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호의 책통]'인구절벽'과 영유아 그림책

머니투데이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2014.08.30 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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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생애에서 소비가 가장 많은 연령대인 45~49세 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하는 ‘인구절벽’과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인구충격’은 출판 시장을 어떻게 변화시킬까?

‘머니투데이’는 지난 6월 19일의 특집 기사에서 “2020년은 미국의 경제 전문가인 해리 덴트가 한국의 인구절벽이 시작되는 시점으로 지목한 해”라고 밝혔다. 세계 1위를 달리는 저출산율은 시장의 규모를 원천적으로 줄여놓고 있다.



아직 2020년이 몇 년 남았음에도 올해 영유아 출판물을 펴내는 출판사는 적게는 30%, 많게는 50%가 매출이 폭락했다고 아우성이다. 이 시장이 이렇게 침체한 이유는 신간을 펴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영유아 그림책은 개발 기간이 상대적으로 길뿐만 아니라 개발 비용도 만만찮게 투입되는 반면에 개발 비용 회수가 어렵다.

‘인구 변화’로 소비인구가 크게 줄고 있어 기획 자체를 꺼리고 있다. 그래서 창작그림책보다 외국 그림책을 선호하지만 외서의 경우에도 5년마다 저작권을 갱신하는 요구가 많아져 5년 안에 손익을 맞추기가 어렵다. 따라서 출판사들이 책 출간 자체를 기피하기 때문에 질 높은 책의 출간은 요원해지고 있다.



더구나 영유아 그림책은 구매자라 할 수 있는 부모들이 검증된 책만 찾는 경향이 있어 스테디셀러가 베스트셀러 상단을 대거 점유하고 있다. 지금 베스트셀러 상단에 올라있는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과가 쿵’ ‘괜찮아’ ‘달님 안녕’ ‘틀려도 괜찮아’, ‘솔이의 추억 이야기’ ‘강아지똥’ ‘누가 내 머리에 똥샀어?’ 등은 모두 2006년 이전에 출간된 책들이다.

영유아 그림책 신간을 펴내기 어려운 또 다른 큰 이유는 입소문을 내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북섹션마저 축소되다보니 홍보할 매체가 거의 사라졌다. 더구나 이 책들은 언제든 대체가 가능해 부모가 새로운 책을 애써 찾지 않는다. 아무리 좋은 책을 내놓아도 같은 테마의 책이면 무조건 값이 싼 책만 찾는 경우가 많아 경천동지할 일이 벌어지지 않는 한 이 분야에서 대형 신간이 출현하는 것을 기대하기가 어렵다.

‘인구절벽’으로 말미암은 경제위기를 먼저 겪은 일본은 7-8년 전부터 아동출판사가 적자를 내기 시작하다가 5년 전부터는 모든 아동출판사가 적자 상태로 접어들었다고 한다. 우리라고 다르지 않다. 2000대 초반 그림책 시장의 호조로 성장을 구가하던 출판사들이 최근 일제히 적자상태로 접어들었다고 아우성이다.


최근 마리옹 바타유의 팝업북 두 권의 번역본이 이 출간됐다. 1부터 10까지의 숫자를 팝업의 형식으로 셀 수 있게 만든 ‘10’과 알파벳의 형식과 모양의 경계를 넘어서 작가의 무한 상상력과 과학적 기술을 결합한 그림책 ‘ABC3D’(이상 보림)를 넘겨보면서 그 수준에 놀라웠다. 하지만 이런 수준 높은 책이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지가 염려되어 큰 한숨부터 쉬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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