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세상엔 현대차 1000만 안티가 살고 있다

머니투데이 양영권 기자 2015.02.16 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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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보는 세상]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들이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 입니다.

"기자가 현대차에서 돈을 받아먹었나."

현대·기아자동차에 긍정적인 내용이 기사화되면 으레 뒤따르는 댓글이다. 현대·기아차가 글로벌 브랜드 가운데 5번째로 연간 800만대 판매고를 올렸다는 기사에는 '얼마나 밀어내기를 했기에', '1+1 끼워주기의 힘'이라는 글이 가장 많은 추천을 받는다.

현대차가 자체 리콜한다고 하면 비난하지만 수입차 브랜드가 차체 결함으로 리콜을 했다는 기사에도 칭찬 일색이다. 오히려 "현대기아차는 리콜 대신 고객님 잘못이라고 한다"는 댓글이 올라오기 일쑤다. 인터넷에는 '현기차 1000만 안티 대군'이 살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현대·기아차는 글로벌 시장에서 엔화와 유로화 약세라는 악재와 힘겹게 싸워야 하는 상황에서 국내에서는 극심한 부정적인 여론까지 상대해야 한다. 현대차는 '안티'를 해소하기 위해 소통을 강화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지만 쉽게 해소되지 않는 모양새다.

'1000만 안티 대군'의 근본원인을 찾아가다 보면 그 기저에는 현대차와 기아차의 국내 시장 점유율 70~80%의 과점적 지위를 무시할 수 없다. 국내 소비자들의 대다수가 현대차를 타다보니 다양성이 제한되고, 그에 따른 불만이 늘어날 수밖에 없었던 게 한 요인이다.



그러던 것이 최근에는 내수 점유율이 속절없이 하락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현대차그룹이 기아차를 인수한 1998년 이후 처음으로 점유율 70% 이하로 내려갔고, 지난 1월에는 60.7%까지 떨어졌다.

현대차의 점유율 하락은 '안티 대군'들이 주장하듯 제품의 품질과는 무관하다는 게 전문가 집단의 견해다.

다양한 차를 접하는 자동차 분야 기자들은 최근 현대·기아차 제품의 완성도가 놀라울 정도로 높아졌다는 데 동의한다. 한국자동차기자협회 소속 37개 국내 언론사 기자로 구성된 '올해의 차' 선정위원들은 최근 '올해의 차' 1∼3위로 그랜드 카니발, 쏘나타, 쏘렌토를 뽑았다.


한국 기자들이 단순히 국수주의적 입장에서 현대·기아차에 높은 점수를 준 것은 결코 아니다. 현대차 제네시스는 올해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북미 국제 오토쇼에서 골프 GTI, 포드 머스탱과 마지막까지 ‘북미 올해의 차’를 놓고 경쟁했다. 제네시스는 2009년 한차례 북미 올해의 차로 선정됐다.

해외 시장에서 단순히 '가격'으로만 승부했다면 8.5%에 달하는 현대차의 영업이익률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현대차의 영업이익률은 엔저 효과를 본 토요타의 9.5%에 불과 1.0%포인트 뒤질 뿐이다. 일부 네티즌은 현대기아차가 해외 고객과 국내 고객을 차별한다고 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는데 많은 전문가들이 동의한다.

그렇다면 현기차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는 왜 사그라지지 않는 것일까. 상당수 '고정 안티팬' 외에도 고임금 노조의 연례화된 파업이나 대기업에 대한 맹목적인 불신 등도 있지만, 궁극적 문제는 다양성의 제한이었다.

한정된 제품으로 저마다 다른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한 것이다. 전세계 자동차 판매 1위 메이커 토요타는 일본 내 점유율이 30%에 불과하다. 독일의 '국민차'인 폭스바겐도 아우디와 스코다, 벤틀리, 스카니아, 람보르기니 등 산하 브랜드를 합쳐 독일 내 점유율이 35% 수준이다.

현대기아차도 점유율이 지금의 절반 수준인 30%까지 떨어질 수 있음을 각오해야 한다. 그건 품질 차원이 아닌 산업의 진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수입차 메이커의 AS망이 확충되고 수급 구조가 개선되면 수입차는 더 많이 팔릴 것이다. 그때쯤엔 '1000만 안티'라는 수식어도 옅어질 것이다.

현대·기아차로서 이건 '위기'가 아니다. 산업의 역사에서 경쟁은 항상 혁신과 발전을 낳았다. 현대·기아차도 달라진 내수 환경을 진정한 글로벌브랜드로서의 위상을 강화할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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