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현대차, 비어만의 영입이 의미하는 것들

머니투데이 김미한 기자 2014.12.22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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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가 고성능 모델 개발자로 영입할 만한 사람은 지금 BMW M 디비전에서 나온 비어만밖에 없는데…."

얼마 전 자동차 업계 지인들과 가진 송년회에서 나눈 얘기다. 이 얘기는 현실이 됐다. 현대차는 22일 BMW M의 연구소장이었던 알버트 비어만을 기술개발부문 부사장으로 영입했다고 발표했다.

BMW의 고성능 모델을 책임지는 'M' 부문은 원래 1972년, BMW의 모터스포츠를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자회사였다. 1983년 BMW에 입사한 비어만은 M의 오랜 역사와 노하우를 바탕으로 최근 인기 있는 스포츠카와 고성능 모델의 개발을 도맡았다. 최근 10년 사이 BMW가 성장하면서 기술력이 뛰어난 메이커로 돋보이게 만든 핵심 멤버 중 하나다.



비어만은 흔히 차에 미쳤다고 비유하는 '카 가이(Car Guy)'다. 엔지니어링 기술자로서 뿐 아니라 '자동차의 스토리 텔러'로서 유럽 내 팬 층이 두텁다. 특히 지난 7년간 M 디비전을 이끌면서 여러 통로를 통해 기존 양산차에 'M' 버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새 모델을 만들고 싶다는 의욕을 비춰왔다.

그러나 안정적인 양산 모델의 수익이 우선인 BMW에서 그의 의견은 수년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그는 올해 물러났다.



현대차가 밝힌 고성능 브랜드 'N' 전개에 대한 실행력을 기자들조차 의심하던 상황에서 비어만의 영입은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업계에서는 BMW보다 더 보수적인 현대차의 조직 안에서 과연, 그의 역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느긋이 기다려 줄 지 걱정도 크다. 신차는 최소 5년 이상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 비어만이 성공적으로 활약했던 BMW는 이미 고성능 개발 파트의 역사만 40년이었다. 개발과 마케팅 전반을 책임질 것이라는 현대차의 발표는 곧 아직 그의 역할이 모호하다는 의미도 된다.

현대차를 보는 소비자의 조급한 시선도 우려된다. 홍보 담당자들 사이에서는 현대차의 온라인 뉴스에 내용과 상관없이 평균 1분30초 뒤 '악플'이 달린다는 공식도 존재한다고 입을 모은다.


"딴 건 몰라도 (정의선) 부회장이 자동차 좋아하는 건 확실해요." 기자는 취재 중 만난 관계자들의 공통된 발언에 희망을 걸고 있다. 대표적인 예는 현대차의 튜닝 메이커 '튜익스'다.

2008년 론칭한 뒤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지만 연달아 론칭한 기아의 '튜온' 사업부까지 건재한 것은 정 부회장의 굳은 개발 의지 탓이라는 후문이다.

적어도 비어만과 현대 'N'의 등장은 당장 매출에 연결되지 않더라도 기업과 대중 모두 기다려줬으면 한다. 이러한 시도는 현대차가 대중 메이커에서 실력 있는 자동차 브랜드로 스스로의 위치(포지셔닝)를 바꾸는 발화점이 될 게 분명하다. '악플'도 줄어드는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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