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이건희 회장 공백 100일, 깊어지는 미래 고민"

머니투데이 서명훈 기자, 정지은 기자 2014.08.14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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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 경영의 힘' 사업조정 등 현안 착착 진행, 미래예측 공백에 대한 우려 커져

삼성 "이건희 회장 공백 100일, 깊어지는 미래 고민"


“어서 빨리 완쾌하세요. 보고 싶습니다”

삼성그룹 사내 전산망인 싱글에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쾌유를 기원하는 직원들의 글이 하루에도 70여 건씩 올라오고 있다. 지난 5월 10일 이 회장이 급성심근 경색으로 쓰러진 이후 현재까지 약 7000건의 응원 메시지가 줄을 잇고 있다. 오는 17일이면 이 회장의 입원으로 경영공백이 생긴 지 100일째로 접어든다.

지난 100일에 대한 삼성 내부의 평가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우선 총수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계열사간 업무조정이나 애플과의 소송 등 굵직굵직한 현안들이 무리없이 진행되고 있는데 대해 안도하는 분위기다. 이번에도 사람이 아닌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삼성 특유의 강점이 빛을 발했다는 평가다.



하지만 이 회장의 공백이 길어지면서 미래에 대한 고민은 점점 더 커져가는 분위기다. 10년, 20년 후를 내다보는 이 회장의 혜안이 지금의 삼성을 만드는데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이 회장 부재, 깊어가는 ‘미래’ 고민
삼성 고위 관계자는 “1993년 프랑크푸르트 선언 당시에는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많았지만 5년 혹은 10년 안에 대부분 현실이 됐다”며 “다른 기업들보다 미래를 먼저 예측하고 준비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몇 십 배나 더 큰 글로벌 기업과 경쟁에서 이길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삼성의 최근 30년을 돌이켜 보면 삼성 내부에서 이런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삼성전자를 처음으로 세계 1위 반열에 올려놓은 것은 반도체다. 반도체 사업이 화려한 꽃을 피울 수 있었던 것은 이건희 회장의 공이 크다.

공격적 투자와 함께 기술방식을 선도하는 혜안이 이 회장에게는 있었다. 당시 반도체 기술의 주류는 아래로 파고 내려가는 트렌치(Trench) 방식이었지만 이 회장은 위로 쌓아 올리는 스택(Stack) 방식을 선택했다. 트렌치 방식은 갈수록 복잡해지는 기술을 수용하지 못했고 삼성전자는 기술격차를 크게 줄일 수 있었다.

낸드플래시 개발 때도 마찬가지다. 일본 도시바와 협력해 기술을 개발할 것인가, 독자개발할 것인가를 놓고 전문경영인들이 고민할 때 이 회장이 독자개발로 과감히 결정하면서 오늘날 전세계 낸드플래시 1위의 기초를 다졌다.


삼성전자 이익의 70%를 담당하는 휴대폰 사업도 단적인 예다. 이 회장은 “반드시 1명당 1대의 무선 단말기를 가지는 시대가 올 것”이라며 “전화기를 중시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1990년대만 해도 전세계 무선전화기 시장은 미국 모토롤라가 석권하고 있었지만 한국만 유일하게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지 못했다.

또 다른 삼성 관계자는 “2~3년 시장상황을 예측하는 것은 최고경영자(CEO)의 몫이고 대부분 할 수 있다”며 “하지만 아날로그시대에서 디지털로 바뀌는 것과 같은 큰 변화를 읽어내는 것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변화의 속도가 한층 빨라졌다는 점도 이 회장의 공백을 걱정하게 만드는 또 다른 이유다. 한 때 세계를 호령했던 노키아의 경우 세계 1위 자리에서 마이크로소프트(MS)에 매각될 때까지 채 3년이 걸리지 않았다. 시대의 변화에 한번 대응을 잘못하면 아무리 큰 기업이라도 문 닫을 각오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 위기의 삼성, ‘비전 2020’ 해법될까
지난 2분기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이 2년 만에 7조원대로 떨어졌고 영업이익의 70%를 담당했던 스마트폰 성장세도 확연히 꺾인 모습이다. 3분기 역시 회복에 대한 기대보다는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삼성전자의 ‘위기’를 말하는 이들이 부쩍 늘어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일부에서는 실적 악화의 원인을 이 회장의 공백과 연관시키기도 하지만 다소 지나친 해석이다. 오히려 스마트폰의 뒤를 이을 삼성전자의 미래 성장동력을 찾고 부진에서 벗어나는 시기를 단축시키는데서 이 회장의 공백이 느껴질 가능성이 높다.

삼성은 1997년 외환위기 직후 3년 만인 2000년 전 계열사 흑자를 달성하며 다른 기업들을 놀라게 했다. OECD 회원국 가입으로 모두가 들 떠 있던 1996년 삼성은 이 회장의 지시로 경영 전 분야에 걸쳐 3년 동안 원가 및 경비의 30%를 절감하겠다는 '경비 330 운동'을 강력하게 추진, 차세대 사업에 집중한 덕분이었다.

삼성 내부에서는 ‘비전 2020’이 위기극복을 위한 하나의 해법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은 이 회장이 경영일선에 복귀한 2010년 △바이오제약 △의료기기 △발광다이오드 △자동차용전지 △태양전지 등을 5대 신수종 사업으로 선정하고 2020년까지 23조 3000억원을 투자해 50조원의 매출을 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 회장의 혜안이 여기에 녹아 있는 만큼 이 회장의 공백을 최소화해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삼성 관계자는 “5대 신수종 사업에서 아직 뚜렷한 실적이 나오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지만 5년, 10년을 내다본 계획”이라며 “사업 특성상 서서히 성과가 나오기보다는 사업이 본궤도에 오른 시점에 급성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이 회장의 건강상태는 계속 호전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관계자는 "여러 가지 면에서 상당히 호전되고 있다"며 "삼성병원 의료진들은 이 회장의 병세가 지속적으로 회복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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