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신춘문예 가작]뿌리

머니투데이 기성훈 기자 2015.01.01 07:00
글자크기

[제10회 경제신춘문예]최재영·시

뿌리는 힘이 세다

수십 년 세월을 밀어 올리는 힘으로

매일 쥐눈이콩 같은 눈망울을 매달고 길을 낸다



기억 켜켜이 어둠의 지층을 뚫고 나아간 흔적이

시퍼런 강물처럼 겹겹이 굽이치는 저녁



뿌리는 뿌리만으로도 온전한 몸통을 이룬다

어둠보다 두터운 벽이 있으랴

누구도 읽을 수 없는 뿌리의 내력을


더운 숨결 내뿜는 잔털이 말해준다

축축한 흙냄새에 처음 내딛는 발걸음이 말랑해지고

이제부터 모든 어둠은 뿌리의 시작이다

뿌리의 문을 밀면 저 안쪽 깊은 곳에서

쿵쾅이며 들려오는 우렁찬 함성들

지상의 푸른 잎들이 땅 밑으로 신호를 보내는지

파르르 가녀린 심호흡을 내 뱉는다

누구나 보이지 않는 어둠의 시간 있었으리라

폭풍우 몰아치는 날에는 잠시 주춤하기도 했으리라

그러나

어느 종족이 이리 형형한 눈빛을 가졌는가

단단한 암벽을 파헤치는 힘으로

여전히 길을 탐색하는,

뿌리에게는 어둠도 환한 불빛이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