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는 '소식지'를 본다

머니투데이 이경숙 기자 2014.11.22 0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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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머니, 이웃집 산타]<1-1>11년 간 아동 후원한 교사

편집자주 해마다 성탄절이면 아이들이 기다리는 존재, 산타. 정말 산타가 있을까? 장난감, 과자 따위 안겨 주는 가짜 수염 붙인 산타가 아니라 아이들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산타가 진짜 산타라면, 그 산타는 우리 이웃에 산다. 평범한 얼굴, 평범한 직업으로 살지만 힘들고 외로운 이웃을 보듬는 우리 이웃집의 진짜 산타들을 찾아 소개한다.

도현자 교사가 부스러기사랑나눔회를 통해 후원하고 있는 한 아동이 보낸 감사편지.도현자 교사가 부스러기사랑나눔회를 통해 후원하고 있는 한 아동이 보낸 감사편지.


#1. “내 운동화는 다 떨어져 너덜너덜한 걸레가 되어버렸다. 할머니께 말해봤지만 안 되고 아빠도 안 되고 장학금은 없고. 내 발한테도 사과한다. 내 발아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아빠와 할머니랑 사는 열세 살 현호가 일부러 비뚤배뚤 익살스럽게 쓴 일기를 누가 본 걸까. 얼마 후 누군가가 보낸 운동화 한 켤레가 현호에게 배달됐다.



#2. 엄마, 아빠가 일하러 나가면 네 살 기선이는 혼자 놀이터에 나가 공을 차고 놀곤 했다. 공은 기선이의 유일한 놀이 친구였다. 유소년축구단에 들어간 후 아이는 유니폼을 늘 머리맡에 두고 잤다. 아이의 축구실력은 뛰어났다. 다른 학교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 전학까지 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엄마, 아빠의 이혼 후 삶이 달라졌다. 엄마는 기초생활수급비를 받아 생계를 이어갔다. 축구회비를 내기 힘겨워 했다. 아이는 축구단을 나왔다. 그래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혼자 공을 찼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가 축구를 다시 시작하라며 장학금을 보냈다. 다음 달도, 그 다음 달도.



아이들이 바라던 선물을 안겨주는 이가 산타라면 현호에게 운동화를, 기선이에게 축구 장학금을 선물한 이 사람이야말로 진짜 산타일 것이다. 그는 아이들한테 필요한 게 돈일 땐 돈, 물품일 땐 물품을 보냈다.

2004년부터 11년 동안 적게는 1만 원씩, 많게는 수십만 원씩 그가 보낸 내용을 부스러기사랑나눔회에서 전해 들었다. 다 합하니 고급 외제차 한 대 사고도 남을 규모였다. 혹시 갑부?

그러나 직접 찾아가 만나 보니 그는 버스 타고 퇴근하는 평범한 우리 이웃이었다. 보너스를 받은 날 ‘이번엔 누구한테 뭘 줄까’ 궁리하며 소식지를 펼쳐들면 기분이 좋더라는 그를 경기도 시흥시 한 고등학교에서 만났다.


도현자 교사. 부스러기사랑나눔회, 드림풀 후원자.도현자 교사. 부스러기사랑나눔회, 드림풀 후원자.
◇쉬는 시간 10분 쪼개 폰뱅킹 “이게 제일 쉬운 일”

그는 거듭 “미안하다”고 말하며 나타났다. 인터뷰 약속 시간이었지만 회의가 끝나지 않아 결국 양해를 구하고 중간에 나왔다고 했다. 모 고등학교 진로상담부 도현자 부장교사(55)의 일상은 다른 직장인이 그렇듯 빡빡해 보였다.

인터뷰에 동석한 부스러기사랑나눔회의 김혜란 후원팀장은 그가 소식지에 아주 작게 실린 글에서도 자신이 후원할 수 있는 것을 찾아 연락하더라고 귀띔했다. 금액보다는 마음이 더 대단하다는 것이다. 바쁜 생활 속에 도대체 어떻게 시간을 내는 걸까?

“쉬는 시간, 10분이면 돼요. 폰뱅킹으로 이체한 후 후원팀에 전화해서 ‘이번 소식지에 실린 누구한테 후원했다’하면 입금 내역 확인해 보내줘요. 금방 끝나요.”

부스러기사랑나눔회와 인연을 맺은 건 2004년이었다. 모 대형구호기구를 통해 해외 아동들한테 기부했던 그는 한 신문에 실린 특집기사를 보고 기부처를 바꿨다.

“IMF(외환위기) 후 판자촌에 결식아동이 늘었다는 기사였어요. 우리나라에도 어려운 아이들이 정말 많구나, 했어요. 그래서 부스러기사랑나눔회에 기부를 시작했더니, 부스러기편지(소식지)가 오더라구요. 그걸 읽다 보면 얘는 정말 도와야겠구나 하는 느낌이 와요.”

그 때마다 결연을 맺고 정기후원하는 아이들 수가 늘어났다. 11년 동안 그가 결연 후원한 아이는 15명. 서너해 전부터는 가족 이름으로 기부를 시작했다. 남편 이름으로 1만 원, 동생 이름으로 1만 원, 어머니 이름으로 5만 원, 이런 식이었다. 그렇게 푼푼이 낸 기부금이 고급차 한 대 규모가 됐다는 걸, 그는 몰랐다.

“제가 기부한 게 얼마인데요? 정기결연 말고는 보너스 나와야 기부를 해서, 얼마 했는지 잘 몰라요. 후원금을 보낸다지만 이게 제일 쉬운 일이에요. 고생은 지역아동센터 원장님들이 하시는 걸요.”

◇20년 전 제자 학비 보태며 기부 시작...조금만 도와도 달라지는 아이들

그는 정기후원 아동을 선택할 때 ‘조금만 도우면 달라질 아이들’을 추천해달라고 부탁한다. 어른 눈엔 대단하게 보이지 않는 변화일지라도 말이다.

“제가 후원하는 아동 중에 초등학교 5학년인데 몸이 불편한 할머니와 둘이 사는 아이가 있어요. 이 아이가 태권도를 배우고 싶다고 하는 사연을 소식지에서 읽고 결연을 했어요. 나중에 편지가 왔는데, 태권도학원에 다닌다고 하더군요. 부스러기사랑나눔회의 담당자 말씀이 얘가 태권도를 시작한 후 밝아지고 자신감도 생겼다더군요.”

아이들은 조금 도우면 뭔가를 시작했다. 1995년, 체대에 합격한 한 학생이 형편이 어려워 입학금을 마련하지 못한 걸 알게 됐다. 그는 그 학생의 담임교사와 함께 입학금을 보탰다. 그게 그의 첫 기부였다.

“그 아이가 대학에 합격했는데 돈이 모자라 등록을 못하는 상황이었어요. 조금 도우면 얘가 (대학생활을) 시작할 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어요. 저도 4남매 중 둘째라 굉장히 어렵게 대학에 다녔거든요.”

도현자 교사가 부스러기사랑나눔회의 김혜란 후원팀장에게 소식지에 대한 의견을 말하고 있다. 그는 맨 끝장의 후원자 명단까지 읽을 정도로 이 기관 소식지를 애독한다./사진=이경숙 기자도현자 교사가 부스러기사랑나눔회의 김혜란 후원팀장에게 소식지에 대한 의견을 말하고 있다. 그는 맨 끝장의 후원자 명단까지 읽을 정도로 이 기관 소식지를 애독한다./사진=이경숙 기자
◇“월 3천원이라도 일단 시작하세요”

부스러기편지를 읽다 보면 돕고 싶은 아이들이 너무 많아 그는 “나도 사업을 했다면 원 없이 쾌척했을 텐데”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주변의 사업가나 잘 사는 사람들한테 기부를 권하면 “형편이 좀 나아진 후에 하겠다"고 한단다. 아이 한 명 결연후원하는 데에 3만 원이라고 하면 “그거 해서 뭔 도움이 되겠냐”는 답이 돌아온단다.

“제가 후원을 시작했을 때 들은 말이 있어요. ‘후원, 봉사의 원칙은 가늘고 길게’. 부스러기사랑나눔회에는 매달 몇천 원씩 기부하는 분도 있대요. 정말 부스러기죠. 5천 원 하기 힘들면 3천 원으로 시작하세요. 정 어려우면 1천 원도 좋아요.”

그는 한 방송사의 미혼모 특집 프로그램에서 본 사연을 전했다. 어렵게 일자리를 얻은 한 미혼모가 통장을 보여주는데 미혼모센터에 5천 원을 후원하는 게 화면에 비춰졌다. 그 미혼모는 자신이 가진 것 안에서 다른 이와 나누고 있었다. '도움'을 주는 건 어려워도 '나눔'을 시작하는 건 쉽다.

인터뷰 중 그는 김 팀장한테 “00고에서 기부금 들어왔냐”고 물었다. 그 학교 교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남편한데 월급 끝전 기부를 권했다는 것이다. 입금 사실을 확인한 그는 “다음달에도 하라고 해야지”하고 혼잣말을 했다. ‘명절 뽀나스를 받으면 얼마를 쪼개 어느 아이한테 뭘 줄까' 상상하며 부스러기편지를 펼쳐들 때 기분이 좋아진다는 그는 아마 남편도 산타로 만들 모양이다.

부스러기사랑나눔회와 LG디스플레이가 연 '크리스마스의 기적' 중 모 지역아동센터의 아동이 그동안 받고 싶어하던 곰인형을  '산타'로부터 선물 받고 있다./사진=부스러기사랑나눔회부스러기사랑나눔회와 LG디스플레이가 연 '크리스마스의 기적' 중 모 지역아동센터의 아동이 그동안 받고 싶어하던 곰인형을 '산타'로부터 선물 받고 있다./사진=부스러기사랑나눔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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