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국민연금 대체투자, 해외분이 국내분 넘어섰다

머니투데이 심재현 기자, 박준식 기자 2014.11.26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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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금리 정책에 안방장사 벗어나 해외로 약진…유럽 등 선진국 중심자산 폭풍쇼핑

[단독]국민연금 대체투자, 해외분이 국내분 넘어섰다


국민연금이 5년 만에 다시 해외 부동산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국내 저금리 기조가 길어지자 2008년 금융위기 직후 인수해 가격이 오른 해외 부동산을 팔아 차익을 챙기는 동시에 새로운 투자처를 찾는 포트폴리오 리밸런싱(자산배분 조정)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25일 IB(투자은행) 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의 해외대체투자 규모는 지난 6월 말 기준 21조3000억원으로 처음으로 국내대체투자 규모(20조8000억원)를 넘어섰다. 국내대체투자 규모가 올 들어 6개월 동안 3000억원 증가하는 데 그친 반면 해외대체투자 규모는 1조5000억원 이상 늘었다.



올 하반기 투자는 아직 집계 전이지만 이 같은 추이를 감안하면 국내외 대체투자 규모 차이는 더 벌어졌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연금은 '2015~2019년 중기자산배분안'에서 대체투자 비중을 지난해 9.5%에서 2019년 10% 이상으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이 중 상당부분을 해외투자로 채울 계획이다.

이달만 해도 국민연금은 독일 금융 중심지 프랑크푸르트에 신축 중인 도이치뱅크 제2본사 건물 '마인제로빌딩'을 3500억원에 입도선매했다. 지난 6월에는 폴란드 쇼핑몰 2곳과 방송·통신 기반 시설 등에 80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국민연금이 다시 해외로 눈을 돌리는 이유는 국내 주식과 채권 등 전통적인 투자로는 목표 수익률을 맞추기 어려워서다. 정부의 경기부양책으로 기준금리가 2%로 내려가면서 연기금의 국내 투자는 오히려 목표 수익률을 깎아먹는 전략이 됐다. 국민연금의 국내 투자 비중은 전체 운용자산의 80%에 달한다. 국내 채권투자 비중만 55% 수준이다.

금리가 떨어지면서 국내 부동산 가격이 급등한 것도 운용실무자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운 부분이다. 국내 오피스 빌딩의 기대수익률이 최대 5% 중반인 반면 해외투자의 경우 7% 이상인 곳이 여전히 많다. 유럽 등의 선진국 도심자산은 가치가 폭락할 가능성이 낮아 안전자산으로 분류된다.

캐나다 국민연금인 CPPIB는 뉴욕이나 런던의 중심부 오피스빌딩을 사실상 미국 국채 수준의 신용등급으로 평가한다. 국민연금도 부동산 투자를 선별적으로 구별해 선진국 자산에 대한 자체 신용측정값을 마련해가고 있는 셈이다.


김정연 하나자산운용 투자1본부장은 "한국보다 신용등급이 놓은 국가의 프라임 도시, 중심 지역에 있는 자산은 가치가 떨어지지 않지만 오히려 중장기 투자 수익률 전망은 국내 부동산 자산을 능가한다"고 말했다.

주상철 국민연금연구원 박사는 "저금리 경제여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위험관리 역량 강화와 동시에 해외투자와 대체투자의 비중을 확대하는 자산 다각화 말고는 마땅한 방법이 없다"며 "국민연금도 이러한 기조에 본격적으로 동참하고 있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기금 고갈을 최대한 막으려면 흑자 구조에서 최대한 고수익 상품 투자 비중을 늘려야 한다는 위기감도 해외투자를 늘리는 요인이다. 2030년대에 들어서면 기금 수지 역전으로 들어오는 돈보다 나가는 돈이 많은 구조가 된다. 고수익 상품에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이 2030년 중반까지 채 20년이 안 남았다는 애기다. 더 이상 안방장사만으로는 수익률을 낼 수 없고 해외로 진출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국민연금의 '실탄'은 충분하다. 기금 증가분만이 아니라 2008년 금융위기 직후 전광우 국민연금 이사장을 필두로 잇따라 인수했던 세계 주요국 부동산 자산도 금의환향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영국 런던의 HSBC타워다. 국민연금은 2009년 11월 HSBC로부터 7억7250만파운드(당시 환율로 약 1조5000억원)에 사들인 이 빌딩을 11억파운드(약 1조9000억원)에 매각하는 계약을 다음 달 초 마무리 짓는다. 연간 4600만파운드(약 887억원) 수준의 임대수익과 매각차익을 감안하면 5년 누적 수익률은 60%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2009년 글로벌 사모펀드 운용사 칼라일과 공동 인수한 일본 도쿄의 KDX 도요스 그랜드스퀘어, 2011년 미국 부동산 투자회사 인베스코와 함께 인수한 미국 맨해튼의 햄슬리빌딩도 투자금 회수를 추진하고 있다.

국민연금이 미국 뉴욕과 영국 런던에 이어 내년 홍콩 또는 싱가포르에 아시아 지역 첫 해외 사무소를 여는 등 해외 사무소 기능 강화에 나서기로 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특히 중국 동남아시아 등 신흥 시장에 대한 투자 확대는 하향 추세인 수익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시급한 과제라는 인식이다. 홍완선 기금운용본부장은 지난 4월 홍콩과 싱가포르를 찾아 사무소 개소에 적합한 장소를 물색했다.

일각에서는 글로벌 연기금의 대체투자 경쟁으로 부동산 자산 가격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는 만큼 자산 거품과 경기 하락에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연기금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지금은 금융위기 당시 이뤄진 해외 투자의 과실을 맛보고 있지만 경기 사이클을 감안해 포트폴리오 다변화와 인플레이션 헤지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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