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고객세금대신 내라" 정부 법개정에 부동산신탁사 대혼란

머니투데이 조성훈 기자 2014.10.30 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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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행부 재산세, 종부세 개정안에 쉬탁자가 세금내도록 조치…고객과 소송 및 차압 예상

정부가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이하 종부세) 징세 업무를 민간에 떠넘겨 논란이 일고 있다. 고객이 위탁한 부동산을 관리하는 부동산신탁회사(이하 신탁사)에 부동산 원소유자인 고객이 납부해야 할 재산세와 종부세를 대신 납부하도록 하고 있는 것. 부동산 원소유자가 세금을 내든, 안 내든 정부는 신경 쓰지 않고 세금 납부 의무를 신탁사에 묻겠다는 취지다. 부동산신탁은 고객의 건물이나 토지 등 부동산 자산을 개발·관리·처분해주고 수수료를 받는 금융투자업이다.

29일 부동산신탁업계에 따르면 안전행정부(이하 안행부)는 지난해 지방세법을 개정해 신탁 부동산의 재산세 납세 의무자를 위탁자(고객)에서 수탁자(신탁회사)로 변경했다. 위탁자(고객)가 자산을 신탁하면서 재산세를 체납하는 경우가 잦자 생각해낸 고육책이었다. 신탁사가 고객을 대신해 세금을 내고 고객으로부터 납부한 세금을 정산받으면 징세가 용이해진다는게 안행부 계산이었다.



이 지방세법 개정안이 올해 1월1일부터 시행되면서 부동산신탁업계는 대혼란에 빠졌다. 한 업계 관계자는 "재산세 과세가 이뤄진 지난 7월(현재 소유자의 건물분 세금 절반)과 9월(나머지 건물분 절반과 토지분 전액)에 고객들에게 재산세를 신탁사가 대신 내야 하니 세금을 신탁사에 내달라고 설명하고 세금을 받아내느라 다른 업무가 마비됐다"고 말했다. 또 "애시당초 징세 업무를 왜 민간에 맡기느냐고 반발했지만 안행부는 귓전으로 흘러 버렸다"고 지적했다.

더 큰 문제는 종부세다. 종부세법에 따르면 종부세 납세 의무자는 지방세 납세 의무자를 따른다. 따라서 종부세법 납세자 역시 위탁자가 아닌 신탁자로 바뀌게 됐다. 종부세는 재산세보다 고객에게 받아내기가 더 어려워 부동산신탁업계는 골머리를 앓고 있다. 종부세는 과세 기준일이 6월1일인데 납부기일은 12월1일부터 15일까지다. 이 때문에 6월5일에 부동산을 처분해도 종부세는 그해 12월에 6월1일 기준 부동산 소유주에게 부과된다. 마찬가지로 위탁자가 6월5일에 부동산 신탁 계약을 해지해도 종부세는 12월에 부동산신탁회사에 부과된다. 부동산신탁회사로선 계약이 끝난 옛 고객을 찾아가 종부세를 내라고 독촉해야 하는 처지다.



지방세법 개정에 따라 종부세법이 개정되지 못한 점도 상황을 더욱 꼬이게 만들고 있다. 안행부는 그동안 기획재정부(이하 기재부)가 담당하는 국세던 종부세를 지방세로 전환하는 작업을 추진하면서 기존 종부세법 폐지안 및 지방세법 추가 개정안을 의원입법 형태로 발의했다. 이 법안들은 지난해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신탁사들은 전·현 고객들의 종부세를 대신 내지 않으면 고객이 위탁한 자산은 물론 고유재산까지 압류당하게 됐다. 지방세법은 납세 의무자를 위탁자에서 수탁자로 바꾸면서 신탁사의 고유재산은 압류하지 않도록 예외조항을 뒀지만 현행 종부세법은 그런 예외조항이 없다. 폐지가 추진되던 종부세법이 잔존하면서 생긴 법령 공백이다.

결과적으로 신탁사가 고객의 종부세를 대납하지 않으면 고유재산까지 압류당해 사업을 못하게 될 처지에 놓이게 된다. 고객이 6월1일 이후 계약을 해지했다는 이유로 신탁사에 세금을 내지 않고 버티는 등 법령 공백을 악용한 신종 탈세가 등장할 가능성까지 제기된다. 이같은 탈세로 인한 부담은 신탁사가 고스란히 지게 된다. 안행부로선 세금을 받지 못하면 신탁사의 재산을 압류해 버리면 그만이다. 반면 신탁사는 고객의 세금을 대신 내기 위해 계약이 유지되고 있는 고객의 신탁재산을 매각하려 해도 제약 많다. 임의로 매각했다가 자칫 계약 위반으로 인한 고객과 송사에 휘말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신탁사는 고객 세금을 체납할 경우 개발사업의 인허가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는데다 금융기관 자금 차입이 제한되고 신용도가 낮아져 자본시장을 통한 자금조달 비용이 올라간다. 150조원대 부동산신탁시장이 행정편의적 법령 하나 때문에 마비될 상황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결국 계약을 해지하기 전에 고객에게 미리 납부할 세금을 받아야 하는데 재산세는 전년 기준으로 어느 정도 금액을 예측할 수 있지만 종부세는 12월로 부과 시기가 늦는데다 합산과세 방식이어서 정확한 액수를 따지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 "고객 중 일정비율의 체납은 매년 발생할 것이 분명한 상황이라 세금을 둘러싸고 고객과 소송을 벌이는 등으로 법률비용까지 부담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안행부와 기재부는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안행부 관계자는 징세 의무를 민간에 떠넘긴데 대해서는 함구한 채 "종부세법 폐지안이 국회를 통과하기 전까지 종부세법은 기재부 소관인 만큼 체납시 부동산신탁회사 고유재산은 압류하지 않도록 기재부가 유권해석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기재부 관계자는 "법령상으로 명확한 사안이라 유권해석 대상이 아니며 부동산신탁회사와 위탁자간 합의나 소송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며 "안행부가 애초에 종부세법 폐지와 관련해 우리와 충분한 협의를 거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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