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도'라고 쓰고 '백성'이라 읽는다

머니투데이 권경률 칼럼니스트 2014.07.26 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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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경률의 사극 속 역사인물] 8. 추설··· 뭉치면 도적, 흩어지면 백성

'군도'라고 쓰고 '백성'이라 읽는다


조선 시대의 도적 이야기는 자못 흥미롭다. 홍길동, 임꺽정, 장길산, 일지매 등은 문학작품의 주인공을 넘어 오늘날까지 영화와 TV드라마를 주름잡고 있다. 영웅이 된 도적의 공통점은 ‘의적(義賊)’이라는 것이다. 부정 축재한 탐관오리를 응징하고, 빼앗은 재물로 어려운 백성을 돕는다. 최근 개봉한 영화 ‘군도 - 민란의 시대’ 역시 그런 도적을 그리고 있다. 단, 이번에는 영웅이 아닌 도적떼, 즉 ‘군도(群盜)’에 초점을 맞춘 것이 특이하다.

영화의 무대는 양반과 탐관오리들의 착취가 극에 달했던 조선 철종 13년. 힘없는 백성의 편에 서서 의적 노릇을 하는 군도가 있었으니 이름 하여 ‘추설’이다. 조선 후기로 접어들며 백성의 삶은 날이 갈수록 피폐해졌다. 삼정(三政)의 문란이 극에 달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기근까지 겹치면서 토지를 떠나 유랑하는 백성이 늘어났다. 그들이 관아를 습격해 곡식을 탈취하면 민란이 되고, 자리를 잡고 도적질을 일삼으면 군도가 되는 것이다.



극중 지리산 추설은 엄밀히 따지면 사실무근의 군도집단이 아니다. 김구 선생이 쓴 ‘백범일지’에 그 족적을 남겼다. 선생은 한일합방 직후 신민회 사건에 연루, 투옥됐는데 감옥에서 ‘불한당 괴수’ 김 진사라는 인물을 만났다. 김 진사가 털어놓은 군도의 내력은 단순한 도적무리가 아니었다. 1392년 조선이 건국되자 이에 불복한 고려의 유민과 승려들이 산중으로 들어가 비밀결사를 이어왔는데 그것을 조정에서 도적떼라고 폄하했다는 주장이다.

‘백범일지’에 따르면 군도 가운데 가장 세력이 컸던 조직은 강원도에 뿌리를 내린 목단설과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에서 활동한 추설이었다고 한다. 군도 조직의 우두머리는 ‘노사장’이라고 불렀고, 그 아래에는 사무장 격인 ‘유사’를 두었다. 영화에도 노사장과 유사가 등장하는데 특히 유사를 ‘땡추’로 묘사한 점이 눈에 띈다. 군도의 집회가 곧잘 절집에서 열렸다는 점을 감안하면 승려가 조직의 간부를 맡았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다.



김 진사의 증언은 매우 생생하고 구체적이다. 심지어 군도가 도적질에 나서는 모습까지 다루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화개장터 습격사건’이다. 도둑들은 상주, 호상객, 양반, 장사치 등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변장하고 장터로 스며든다. 상주가 주막에서 짐짓 다툼을 벌이면 구경꾼들이 모여드는 건 순식간이다. 이때 상여에 숨겨둔 무기를 나눠주고 영화에서처럼 한바탕 큰 도적질을 벌이는 것이다. 그 장물들은 가까운 사찰에서 분배되었다.

그렇다면 군도가 사회가 금기시하는 도적질에도 불구하고 끈질긴 생명력을 이어간 까닭은 무엇일까? 꼭 ‘백범일지’가 아니더라도 군도는 조선시대를 관통하며 끊임없이 역사기록에 출몰하고 있다. 15세기 연산군에겐 홍길동 무장집단이, 16세기 명종에겐 임꺽정 부대가, 17세기 숙종에겐 장길산 반란군이, 18세기 영조에겐 명화적이 골칫거리였다.

사실 조선시대의 군도가 모두 의적은 아니었다. 탐관오리를 응징하고 어려운 백성을 도운 무리는 있었다 해도 소수였을 터. 단지 백성을 쥐어짜고 토지에서 내모는 체제가 그들을 의적으로 보이게 만든 것뿐이다. 군도는 무리를 이끌고 체제에 저항했다. 조정에서는 도적떼라고 깎아내렸지만 백성에게는 한 줄기 희망으로 비쳤다.
조선의 지배층은 건국이념과 달리 탐욕을 제어하지 못했다. 백성의 입장에서는 노비가 되지 않으면 저항할 수밖에 없었다. 부당한 체제에 대한 백성의 저항이 군도를 뒷받침하는 힘이 되었고, 19세기에 이르러 민란으로 번진 것이다. 결국 뭉치면 도적, 흩어지면 백성인 셈이다. 그 속사정을 조선왕조실록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도적의 무리 가운데는 하루라도 연명하려는 자가 많습니다. 저들은 도적질하기를 원해서가 아니라 굶주림이 절박하여 그리 된 것입니다. 그럼 백성을 도적으로 만든 자는 누구입니까? 세도가의 문전에서는 공공연히 벼슬을 팔고, 무도한 자들을 지방수령으로 보내 백성을 약탈하게 합니다. 백성이 도적이 되지 않고 어찌 살겠습니까?” - 명종실록 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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