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직마을'을 고안한 건축가 조남호씨는 서울시가 은평구에 실험적으로 추진하는 미래도시주거 신모델 조성사업에 참여해 공동주택에서의 공유와 커뮤니티를 주제로 작업 중이다. /사진제공=서울시립미술관
올해 환갑인 나상무씨는 퇴직 후 40평형대 초고층 주상복합에서 6층짜리 '아파트멘트'로 이사했다. 사적 전용공간은 3분의 1로 10평형대 초반이지만 거실과 주방사이즈는 기존 집과 비슷하다. 달빛마당과 확장현관 덕에 오히려 개방감은 높아졌다. 달빛마당에서 만월을 올려보며 마시는 차한잔의 여유. 마주 보이는 옆집 달빛마당은 옆집 총각이 작업실처럼 쓰다시피 한다. 저녁 식사가 준비될 때까지 윗층 605호와 공동 운영하는 옥상 시가바에서 체스를 함께 두기로 했다. 1시간 전 주문한 드론택배가 확장현관에 벌써 도착했다.
프로젝트 건축가팀 QJK(김경란, 이진오, 김수영)의 '아파트멘트'는 LH공사의 84㎡ 규모 아파트 표준평면을 최소로 변형해 보다 효과적인 공유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사진제공=서울시립미술관
◇공급자 위주의 임대시장이 주거 생태계 바닥으로 내몰아
반면 기존 임대주택은 이미 게토화되고 있고 고급주상복합은 폐쇄적 커뮤니티가 돼 외부와의 관계를 끊고 있다. 도시공동체가 함께 누리는 공공공간도 갈수록 사유화된다. 인정하고싶진 않지만 이대로라면 각자의 닫힌 방에서 연대와 교류 없이 살다 홀로 '죽어가는게' 우리의 미래상이다. 개인 소외를 최소화 해 '만남의 여지'가 있으면서도 각자의 자율성과 사생활이 보장되는 주거공간에 대한 고민은 필연적이다.
일본의 한 셰어하우스 내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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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대표는 "미국, 일본, 영국 등은 1인 가구에게 필요한 최소 면적 등 독립된 1인 세대의 주거환경 기준이 마련돼있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개념조차 생소해 제도적 장벽이 많다"며 "1인 가구 임차인 중심의 근린복합 공유주택을 활성화하면 저층 주거지의 고질적 병폐로 꼽히는 주차와 쓰레기, 치안, 커뮤니티 부재 등의 사회적 문제도 자연히 풀 수 있다"고 말했다.
임차인들이 차량 1대를 공유해 주차 공간을 줄이면 건물 1층을 더 개방감있는 골목 커뮤니티 공간으로 만들 수 있고 보행이 활성화돼 상권과 치안 향상 효과를 동시에 볼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만큼 '대놓고' 쓰레기를 버리는 행태도 줄어든다. 1층을 라운지로 지역주민들에게 개방한 통의동 집이 대표적이다. 재산증식 수단으로서의 집 개념에서 벗어나 '더불어 사는 삶'의 가능성을 실험한 흥미로운 무대다.
◇육아형 주거공동체, 개방형 기숙사… 형태별 다양한 시도 독려해야
역삼동에 김윤수 바운더리스 소장이 설계한 셰어하우스 '위드썸씽' 입구. 건물 5층은 위드썸씽이, 2~4층에는 일반원룸, 1층은 버틀러 카페, 지하 1층은 코워킹스페이스 '위드플레이'가 들어서있다. /사진제공=황효철 작가
유휴자원의 가동률을 높인다는 공유경제의 '경제성'에 충실한 부동산 모델도 등장했다. 방학기간 공실률이 높은 대학 기숙사를 여행객이나 방문객에게 숙소로 개방하는 것. 이중식 아이비인베스트먼트 대표는 건국대 기숙사를 이렇게 유동화해 방학 두달간 학내 입점한 상점들의 임대료보다 더 많은 수익을 창출했다. 건국대 기숙사 사례가 입소문을 타면서 경기대학교 등 다른 대학 기숙사들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공유가게도 생겨났다. 연남동 주택을 리모델링한 복합매장 '어쩌다 가게'는 정원과 라운지 공간을 공유한다. 5년 전세로 건물을 임대해 8개의 숍과 작업실로 쪼개고 나눴다. 덕분에 임대 숍들 모두 5년간 월세 상승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어쩌다 가게 안의 숍들 끼리는 공간뿐 아니라 도넛집 메뉴에 옆 가게의 초콜릿을 얹는 등 제품도 공유한다. 인근에 공유주거 버전인 '어쩌다 집'도 오픈될 예정이다.
셰어하우스 위드썸씽 내부/사진제공=황효철 작가
저렴한 임대료나 높은 수익률 등 '경제성'에만 중점을 두고 진입하는 것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유선종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도쿄에서는 지하철에서 좀 떨어진 곳에 비교적 저렴한 사원주택이나 기숙사가 쉐어하우스로 리모델링되면서 비교적 싼 가격의 규모있는 쉐어하우스가 공급된 반면 서울 도심은 지대가 워낙 비싸다보니 기존 원룸보다 저렴하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쉐어하우스를 단순히 가격 면에서 저렴한 대안모델로 보는건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김 소장 역시 "공급자 위주의 하드웨어로만 접근하면 실패하기 쉽다. 단순 임대가 아닌 지역과 함께 숨쉬기 위한 '기획'과 운영 노하우는 필수적"이라고 밝혔다. 이어, "지자체별로 법적 근거조차 없는 각종 내규가 다양한 공간을 생성하는데 장애가 되고있다"며 "공유주거 초기 사업비를 낮출 수 있게 정부가 토지를 장기 임대해주는 등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