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어요. 집을 샀으니까, 이제 좋은 차를 사야지 싶었죠.”
쏘나타는 안정된 중산층의 상징이었다. 최현모 씨(68)는 가족들과 꿈에 그리던 마당 있는 집을 산 이후에야, 2001년 은색 EF 쏘나타를 샀다. 공직에 있던 아내와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50대 중반에 산 이 차를 은퇴 후 지금까지 타고 있다.
이들에게 그랜저는 과했고 아반떼는 작았다.
1985년 등장한 1세대 '소나타'는 이듬해 쏘나타로 이름을 바꾸고 한국 경제의 상징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사진제공=현대자동차
대한민국 1세대 카 디자이너 박종서 전 현대자동차 부사장은 첫 번 째 쏘나타에 대해 이렇게 회고한다. “당시 디자인 면에서는 운전자에게 최대한 넓고 안락한 느낌을 주기 위해 애썼던 때입니다. 사람들은 한국에서 만든 고급차를 산다는 것에도 의미를 뒀습니다. ‘애국’의 개념을 들지 않아도 더 비싼 차를 살 수 있는 부유한 기업인들조차 이 점을 당연히 여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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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2세대 쏘나타는 한국 첫 중형차 수출의 주인공이다. 중형세단의 상징인 후륜 구동 대신 한국 기후에 맞는 전륜구동을 선택했다. 1991년 2세대 부분변경 모델인 뉴 쏘나타는 국산 중형 사상 DOHC 엔진을 최초 적용했다./사진제공=현대자동차
아버지 차를 운전하는 아들은 있을지언정 구매자 리스트에는 한 명도 없었다. 좀처럼 사회 초년생에게 쏘나타의 주인이 될 기회는 허락되지 않았다.
1993년 3세대 쏘나타II는 33개월만에 60만대 판매를 달성해 국산 중형차의 대중화를 알렸다./사진제공=현대자동차
1996년 3세대 부분변경 모델인 쏘나타III의 출시 후 쏘나타는 국내 판매 100만대를 돌파했다./사진제공=현대자동차
1998년 4세대 EF 쏘나타를 두고 현대차는 대한민국 중형차의 기술 독립을 선언했다고 평가한다. 175마력의 2,500cc 델타 엔진과 인공지능 하이벡과 4단 자동변속기 등을 적용했다./사진제공=현대자동차
2001년 4세대 부분변경 모델 뉴 EF 쏘나타는 美 JD파워 신차 품질 1위를 수상했다./사진제공=현대자동차
“NF 쏘나타가 제 생애 첫 차예요. 새 차를 사서 오래 탈 생각이었기 때문에 제 연봉에 비해 과하다고 여기지는 않았어요.” 회사원 이충원 씨(35)의 회고다.
3000만원 대 초봉을 받는 금융사 공채 입사자가 2000만원 대 쏘나타를 사는 것은 무리가 아니었을까. “저희 부장님은 그랜저를 몰아요. 같이 입사한 친구는 SM5를 샀고요. 저희보다 덜 보수적인 직장에 다니는 친구들은 미니 같은 3000만원 대 수입차를 모는 친구들도 많아서 그렇게 사치스럽지도 않아요.”
이 씨와 친구는 그 사이 결혼해 아버지가 됐고 내년 과장 진급을 앞두고 있지만 직장과 차는 바뀌지 않았다. “아 참, 골프 타는 친구는 공무원이에요. 기관에 따라 분위기는 다르겠지만요.”
2004년 5세대 NF 쏘나타는 46개월의 개발 기간을 거쳐 순수 독자 기술로 개발한 2.0/2.4 세타 엔진을 올렸다./사진제공=현대자동차
2007년 5세대 부분 변경 모델 NF 쏘나타 트랜스폼. 2.0 세타Ⅱ자동변속기의 경우 당시 163마력, 11.5km/ℓ의 연비로 주목 받았다./사진제공=현대자동차
“이전에는 어느 정도 자리 잡기에 성공한 가장의 상징이었다면 지금은 가족을 의식하지 않는 청년의 첫 차로까지 영역을 넓히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동급대비 최대 만족을 주는 차라는 명제에 쏘나타만큼 충실한 중형 세단을 찾기란 쉽지 않거든요. 7세대 LF 쏘나타를 통해 새로운 자기 성격을 잡기 시작했다고 봅니다.”
◇ 서른 살답게 진중하게 가자
사실 쏘나타는 매 세대별 같은 이름 안에 전혀 다른 스타일을 매번 다른 차를 보여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화려하게 부풀어 갔다. ‘플루이딕 스컬프처’를 천명하고 가장 확실히 바뀐 6세대 YF 쏘나타에서 정점을 찍었다.
2009년 6세대 YF 쏘나타는 가솔린과 터보, 그리고 국내 최초의 하이브리드 모델까지 갖추고 청장년층을 공략했다./사진제공=현대자동차
너무 날카롭고 파격적인 디자인이라는 우려 속에 60~70대 구매자는 떠나보냈지만 결과적으로 성과는 20~30대 운전자의 선택으로 이어졌다. 올해 출시된 7세대 LF 쏘나타의 구매자 중 20~30대는 51.1%에 이른다. 1985년 첫 출시된 1세대와 쏘나타의 총 출고 고객 중 20대부터 40대까지의 청·중년층 비중이 1.7%였던 걸 생각하면 상전벽해다.
올해 상반기 국내 베스트 셀링카 넘버 1에 쏘나타가 올랐다. 현대차 측은 △‘플루이딕 스컬프처 2.0’을 반영해 보다 정제되고 품격 있는 감성 디자인을 추구한 것과 △초강력강판 사용과 연비 향상, 운전 성능 개선처럼 체감 가능한 기능의 발전이 개성과 실용을 중시하는 2030세대들에게 어필했기 때문이라 평가한다.
스스로 쏘나타의 인기 비결을 인정하고 다시 기본적인 품질 관리에 집중하기로 했다는 것, 또 정체성이 있는 디자인의 중심을 잡아가기 위해 참을 것은 참기로 했다는 얘기다. 올해 새롭게 시작한 현대차의 광고 ‘본질로부터’ 시리즈가 바로 그러한 결심을 보여준다.
2009년 6세대 LF 쏘나타는 가솔린에서 터보, 그리고 국내 최초의 하이브리드 모델까지 갖추고 청장년층을 공략했다./사진제공=현대자동차
“지금 320d와 벤츠 C클래스와 같이 독일차에 마음을 뺏긴 고객들의 마음을 돌려놓겠다. 오랜 세월 우리를 사랑해 온 팬들 중에는 우리의 급격한 변화를 비난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곧 그들도 우리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이 말은 2014년 오늘 현대차의 대답이 아니다. 2001년 GM의 존 자렐라가 '뉴스위크'와 대담에서 캐딜락 CTS의 변화를 예고했던 말이다. 그는 1980년대 후반부터 미국 자동차 업계에서 마케팅 황제라 불리던 인물이다.
결과는? ‘올드팬’을 무시한 과격한 디자인과 성능의 변화는 미국 중산층이 성공의 첫 관문으로 바라보던 CTS의 자리를 잃게 만들었다. 의욕이 과하면 황제도 틀릴 때가 있다. 다시 차분히, 기본으로 돌아가고 있는 서른 살 쏘나타의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