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기업이 성공해서 대기업이 되면 경영자는 항모의 함장과 같아진다. 항모의 함장은 전혀 다른 환경에서 일한다. 배 한쪽에서 문제가 생겨도 눈에 바로 보이지 않고 한참 후 보고를 받는다. 수천 명의 부하가 모두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각자 임무를 수행하기 때문에 소통과 현황파악이 어렵고 상관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잘 움직이게 하는 전혀 다른 차원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함장은 배 모든 부분에서 완벽하게 일이 돌아가길 기대할 수 없고 끊임없이 크고 작은 사고가 날 것도 감안해야 한다. 사실 이는 대기업 경영자, 대형 금융기관 수장이라면 익히 아는 것들이다. 지구상의 그 누구도 글로벌 규모의 금융기관업무를 직접 속속들이 파악할 능력은 없다. 항모 한국 대기업과 금융기관 함장들은 매뉴얼을 들고 함교로 올라가 디지털레이더 화면을 들여다보기 시작해야 한다. 큰 배가 어디로 가는지 회사 안팎의 모든 사람이 알게 해줘야 한다.
2005년에 들어서면서 PC시장의 포화로 델이 66%를 차지하던 시장의 성장이 둔화되기 시작했다. 이듬해인 2006년 델은 HP에 1위 자리를 내주는 충격을 받아 대대적인 인력과 사업의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그러나 델의 새 전략은 성공하지 못했고 2011년 레노버의 부상과 함께 업계 3위로 떨어진다. 회사가 5년 연속 정체상태에 처하자 2013년 초 창업경영자 마이클 델은 사모펀드 실버레이크와의 합작으로 바이아웃으로 위기를 타개하기로 결정했다. 공개기업인 상태로는 이행하기 어려운 장기전략의 실천과 보다 과감한 구조조정을 위해서였다. 이 딜은 총 244억달러 규모였고 150억달러의 부채를 동원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20억달러를 지원했다.
거래가 종결된 후 마이클 델은 회사가 25년 전 창립됐을 때와 비슷한 체질과 잠재력을 다시 가지게 되었다고 자평했다. 실버레이크는 앞으로 사모펀드라기보다 벤처캐피탈과 같은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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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딜과 자본시장의 위력으로 지금은 큰 기업도 바이아웃을 통해 구조조정을 할 수 있다. 델 사례가 다시 한 번 이를 보여주었다. 국내 기업들은 차입매수가 형법상 배임죄에 해당될 수 있다는 법원 판례로 제약을 받지만 위법하지 않은 거래구조를 만들어내는 게 불가능하진 않을 것이다. 대형 상장회사들이 바이아웃을 활용할 수 있는지, 실제로 투자은행과 사모펀드들이 그를 지원할 수 있는지는 좋은 연구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