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수해가 온다" 전월세 고민 깊어지는 정부...왜?

머니투데이 세종= 박재범, 정진우, 김평화 기자 2014.11.20 0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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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전월세 허리휘는데 대책은?③]1989년 임대차보호법 이후 전세2년계약...매 홀수해마다 전셋값 급등

/그래픽=김지영 디자이너/그래픽=김지영 디자이너


# 직장인 나전세(가명, 38세)씨는 지난 2009년 서울 문래동 72㎡(22평) 아파트를 전세 1억2000만원에 들어갔다. 2년 후인 2011년 집주인은 나씨에게 전셋값 5000만원을 올려달라고 통보했다. 협상의 여지는 없었다. 서울과 수도권에 전세물량이 없는 탓에 집주인은 '갑', 세입자인 나씨는 '을'이었다. 나씨는 다른 지역 전세를 알아봤지만 가격 상승세가 비슷했다.

울며겨자먹기로 처가에서 3000만원을 빌리고, 은행에서 2000만원을 대출받아 1억7000만원에 2년 연장했다. 전세품귀 현상이 이어지면서 전셋값은 계속 올랐다. 짝수해였던 2012년도 전세시세는 1000만원 정도 오른 1억8000만원이었다. 해가 바뀌니 전셋값은 더욱 가파르게 올랐다. 집주인은 2억원에 맞춰달라고 요구했다. 홀수해인 2013년에만 2000만원이 더 오른 것이다. 나 씨는 더이상 빚을 지는 건 무리란 생각에 하는 수 없이 서울 외곽에서 1억5000만원짜리 전셋집을 구했다.



"홀수해가 온다" 전월세 고민 깊어지는 정부...왜?
◇전셋값 급등…홀수해의 공포 =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나타나고 있는 '홀수해 전셋값 급등' 현상 사례다. 함영진 부동산114 팀장은 "전세 수요가 늘어서 가격이 오른 측면이 강하다"면서도 "전세계약이 통상 2년 단위로 이뤄지기 때문에, 금융위기 이후 계약이 몰리기 시작한 2009년 이후 홀수해마다 전셋값 상승률이 더 크다"고 말했다. 전셋값 상승은 월세시장에 곧바로 파급효과를 미치게 된다.

전셋값 상승률이 이처럼 격년으로 차이가 나는 건 1989년 주택임대차보호법 시행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전세 세입자 보호를 위해 계약기간을 1년에서 2년으로 의무화 뒤 패턴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1990년부터 제도가 도입됐기 때문에 초기엔 짝수해에 전셋값이 많이 올랐다. 1990년 16.76% 상승률을 기록한 뒤 1991년엔 1.95%로 뚝 떨어졌다. 1992년엔 다시 7.52%로 상승폭을 키웠다가 이듬해엔 2.44%로 비교적 안정세를 보였다.



이후 짝수해 강세, 홀수해 약세를 보이다 1998년 외환위기(IMF) 이후 주택 매매 시장이 급등하면서 전셋값은 상대적으로 특별한 모습을 나타내지 못했다. 그러다 2008년 금융위기가 닥친 후 홀수해 강세가 자리잡았다.

KB국민은행 부동산 시세에 따르면 서울의 아파트 평균 전셋값은 2011년 7월 2억5171만원으로 '2억5000만원 선'을 넘긴 뒤 올해 초 3억25만원을 기록하며 2년7개월 만에 '3억원 선'을 넘겼다. 2년 전인 2012년 10월(2억6752만원)과 비교하면 4986만원 상승했다. 서울에서 2년 전 전세 아파트를 계약한 세입자가 같은 집에 살려고 계약을 연장하려면 실제 위 사례처럼 5000만원 가까운 돈이 필요한 셈이다.대졸 신입사원의 평균 초봉이 2362만원(취업포털 '사람인' 조사)인 것을 감안하면 직장 초년생이 2년 동안 한 푼도 쓰지 않고 월급을 모두 모아도 오른 전세금을 대기에 벅찬 게 현실이다.

◇가격 대책 대신 ‘임대 시장’육성 대책 중점 =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은행들의 저금리 여파로 최근 주택시장에서 전세의 월세화 현상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 전세물량이 부족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집주인은 월세를, 수요자는 전세를 선호하는 데 따른 자연스런 결과다. 추세는 전세의 월세 전환이다. 정부도 인정한다. 지난 2012년 21.6% 수준인 월세 비중이 2017년엔 30%를 웃돌 것이라는 게 정부 전망이다.

전셋값 대책보다 ‘임대 시장 육성’에 중점을 두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저소득층의 주거 안정은 정부의 공공 임대 주택 공급, 주택 바우처 등의 제도로 대응 가능하다. 고소득층은 실수요자 중심으로 집을 사는 쪽으로 유도한다는 게 정부 구상이다. 반면 중산·서민층까지 정부 정책으로 ‘관리 ’하기엔 한계가 있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전셋값 대책이라는 게 실제 가능하겠냐”고 반문한 뒤 “시장에서 (물량을) 공급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줘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형임대 등 민간임대 시장 활성화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정부는 리츠 등 임대주택 공급 방식 다양화, 주택임대 관리업 등 규제완화와 세제지원 등 기존의 대책을 토대로 추가 지원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다른 고위관계자는 “전·월세 임대 시장을 제대로 만들어놔야 주거 안정과 보호도 꾀할 수 있다”면서 “경제혁신 3개년 계획에서 강조한 주택시장 정상화 차원에서 근본적 고민, 근본적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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