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면칼럼] 이건희 회장을 위한 기도

머니투데이 박종면 더벨대표 2014.06.16 0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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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자리, 선두의 자리는 사람들이 부러워하고 영광이 쏟아지는 자리긴 하지만 사실은 매우 힘듭니다. 긴장이 가장 첨예하게 걸리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주역’에서는 선두 보다는 가운데를 가장 좋은 득위(得位)의 자리라고 말합니다.

올해로 28년째 삼성을 끌어가고 있는 이건희 회장은 대한민국 역사에서 누구도 해 내지 못한 일을 해낸 최고의 스타 CEO입니다. 삼성전자 같은 세계 초일류기업을 만들어낸 기업가가 이 회장 말고는 없습니다.



그런 이 회장이지만 이에 비례해 그가 받은 긴장과 압박도 상상을 초월합니다. 최근 10년간 있었던 일들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2005년 안기부 엑스파일 사건을 시작으로 2007년엔 비자금 사건과 특검으로 고초를 겪었고, 그 와중에 사상 초유의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견뎌내야 했습니다. 2008년 봄 이 회장은 “모든 게 내 불찰”이라며 은퇴를 했지만 세상은 그를 쉬도록 놔두지 않았습니다. 체육계가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도움을 청해왔습니다. 삼성 사장단도 애플의 공세에 위협을 느껴 그의 경영복귀를 간곡하게 요청했습니다.



2010년 3월 이 회장은 만신창이의 몸을 이끌고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앞만 보고 가자”며 다시 경영에 복귀하지만 하루도 편한 날이 없었습니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삼성전자의 최고 라이벌인 애플과 경쟁하면서 특허 소송전까지 치렀습니다.

특히 이 회장을 힘들게 한 것은 ‘상속분쟁’이었습니다. 삼성이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발돋움하는데 아무 역할도 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자기 몫을 달라고 했으니 말입니다.

이 회장은 때로 분노했지만 상속분쟁을 완벽하게 이겨냈습니다. 나아가 그는 다음 세대를 위해 삼성의 오랜 과제들을 소리 나지 않게 풀어갔습니다. 그룹의 순환출자를 해소하고 계열사별 사업을 조정하는 등의 지배구조를 개편하는 일이었습니다.


지난해 7월 삼성물산의 삼성엔지니어링 지분 매수를 시작으로 올 들어서는 삼성SDI와 제일모직 합병, 삼성종합화학과 삼성석유화학 합병, 그리고 최근의 삼성SDS와 에버랜드 상장 발표에 이르기까지 거침이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회장은 2007년 이후 그룹의 오랜 숙제였던 삼성전자 반도체사업장의 백혈병 피해 근로자 문제에 대해서도 단안을 내려 대승적 차원에서 사과와 함께 보상을 하도록 길을 열었습니다.

이제 삼성은 모든 면에서 아주 오랜만에 평화의 시기를 맞는 듯 했습니다. 그런데 인생은 늘 특별하지 않은 모양입니다. 아무리 야심찬 사업을 벌이더라도, 아무리 창조적인 일을 하더라도 우리들 삶의 내면은 예외 없이 그리 매혹적이지 않습니다. 근심과 노고는 인간의 따돌릴 수 없는 동행자입니다.

이건희 회장도 예외는 아닌 듯합니다. 삼성전자를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키웠고, 후대를 위한 지배구조 개편안까지 모두 마련했지만 정작 본인은 오랜 세월에 걸친 첨예한 긴장과 압박을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거인도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지난 5월 주말 밤 그는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졌습니다.

이건희 회장에게 “사업은 당신에게 삶의 문제입니까?” 라고 묻는다면 “아니요,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입니다”라고 답할 것입니다. 언제나 자신의 삶보다 사업이 더 중요했던 이 회장은 경영자로서의 길을 걸은 후 처음으로 자신을 위해 지금 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늘 그랬듯이 이번에도 다 이겨내고 우뚝 일어설 것으로 확신합니다.

이건희 회장의 빠른 쾌유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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