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한 문장 한 문장이 좋다. "참새가 집 앞의 호두나무에 앉아 지저귈 때 나는 혼자서 키득키득 웃었다." 천진난만한 친구 같으니, 하긴 소로가 월든 호숫가에 오두막을 짓고 살기 시작한 건 그의 나이 스물여덟 되던 해 여름이었다. 아직 청춘이다. 하지만 나보다 더 오래 산 것 같은 예리한 통찰의 구절도 나온다.
대단한 역설이지만 촌철살인의 진실을 담고 있다. 오늘도 열심히 바쁘게 산 것 같지만또 하루 의미 없이 소진해버린 게 아닌지 반성하게 해준다. 그런가 하면 요즘처럼 고령화 시대니 뭐다 해서 노후 대비에 초조해하는 사람들에게도 한 펀치를 날려준다.
'월든'을 펼치면 맨 처음 나오는 장(章) 제목이 경제(economy)다. 18개 장 가운데 가장 길고 전체의 4분의 1이 넘는 분량이다. 그렇다고 해서 뭐 대단한 경제이론을 설명하는 것은 아니고 숲에서 지낸 2년간의 대차대조표와 손익계산서를 시시콜콜 알려준다.
집 짓는 데 모두 28달러12.5센트가 들었는데, 판자 사는 데 8달러3.5센트, 벽돌 값으로 4달러를 썼으며, 첫 해 영농비로 14달러72.5센트를 지출했고 수확물을 팔아 23달러44센트를 벌었다는 식이다. 그러면서 한 마디 한다. "경제란 입으로는 가볍게 말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간단히 처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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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든'을 잘 읽어보면 소로가 아담 스미스의'국부론'이나 데이비드 리카도의'정치경제학과 조세의 원리' 정도는 이미 독파했음을 알 수 있다. 그 역시 살아가는 데 생활의 경제학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다만 맹목적인 효율성 중시와 지나친 부의 추구를 경계했을 뿐이다.
가령 이런 문장을 보자. "생활 필수품을 마련한 다음에는, 여분의 것을 더 장만하기보다는 다른 할 일이 있는 것이다. 바로 먹고 사는 것을 마련하는 투박한 일에서 여가를 얻어 인생의 모험을 떠나는 것이다." 존 메이너드케인스를 떠올려주는 대목이다. 케인스는 '우리 손자 세대의 경제적 가능성'에서 이렇게 썼다.
"불굴의 정신으로 돈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자신들과 함께 우리 모두를 경제적으로 풍요한 환경으로 이끌 것이다. 그러나 그런 시대가 도래할 때 그 풍요를 즐길 수 있는 사람은 삶의 기술을 활짝 꽃피우고 생계수단을 벌기 위해 자신을 팔지 않아도 될 사람들일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돈벌이 기술을 두 가지로 구분했다. 가정을 꾸려가는 데 필요한 자연스러운 상행위와 고리대금업처럼 돈 벌이 그 자체가 목적인 부자연스러운 상행위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전자를 가리켜 에코노미아(economia)라고 했는데, 경제학이라는 말은 여기서 나왔다. 후자는 크레마티스티케(chrematistike)라 했는데, 이재학(理財學)쯤으로 해석할 수 있다.
경제와 이재는 분명히 다르다. 이 두 가지를 구분할 줄 알아야 진짜 잘 살 수 있다. 소로가 전해주는 메시지가 그것이다.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얻으려고만 끝없이 노력한다. 때로는 더 적은 것으로 만족하는 법은 배우지 않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