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미 희곡 전공자였던 여 교수는 셰익스피어의 '햄릿' '리처드 3세' '십이야(夜)' 등을 우리말로 옮기기도 했다.
1964년 한국셰익스피어학회를 창립했고, 1970~1980년에는 연극비평 전문지 '연극평론' 발행인을 맡는 등 이태주, 유민영, 한상철 등과 함께 국내 연극평론계 발전을 이끌었다. 1987~1988년에는 연극평론가협회 회장을 지냈다.
1953년부터 고려대에서 영문과 교수로 재직했다. 1954년에는 그를 포함해 30대 초반의 젊은 영문학자 8명이 '동인' 모임으로 한국영어영문학회를 설립, 현재 인문계열의 대표적 학회로 자리 잡았다.
상업적 연극을 경계하고 순수연극의 가치를 지키고자 한 그는 젊은 연극인들의 '정신적 지주'기도 했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1977년 대한민국학술원 회원으로 추대됐고, 국민훈장 목련장과 모란장, 은관문화훈장 등을 받았다.
'20세기 문학론' '희곡론' '현대연극' '한국연극의 현실' '동서연극의 비교연구' 등 연극에 관한 저작과 논문을 다수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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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으로는 여건종 숙명여대 교수와 경주씨, 효주씨 등 3남매를 비롯해 사위인 서민석 동일방직 회장, 노부호 서강대 명예교수가 있다.
장례식장은 삼성 서울병원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15일 오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