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고려인은 누구인가

머니투데이 공영희 소설가 2015.04.24 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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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영희의 러시아 이야기]<53>러시아 사할린에 사는 한국인 교포들

한국인이 외국에 나가면 가장 먼저 만나는 사람이 그곳에 살고 있는 자국의 교포들일 것이다. 낯설고 물 설은 곳에 처음 발을 내디디면 모든 것이 새롭기도 하지만 극한의 공포를 느끼기도 한다. 이질감, 바로 그 이질감은 심한 공포심을 유발하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내 핏줄, 내 종족을 한 번은 찾기 마련이다.

필자도 모스크바에 살면서 가장 먼저 접촉했던 사람이 한인교포인 고려인이었다. 어린 두 딸과 함께 러시아가 막 개방을 했을 때 건너갔기 때문에 아는 사람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무시무시한 분위기의 공항(1992년의 모스크바 공항은 그 어떤 상상도 초월할 정도로 음산하고 무서웠다)을 빠져나가자 도시는 더 큰 블랙 홀 같았다. 그런 러시아에서 러시아어라곤 한마디도 못하는 상황이라 누군가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그 때부터 한국에 나올 때까지 필자를 도와주며 친분을 쌓은 분이 고려인이다. 사실 이 분은 엄밀히 말하자면 고려인은 아니다.



러시아에 살고 있는 고려인이라는 명칭은 1860년대 조선인이 연해주로 이주해 정착하면서 생긴 명칭이다. 척박하기 이를 데 없는 연해주 땅을 일구고 농사로 일어선 사람들로 근면하고 성실함에 소련 사람들도 감탄했다고 한다. 그러나 1937년 스탈린의 무지막지한 탄압으로 일본인 첩자라는 죄목으로 모든 재산을 다 내팽개치고 달랑 이불 하나와 솥단지 하나만을 챙겨 갈 곳도 모르는 채 화물기차에 무더기로 실려 한 달을 달려 타쉬켄트로 이주한 조선인들이다. 기차 안에서 죽어간 사람들로 부터 모든 핍박과 고난을 이겨내고 타시켄트에 도착하여 또 맨손으로(정말 도구라고는 없이 말 그대로 맨손으로)땅을 파고 일구어 농사를 짓고 살아남은 후손들이 바로 러시아 고려인들이다.

그런데 모스크바에 살면서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고려인 이라고 하면 다 똑같은 고려인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필자를 도와준 고려인은 1956년에 북한에서 모스크바로 유학 온 엘리트였는데 유학을 와서 본 모스크바의 공산주의하고 북한의 공산주의가 너무 달라 북한을 반대하고 러시아에 망명을 한 고려인으로 조선에서 유명한 독립운동가 후손이었고 부인도 독립운동을 하던 분의 자녀였다. 그 분들에게서 들은 이야기로 러시아에 살고 있는 고려인들 말고도 사할린에 살고 있는 고려인들이 있었다.



사할린의 고려인들은 태평양 전쟁 중 수 만 명의 한인들이 일본 사람들에 의해 사할린에 강제로 연행(징용)되었다는 것이다. 일본이 패전했던 1945년 8월에 약 4만 명의 한인들이 사할린에 남아 있었는데 일본은 패전하자마자 일본 사람들은 모두 본국으로 철수시켰지만 정작 강제로 연행되어 온 한인들은 ‘제국신민’이 아니라고 소련이 통치하는 땅에 그대로 남겨두었다고 한다.

조선이 독립을 했어도 남북한의 심각한 이데올로기 대립과 세계 냉전의 국제환경에 의해 사할린에 남겨진 한인들의 존재는 무방비 상태로 내쳐진 상태였다고 했다. 일본의 전후처리에 대한 무책임과 한국정부의 무감각으로 인해 사할린의 한인들은 고려인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소련 땅에 그대로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연해주부터 살았던 고려인과 사할린의 고려인의 차이점은 한국어 구사에서 뚜렷한 차이를 나타낸다. 사할린 고려인들은 한국사람처럼 한국어를 구사하고 계산이 엄청 빠르다는 것이다. 우스운 것은 원래의 고려인이나 북한에서 망명한 고려인들은 사할린 고려인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사할린 고려인들의 머리 계산이 영악하다는 이유였다.


사할린 고려인들도 일본군에게 강제로 징용되어 소련 땅에 반세기를 살게 되었으니 원한이 하늘에 사무칠 것이다. 그들은 고국 땅에 얼마나 돌아오고 싶었으며 고향 땅을 밟고 싶었을까, 그러나 대부분의 사할린 한인들은 늙고 병들어 망향의 한을 품고 동토의 땅 사할린에 서 죽어갔다고 한다. 참으로 기가 막히고 처절한 역사의 비참한 일들이 러시아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런데 필자가 한국으로 돌아와서 들은 소식이었는데 이미 한국에 사할린 한인들의 영구귀국이 있었으며 원하는 사람들은 한국에서 아파트를 제공하고 한국에서 여생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몇 년 전에 모스크바에서 왕래가 있었던 사할린 고려인들이 파주에 나와 영구귀국을 했다면서 통화를 한 적이 있었다. 이들은 오히려 한국과 모스크바 집을 왕래하며 한국에서 더운 여름은 모스크바에서, 추운 겨울은 한국에서 지내는 호사 아닌 호사를 지내고 있는 것 같았다.

안타까운 소식으로는 사할린 한인들의 한국 영구귀국의 숫자는 제한되어 있다고 한다. 시설과 기금확보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란다. 지금도 사할린에 남아있는 고려인들은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며 행여나 언제쯤 내 고향으로 갈 수 있을까 기다리지 않을까 싶다. 사실 일본정부나 한국정부가 발 벗고 나서야 할 문제가 아닌가 말이다. 인간의 존엄을 위해서!

러시아의 고려인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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