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끌벅적 '100일' 후에도 "진도의 시간은 흐릅니다"

머니투데이 진도(전남)=박소연 기자 2014.07.25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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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100일]진도 100일 맞이 실내체육관·팽목항 1박2일 르포

세월호 여객선 침몰 참사 100일째인 24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서 열린 '100일의 기다림' 행사에서 실종자 가족과 학생들이 남은 실종자 10명의 귀환을 기원하며 노란 풍선을 날리고 있다. /사진=뉴스1세월호 여객선 침몰 참사 100일째인 24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서 열린 '100일의 기다림' 행사에서 실종자 가족과 학생들이 남은 실종자 10명의 귀환을 기원하며 노란 풍선을 날리고 있다. /사진=뉴스1


"아직도 안 나왔어?"

세월호 100일을 하루 앞둔 23일, 다섯살 지연이가 고모에게 물었습니다. 사고로 엄마는 하늘나라로 떠나고 아빠(권재근씨·51)와 오빠(권혁규군·6)는 아직 바다 속에 있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지연이는 오랜만에 온 진도 실내체육관을 총총거리며 뛰어다닙니다. 고모 눈엔 눈물이 맺혔습니다. "아직 못 찾은 것만 알아요. 엄마 나온 것도 모르고. 처음엔 제주도 먼저 가있는 줄 알았는데 제주도 집 가봐도 없으니 애가 확인하고 또 확인하더라고, 아빠 냄새 맡는다고."

100일을 앞두고 진도는 별안간 활기가 돌았습니다. 발길 끊었던 취재진이 몰려왔고 평소보다 많은 유가족, 시민들이 방문했습니다. 하루하루 버텨낼 힘조차 떨어진 10명 실종자 가족들은 고마우면서도 복잡한 마음으로 1박2일을 보냈습니다.



◇어차피 떠나갈 관심이지만, '그래도'…

"애 태어나고 100일 잔치도 아니고. 국민들께서 해주신다니까 그렇지 사실 조용히 있는 게 맞다고 생각하거든. 개인적인 생각은 그래요. 많은 기자님 작가님 피디님 오시잖아요. 근데 왔다가 부리나케 갈 거 아니에요. 그건 의미 없다고 생각해요. 호소한다고 달라진단 기대도 안 해요. 욕할 사람은 뭘 해도 욕하더라고요. 지지해주시는 분들은 계속 지지해주시고."



세월호 여객선 참사 100일을 하루 앞둔 23일 전남 진도군 진도실내체육관에서 실종자 가족들이 자녀들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뉴스1세월호 여객선 참사 100일을 하루 앞둔 23일 전남 진도군 진도실내체육관에서 실종자 가족들이 자녀들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뉴스1
23일 오전, 가족들은 미리부터 서운함을 드러내면서도 방문하는 이들 한 명도 홀대하지 않았습니다. 반가운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젊은 작가와 기자들에게 구아바와 체리, 떡을 나눠주기에 바쁩니다. "100일 끝나면 바로 갈 거지?" 하면서도 "오라면 와야지 막내들이 무슨 힘이 있겠냐"라며 웃습니다.

저녁 7시 반쯤, '기다림의 버스'를 타고 전국 곳곳에서 시민 170여명이 실내체육관을 찾았습니다. 이들은 지난달부터 매주 금요일 무박 2일 일정으로 팽목항을 찾았지만 실종자 가족들을 만나러 온 건 이날이 처음입니다.

이들의 만남에 앞서 실종자 가족 법률대리인 배의철 변호사는 당부의 말을 잊지 않았습니다. "100일간 수많은 이들이 가족들을 보러 왔다 가면서 가족들은 마치 '동물원 원숭이'가 된 것 같다고 하십니다. 부디 한 번의 이벤트성 방문이 아니고 참사가 종료될 때까지 함께하겠다는 진심어린 마음을 전달해주세요."


시민들은 경건한 자세로 줄지어 들어와 체육관 한켠에 모여 앉은 실종자 가족들을 향해 3배 절을 하고 무릎을 꿇었습니다. 가족들도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맞절을 했습니다.

양한웅 '기다림의 버스' 운영위원장은 "저희가 금요일마다 팽목항과 진도 관제소를 갔지만 차마 이곳은 가족들 볼 용기가 없어서 못 왔습니다. 허락해주시면 마지막까지 몇 명이나마 체육관에서 함께 잠을 자며 기도하고 싶습니다"라고 마음을 전했습니다. 다른 시민들도 "많은 분들이 잊지 않고 있다"고 응원했습니다.

이에 남현철군(17) 아버지는 "편안하게 앉으시라"고 재차 말하며 "저흰 혹시 잊혀지지 않았나 참 위축돼 있습니다. 그만해라, 지겹다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칼로 찌르는 기분인데 위로가 되네요"라고 입을 열었습니다.

이어 "천안함 사건 때 나도 '사고 났네 참 아프겠다'고 막연히 생각했고 한두 달 지나고도 실종자들 얘기가 들렸을 때 '아직도 하나? 안 끝났어?'했는데 반성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살면서 한 번은 겪을 수 있는 일입니다. 별 기대 안 했는데 오늘 밤은 힘내서 잠들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현철군 아버지의 고백에 많은 시민들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시민들은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는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를 전달하고 심신이 지친 가족들의 휴식을 방해하진 않고 조용히 체육관을 떴습니다.

세월호 여객선 참사 100일을 하루 앞둔 23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 방파제에서 세월호 참사 국민 대책회의 회원들이 촛불을 들고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와 실종자들의 귀환을 기원하고 있다. /사진=뉴스1세월호 여객선 참사 100일을 하루 앞둔 23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 방파제에서 세월호 참사 국민 대책회의 회원들이 촛불을 들고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와 실종자들의 귀환을 기원하고 있다. /사진=뉴스1
◇애타는 '100일의 기다림'…"그대만을 기다리리"

"비바람이 치던 바다 잔잔해져오면 오늘 그대 오시려나 저 바다 건너서.
저 하늘에 반짝이는 별빛도 아름답지만 사랑스런 그대 눈은 더욱 아름다워라.
그대만을 기다리리. 내 사랑 영원히 기다리리."

진도 앞바다에 진혼곡이 울려 퍼졌습니다. 오후 10시부터 팽목항에서 열린 '100일의 기다림, 100일의 약속' 전야제에서 광주전남 문예팀은 아련한 몸짓의 무용과 구슬픈 노래 공연, 시낭송으로 희생자들의 넋을 기렸습니다. 비록 대다수의 가족들은 자리에 없었지만 시민 200여명이 촛불을 들고 함께했습니다. 행사 후엔 풍등을 날려 보내며 '더 나은 사회'를 향한 다짐을 함께 다졌습니다.

마침내 참사 100일째인 24일, 진도의 일상은 평소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오전 10시 반쯤 정홍원 국무총리가 체육관을 찾아 대한민국을 개조하겠다고 약속했고, 실종자 가족들은 100일째 변함없이 "마지막 1명까지 찾아 달라"는 요구를 반복했을 뿐입니다.

한편 같은 시간 실종자 이영숙씨(51·여)의 동생분은 진도 읍내의 한 병원 병실에서 100일을 맞았습니다. 사고 첫날부터 진도에서 누나를 기다리느라 식사도 거르고 무리했으니 폐에 탈이 날 법도 합니다. 외로운 병실에 이주영 해수부장관이 직접 가져온 과일과 서해청장의 화분이 놓여 있었습니다. 100일간 동고동락하며 장관도 실종자 가족들의 '가족'이 됐습니다. 영숙씨 동생분은 곧 큰 병원으로 옮겨 수술을 해야 한다면서도 "누나가 나오면 당장 찾으러 나갈 것"이라며 웃음 지었습니다.

세월호 여객선 침몰 참사 100일째인 24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서 열린 '100일의 기다림' 행사에서 실종자 가족들과 진도고등학교 학생들이 10명의 실종자를 그리워 하며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사진=뉴스1세월호 여객선 침몰 참사 100일째인 24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서 열린 '100일의 기다림' 행사에서 실종자 가족들과 진도고등학교 학생들이 10명의 실종자를 그리워 하며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사진=뉴스1
오후 2시엔 팽목항 방파제에서 진도군민과 가족대책위가 함께한 '100일의 기다림' 공식 행사가 진행됐습니다. 전야제 행사에 참여하지 않았던 실종자 가족들은 이날 행사마저 외면할 수 없어 아픈 몸을 이끌고 어려운 걸음을 했습니다. 땡볕 무더위에 시작이 30분이나 지연돼 가족들이 힘겨워하고 진도고 학생 한 명도 땡볕에 탈진해 쓰러져 실려 갔습니다.

사고 수습 과정에서 희생된 잠수사와 경찰관, 소방관을 기리는 묵념으로 시작된 행사는 이후 희생자들을 향한 편지 낭독과 100일 호소문 발표, 노랑 풍선 띄우기 행사로 이어졌습니다. 마지막으로 실종자 이름을 3번 부르는 시간, 실종자 가족들이 오열하기 시작했습니다.

"은화야 집에 가자. 은화야 집에 가자. 은화야 집에 가자."
"영인아 집에 가자. 영인아 집에 가자. 영인아 집에 가자."
"혁규야 집에 가자. 혁규야 집에 가자. 혁규야 집에 가자."

세월호 여객선 침몰 참사 100일째인 24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서 열린 '100일의 기다림' 행사에서 실종자 가족들이 자녀를 그리워 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뉴스1세월호 여객선 침몰 참사 100일째인 24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서 열린 '100일의 기다림' 행사에서 실종자 가족들이 자녀를 그리워 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뉴스1
야윌 대로 야윈 허다윤양(17) 어머니가 몸이 부서져라 통곡하자 시민들도 함께 흐느꼈습니다. "저거 뭐야? 비눗방울 보인다." 고모에 안긴 지연이가 방파제 위에서 진도 앞바다를 바라보며 해맑게 말했습니다. 100일 행사는 이렇게 끝이 났습니다.

◇이별, 다시 일상으로…"진도의 시간은 계속 흐릅니다"

오후 3시30분쯤, 실종자 가족들은 다시 체육관행 차를 탔습니다. 가족들은 별 말이 없었습니다. 훌쩍이며 눈물을 훔치는 어머니도 있었지만 '끝났다'는 후련함에 오히려 차분한 모습이었습니다. "진도고 애들은 데려왔으면 여기서 뭐 좀 먹여 보내야 할 텐데 뭐 좀 먹였나?" 본인들도 점심식사를 걸렀으면서 자녀뻘 되는 학생들 걱정에 바쁜 가족들입니다.

"엄마도 사랑해. 화이팅." 막간을 이용해 양승진 교사(57) 부인은 자녀와 전화통화를 했습니다. 사고 후 한 달 넘게 체육관을 함께 지키던 아들딸은 엄마의 설득으로 일상에 돌아갔지만, 오늘따라 생각나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오후 4시쯤, 다시 돌아온 체육관은 유난히 적막했습니다. 대형모니터에서는 100일 전 4월16일 사고 당시 희생자들이 찍은 동영상이 방영되고 있습니다. "배 각도가 많이 기울었다"며 아직은 맑게 웃는 학생들. 가족들은 더 이상 분노하거나 놀라지 않고 피곤함에 자리에 누웠습니다. 보다 못한 가족지원팀 관계자가 TV를 껐습니다.

"아버지 저 가요." 사고 초반 오래 함께하며 정들었던 사람들이 100일을 맞아 돌아왔다 또 작별을 고합니다. "저 진짜 다시 올게요. 아시죠?" 떠나는 사람도, 다시 남겨진 사람도 마음이 안 좋아 인사가 길어집니다. 실종자 가족들은 101일, 102일을 또 살아갈 겁니다. 이 비극의 숫자가 하루 빨리 멈추길 모두가 바라고 있습니다.
세월호 여객선 참사 100일을 하루 앞둔 23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 방파제에 실종자 10명의 이름이 적힌 깃발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사진=뉴스1세월호 여객선 참사 100일을 하루 앞둔 23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 방파제에 실종자 10명의 이름이 적힌 깃발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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