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제당이 1995년 제조업에서 문화사업으로 첫 발을 내딛기위해 세계적인 영화사 드림웍스와 투자 계약한 뒤 촬영한 사진. 왼쪽부터 제프리 카젠버그, 이미경 부회장, 데이비드 게펜, 스티븐 스필버그, 이재현 회장. 카젠버그와 게펜, 스필버그는 드림웍스 공동 설립자다. /사진제공=CJ그룹
실무진은 10개월 간 끌며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결국 결정은 오너에게 넘어갔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그룹의 책임감과 소명의식을 갖고 잘 만들어보라”고 격려했다. 흥행공식 코드로 보면 손익분기점도 찍기 어려웠던, 참패가 내다보이는 영화는 그렇게 일사천리로 제작됐다. 흥행을 위한 영화가 아니라, 문화를 위한 영화를 만든다는 의식의 행위는 결과적으로는 대중의 열렬한 관심을 받고 1700만 관객이라는 한국 최고 영화 기록을 남겼다.
1700만 관객을 모으기까지 꼬박 20년이 걸렸지만, 문화를 대하는 태도는 지금이나 그때나 크게 다르지 않았다. 1995년 4월29일, 제일제당이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과 합작회사를 설립한다는 ‘뉴욕타임스’의 보도가 나온 이후, 관련 업계들은 ‘망하기위해 뛰어드는 자충수’라며 저마다 손가락질과 우려의 눈길을 보내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 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제조업의 경우 신흥공업국의 가격 경쟁력 때문에 더 이상 지속적인 성장이 어려웠다. 제일제당의 미래를 견인할 신흥 사업 중 금융과 정보통신 같은 첨단 업종도 후보에 올랐으나, 이 회장이 보는 분야는 ‘문화사업’, 그것이 전부였고 유일했다.
제일제당과 드림웍스의 합작 소식이 전해진 1994년 당시 신문기사. /사진제공=CJ 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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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경영진 중 한 명인 이미경 부회장(당시 이사) 역시 미국 유학 시절 한편의 영화나 뮤지컬, 연극 등이 미치는 파급력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잘 만든 영화 한 편이 자동차 수 만대를 수출하는 것보다 더 많은 수익을 낼 수 있다는 가능성에 주목한 것이다. 이 이사는 한 강연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미국 유학 시절은 놀랍고 충격적인 경험이 많아 오래도록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선진국의 문화적 기반을 부러워할수록 우리나라 문화 수준은 깊은 상처가 되었습니다. 그 생각은 어떻게 한국을 알려야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습니다. 그것이 바로 문화사업이었습니다. 한국 문화의 글로벌화를 통해 국가 브랜드를 세계에 인식시켜야겠다는 결심의 단초가 되었습니다.”
◇드림웍스 투자성사시킨 이재현 회장, 1993년 청바지차림으로 스필버그 사무실로
드림웍스
계약은 성공적이었다. 95년 4월, 제일제당이 3억 달러를 투자하는 2대 주주로 참여해 아시아 지역(일본 제외)의 판권을 보유하며 영화배급, 마케팅, 영상 관련 기술 등 할리우드의 노하우를 지원받기로 합의한 것이다. 그 해 8월, 멀티미디어사업부가 신설돼 CJ엔터테인먼트가 출범했고, 98년엔 국내 최초의 멀티플렉스 극장인 ‘CGV강변11’이 오픈했다.
국내 최초 멀티플렉스 극장 'CGV강변11'. /사진제공=CJ E&M
제프리 카젠버그 드림웍스 최고경영자는 CJ엔터테인먼트 출범 15주년 기념 방한에서 “짧은 기간에 방송, 영화, 음악, 공연 등 엔터테인먼트 미디어 그룹과 식품, 유통 등 라이프스타일 기업이 결합해 시너지 효과를 내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했다는 게 놀랍다”며 “미국이나 유럽 기업도 쉽게 만들어내지 못한 포트폴리오라는 측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2011년 상암동 시대를 여는 CJ E&M 개국식에서 김구 선생의 말을 인용하며 거듭 문화의 국격을 강조했다. “국력이라는 건 외침을 막을 정도면 되지만, 문화는 해외에서 국격을 높이고 즐겁게 살 수 있는 나라를 꿈꾸는 거니까요.”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할 만큼 건강이 악화된 이 회장은 최근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살고 싶다. 내가 시작한 문화사업을 포함해 미완성 사업들을 반드시 완성시키고 싶다”며 문화사업에 대한 의지를 끝내 꺽지 않았다. 적어도 그 발언이 허언(虛言)으로 읽히지 않은 건 20년간 한결같이 주장하고 실천해온 불변의 신념때문이다.
2011년 상암동 시대를 연 CJ E&M. /사진제공=CJ E&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