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서울 마포구의 비온뒤무지개재단에서 만난 이신영 이사장/ 사진=김유진 기자
큰 딸인 줄 알았지만 큰 아들이었던 아이. 10대의 어린 딸은 스스로를 남자로 인식하고 있었다. 원하지 않는 몸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에게 몸을 바꾼다는 것은, 알고보니 생존의 조건이었다. 트랜스젠더 아이를 두기 전에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일이었다.
23일 서울 마포구의 비온뒤무지개재단에서 만난 이신영 이사장은 "성적소수자들에게는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이 전쟁"이라고 말했다. 아이가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을 알기 전, 막연하게 '성적소수자를 차별하면 안 된다' 정도만 알던 그였다. 그러나 내 아이의 일, 내 일이 되고 나서 부딪힌 세상은 생각보다 훨씬 냉혹하고 차가운 곳이었다.
아이의 고통에는 비할 바가 아니겠지만, 트랜스젠더의 부모가 되는 것도 큰 고통이었다. 아이가 여자로 사는 삶을 불편해하니 학교에 가면 아이들도 아이를 이상하게 보기 시작했다. 선생님도 이런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몰라 했다. 겉으로 볼 때는 남자의 모습을 한 아이는 남자 화장실에 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여자 화장실에 가면 이상한 시선을 받곤 했다.
"엄마는 어디 가서 울 수도 없어요. 내가 우는 모습을 보이면 아이가 더 미안해하고 상처가 깊어질까봐. 세상이 너무 힘드니까 그나마 집이 쉴 수 있는 공간인데, 내가 거기서 우는 모습을 보일 수 없으니까요."
그러다 우연히 같은 상황에 놓인 다른 어머니를 하나 소개받게 되고, 또 다른 어머니들을 알게 되고 하면서 '트랜스젠더 부모 모임'을 시작하게 됐다. 인원은 더 많지만 실제로 정기적으로 모이는 사람은 8명 정도. 초반에는 모여서 다같이 펑펑 울기만 했다. 그러나 수술이나 상담 등 의료적인 정보도 나누고 아이들에게 어떻게 행동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얘기하며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친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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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젠더 부모모임'에서 한 어머니가 만든 찰흙 조형물. 이 어머니는 "탑 꼭대기에 놓인 돌이 우리 아이인데 이 아이에게 하얀 새를 선물해 훨훨 날 수 있게 해 주고 싶다"고 설명했다. / 사진=김유진 기자
이렇게 성적소수자들이 인권을 보장받기 위해 필요한 상담과 의료지원, 성적소수자에 대한 연구 등을 후원하자는 생각에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과 꾸준히 준비해 지난 15일 비온뒤무지개재단을 창립했다. 창립회원 340명의 후원으로 1억원의 돈을 모아 1차로 성적소수자 단체에서 3년 이상 활동한 활동가들과 '성소수자 의료건강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했다.
이 이사장은 본인 가정의 경우 경제적인 뒷받침이 되기 때문에 아이가 트랜스젠더가 되는 데 필요한 물질적인 지원이 가능했지만 그렇지 못한 가정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경제적인 문제로 고통받는 상황 속에서도 상담이나 의료지원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지원하고자 하는 것이 재단의 목표다. 그는 궁극적으로는 성소수자들이 보통 사람처럼 편하게 학교에 다니고 병원에 가고, 직장생활을 하는 등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사실 성적소수자를 위한 재단이다보니 후원금을 받는데 어려움이 있어요. 장애인이나 아동을 돕는 기부문화는 많이 활성화됐는데 성적소수자를 돕는 일은 뭔가 이상하게 바라보는 편견이 있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지난 6월 신촌에서 열린 '퀴어퍼레이드'에 구글이 부스를 차렸잖아요. 젊은 사람들의 반응도 열광적이었고. 저희가 후원자 분들에게 약속드릴 수 있는 건 '기부에서도 앞서간다'는 진보적인 색채! 그거 하나는 확실하게 보장해 드립니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