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가 짓지 않았다면 123층 초고층 랜드마크는 없었다

머니투데이 송지유 기자 2014.09.18 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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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보는 세상]수조원 개발이익 대신 과감한 랜드마크 투자…오해말고 제 평가해야

롯데가 짓지 않았다면 123층 초고층 랜드마크는 없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다. 서울 여의도 '63빌딩'으로 같은 학년 전체가 단체견학을 간 적이 있다. 같은 서울이지만 여의도에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강동구 초등학생들 사이에선 63빌딩에 대한 유언비어가 난무했다. "많은 사람들이 올라가면 건물이 무너질 수도 있대", "수족관에서 헤엄치던 언니(아쿠아리스트)가 상어에 물려 죽었다는데?", "여의도는 섬이어서 배를 갈아타야 들어갈 수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터무니없는 내용이지만 당시엔 꽤 진지하게 들렸다. 견학 당일 엘리베이터 탑승을 위해 꽤 오랜 시간을 대기했는데 반에서 한 두 명은 "전망대에 올라가지 않겠다"며 눈물을 터뜨려 선생님들을 난처하게 했다. 하지만 견학이 끝난 뒤 4학년생들의 63빌딩 전망대와 수족관 무용담은 한참동안 이어졌고, 선후배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63빌딩은 1985년 완공 당시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빌딩으로 큰 화제를 모았다. 우선 높이만으로 누구나 한번쯤 가고 싶어하는 명소가 됐다. 서울을 대표하는 랜드마크 빌딩이었다. 63빌딩은 특히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앞둔 대한민국 경제 발전의 한 단면이었고 서울시민들의 자랑이기도 했다. 사실 지상 60층짜리 건물인데 지하 3층을 합해 63빌딩이라고 명명했지만 그 누구도 꼼수라고 지적하지 않았다.

63빌딩(247m)이 완공된 지 30년새 인천 송도 동북아무역센터(305m), 부산 해운대 위브더제니스(301m), 서울 도곡동 타워팰리스(263m) 등이 건립되면서 63빌딩의 상징성은 약해졌다. 전 세계 마천루 경쟁이 치열해져 두바이 부르즈 칼리파(828m), 대만 101타워(508m), 말레이시아 페트로나스타워(452m) 등이 등장하면서 높이로는 명함을 못 내밀게 됐다. 당장 2015~2016년에는 중국에서만 핑안 국제금융센터(648m), 상하이 타워(632m), 골든 파이낸스(597m) 등이 완공된다.



그러나 한국에도 이에 필적할만한 사업장이 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제2롯데월드, 555m)다. 2016년 말 준공되면 한국에서 가장 높고, 전 세계에서 6번째로 높은 빌딩이 된다. 하지만 교통 혼잡과 안전성 등 각종 시비에 휘말려 사업 추진에 난항을 겪고 있다. 부속건물인 '롯데월드타워&몰'(123층 타워와 별도로 지은 지상 8∼11층, 3개동 규모 상업용 시설)은 지난 5월 공사를 마치고 임시사용승인을 신청했지만 수개월째 사용 허가가 나지 않고 있다.

서울시는 롯데의 임시사용 승인 신청서와 보완 자료를 검토해 '적합' 결론을 내렸지만 최종 승인은 내주지 않고 있다. 교통대책 비용으로 당초 승인조건보다 1000억원을 더 받기로 하고도 여론의 눈치 보기에 급급하다. 시민들에게 먼저 개방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시간을 끌고 있다.

6∼7월부터 개장을 준비해온 롯데의 속은 타 들어간다. 개장이 지연되면서 1000여개에 이르는 입점예정 업체들이 구매했던 상품들은 전시 한번 해보지 못하고 재고가 됐다. 백화점과 면세점, 쇼핑몰 등에서 근무하려고 대기하던 인력도 대거 이탈하고 있다. 개장이 늦어져 입는 손실만 월 900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서울시가 건축물 사용승인에 앞서 꼼꼼하게 점검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자신들의 책임을 피하려고 실효성 없는 장치를 만들고 시간을 끄는 것은 곤란하다. 롯데그룹이 잠실 금싸라기 땅에 롯데월드타워가 아닌 30~40층 규모의 주상복합아파트를 지었다면 수조원대 개발이익이 가능했다. 그랬다면 지금처럼 여론의 뭇매를 맞을 이유도 없다.

"세계가 부러워할 만한 초고층 건물을 지어 고국에 바치고 싶다"는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숙원도 일정부분 순수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어 보인다. 부지매입비를 빼고도 3조5000억원을 투입한 이 현장의 투자 손익을 맞추려면 30년 가까이 걸린다. 롯데가 짓지 않았다면 한국에 이런 초고층 랜드마크는 이후로도 오랫동안 나오지 못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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