에선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대형유통업체를 중심으로 양적인 성장을 거듭한 결과, 소수의 대형유통업체 위주로 독과점적인 시장구조가 형성됐다. 또 월등한 지배력을 바탕으로 유통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과 리스크를 자신이 부담하기 보다 이를 중소·영세 납품업체에게 전가하는 비정상적 관행도 자리잡았다. 예를 들어, 판매되지 않은 상품을 임의로 반품하거나 판매촉진비용 부담을 강요하고, 판매부진에 따른 위험을 납품업체에게 일방적으로 전가하는 사례들이 종종 발생하고 있다.

유통 분야의 비정상적 거래관행을 근절하는 것은 유통산업이 제기능을 다할 수 있도록 하고, 나아가 제조업의 경쟁력 제고로 귀결되는 중요한 과제이다. 정부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각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정부는 우선 법과 원칙에 따라 불공정행위에 대해 엄정하게 대처하고 있다. 올해 3월엔 6개 TV홈쇼핑 사의 판촉비 부당전가, 계약서면 미교부, 부당한 정액수수료 방송 강요 등의 불공정행위를 엄중 제재했다. 이러한 조치 결과를 미래부의 TV홈쇼핑사 재승인 과정에 반영하는 등 불공정행위에 대해 범정부적으로 대처하고 있다. 아울러, 올 하반기엔 유통업계의 판촉비용 전가행위나 기본장려금 폐지에 따른 풍선효과 등을 중점 점검할 계획이다.


정부는 또 납품업체가 보복이 두려워 불공정행위를 제대로 신고할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정위 홈페이지에 '불공정행위 익명 제보센터'를 설치했다. 정부는 제보자의 인터넷주소가 수집되지 않도록 하는 등 제보자의 신원 보호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그리고 상품 분야별 납품업체 관련 인사들로 구성된 '유통 옴부즈만'을 운영해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정부의 이러한 조치들이 대형유통업체에게 당장은 부담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의 유통생태계 내에서 납품업체의 건전한 발전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유통업체의 지속적인 성장도 불가능하다. 대형유통업체가 단기적인 수익추구에 급급해 불공정행위를 통해 납품업체로부터 손쉽게 이득을 편취하는 구태에서 벗어나, 생산자와 소비자를 효율적으로 연결해주는 유통 본연의 기능에 집중하는 것이 유통업체와 납품업체가 함께 성장하는 바른 길일 것이다. 정부의 시책들이 유통 현장에서의 근본적인 인식변화와 거래관행 개선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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