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호의 책통] '유년동화'가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한다.

머니투데이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2014.09.13 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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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호의 책통] '유년동화'가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한다.


동화작가 임정자는 ‘창비어린이’ 2014년 가을호 특집 ‘아동문학 위기, 어떻게 할까?’에 실린 ‘그래도 쓴다’에서 “2000년대를 전후해서 아동문학의 동화성, 그러니까 공상성 혹은 판타지성은 단순한 의인화 기법을 넘어서서 또 다른 시공간으로 그 영역을 확장해 가고자 했다. 이런 변화에 큰 도움을 준” 것은 이오덕의 우리 말 우리 글 운동, 서정오의 ‘옛이야기 보따리’ 시리즈, 현덕 동화집 ‘너하고 안 놀아’, 아동문학평론가 이재복이 이끌던 공부모임과 소식지 ‘이야기밥’ 등 넷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특히 원종찬이 발굴해 1995년에야 세상에 내놓은 ‘너하고 안 놀아’를 들여다보며 “일상과 놀이를 통해 드러나는 어린이의 내면세계를 동화의 영역에서 어떻게 실감 나게 표현할 것인지 연구했다”고 밝혔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아동문학은 활황이었을 뿐만 아니라 박기범의 ‘문제아’(1999), 황선미의 ‘마당을 나온 암탉’(2000), 김중미의 ‘괭이부리말 아이들’(2000) 등의 기념비적인 작품이 출현해 아동문학 시장이 더욱 활성화됐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부터 침체되기 시작한 아동문학 시장은 10년째 아무런 돌파구를 뚫지 못하고 있다.



‘너하고 안 놀아’는 한동네에 사는 노마와 영이, 기동이, 똘똘이 네 아이를 주인공으로 아이들의 놀이 세계를 생생하게 그려낸 현덕의 ‘유년동화’집이다. 이오덕은 ‘동화를 어떻게 쓸 것인가’(삼인)에서 “어디까지나 살아 있는 아이들의 개성과 행동을 따라가면서 그 아이들의 말이며 하는 짓”을 그려놓은 현덕의 유년동화는 “아이들을 장난감으로 보고 즐기는 함정에 빠지지 않았고, 아이들을 어른들의 생각을 나타내는 수단으로 삼지도 않았다. 어디까지나 아이들을 글쓰기의 주체로 목표로 삼았고, 아이들을 겨레의 중심으로 희망으로 보았다”고 평가했다.

유년동화는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1, 2학년 정도의 아동을 대상으로 지어진 창작동화다. 대형 영어학습서 출판사들이 이 시기에 언어학습의 ‘성장판’이 열린다며 이들을 겨냥한 책들을 펴내놓고 대대적인 마케팅을 벌이는 것을 보면 이 시기의 책읽기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창비는 최근 ‘시골 쥐의 서울 구경’(방정환, 이태준 외), ‘벼알 삼 형제’(주요섭 외), ‘콩 눈은 왜 생겼나’(조지훈, 박목월 외) 등 유년동화의 정수를 모은 세 권의 ‘근대 유년동화 선집’을 펴내면서 ‘첫 읽기책’이라는 선전 문구를 달았다.



어떤 일이든 처음이 중요하다. 그림책을 읽던 아이들이 한글을 갓 떼면서 처음으로 읽어 몸으로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유년동화 한 편이 한 사람의 인생을 뒤바꿀 수 있다. 그러나 요즘 시장에는 교과 학습을 강조하는 책만 차고 넘친다. 출판 불황의 해법은 의외로 간단할 수 있다. 아마도 수준 높은 유년동화가 넘치는 날 ‘출판 불황’이라는 말은 찾아보기 어려울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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