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雜s]'관피아' 빈 자리엔 '언피아'가 최고?

머니투데이 김준형 기자 2014.06.11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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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40대 남자가 늘어놓는 잡스런 이야기, 이 나이에도 여전히 나도 잡스가 될 수 있다는 꿈을 버리지 못하는 40대의 다이어리입니다. 몇년 있으면 50雜s로 바뀝니다. 계속 쓸 수 있다면...

"오~ 드디어 언피아(언론 마피아)의 시대가 열리는가"
경제부처 공무원과 후배 기자들과 함께 한 어제 저녁자리 화두는 당연히 문창극(66) 전 중앙일보 주필(대기자)의 총리후보 내정이었다.

40대, 50대를 넘긴 기자 명함에 쓰인 '대기자'라는 타이틀이 '퇴출 대기자'인줄만 알았더니, '입각 대기자'의 뜻도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설레는 기자들이 없지 않았을 듯 하다.



모피아, 금피아, 원피아, 해피아, 철피아, 법피아...그리고 종합판인 '관피아'가 세월호 참사이후 '공공의 적'이 되면서 관피아 떠난 자리를 누가 채울 것인가를 두고 말들이 많던 참이다.

◇"관피아 빈 자리는 언론인이 최고?"



얼마전 사석에서 만난 한 공기업 사장이 "관피아들 사라지면 그 자리 채울 사람은 언론인들이 제일 낫다고 봅니다”라고 건넨 덕담이 새삼 떠올랐다.
(그 역시 중앙 정부 부처 차관급 공무원을 지낸 '관피아'다.)

"해 봐서 아는데, ‘표’를 먹고, 남들에게 신세지고 살아온 정치권 출신 낙하산 기관장이 경영을 잘 하기를 기대할 순 없더라"는 말이 뒤따른다.
"폴리페서로서 살아온 교수출신은 아주 예외적으로 성공하기도 하지만 거의 실패하고, 민간출신이 대형 공기업 경영을 할 수 없다는 건 사례들이 증명한다"

그래서 남는게 언론인이라는 거다. 기자들로선 이승엽 홈런처럼 눈이 번쩍 뜨이는 청량한 소리일수 밖에.
"일단 목표(마감시간)가 주어지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뭔가 성과물을 만들어낸다. 크게 사고치진 않는다(통이 작아서?). 깊이 있게 알지는 모르지만 균형 감각이 있고 여기저기 네트워크가 있다." 덕담은 계속된다.


그런데..."무엇보다 같은 언론인이니 언론에 두들겨 맞을 일이 적다"
이른바 '전관예우'차원에서 언론에서 봐줄거라는 건데, 이 대목에서 '언피아 경쟁력'의 설득력이 팍 떨어진다.

언론의 치졸한(?) 검증에 진력이 난 박근혜 대통령이 기자출신을 발탁한 게 전관예우를 염두에 둔 것인지는 모르겠다.
언론인으로서의 '동질감'이 없진 않지만, 불행히도 (겪어봐서 아는데)언론출신은 이전 동료들한테 전관예우라는 걸 기대하기 힘들다. 특히 자기가 몸담고 있던 회사가 아닌 이른바 '범 언론계'에서는 더욱 안 통한다.

무슨 조그만 부탁이라도 하려고 언론사를 찾아가봤자, 바쁜 후배들에게 차한잔 얻어먹기 힘들고, '지가 아직도 기자인줄 아나...'라는 따가운 시선을 뒤통수에 받을 각오까지 해야 한다는게 언론사를 그만둔 선배들의 경험담이다.

관료사회와 달리 서로 경쟁하는 언론기업들 간에, 더구나 규제나 진흥권한을 갖고 있지 않은 민간 분야에서, 서로 '전관예우'를 해가며 특정 자리를 주고 받는 '마피아', 즉 '언피아' 고리가 생기기는 쉽지 않다.
'언피아'라기보다는 우리 사회의 '지배계급 마피아(Governing class Mafia:Gofia'의 곁다리에 끼어주기를 끊임없이 갈구하는 개별적 혹은 집단적 몸부림이 존재할 뿐이다.

◇ '누울 자리 보고 다리 뻗는 기자들'

취재원 출입처와의 동질성, 내지는 동질화의 사례에 대해 이야기가 미치자, 함께 이야기하던 A기자가 정치부에서 모 정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을 취재하며 겪은 경험을 꺼냈다. "한 후보의 해외 방문 기자단에 다녀왔더니, 다음부터는 아예 다른 후보 기자단엔 낄 수가 없더라" '저쪽 사람'으로 분류됐기 때문이었다.

정치부 기자들이 담당 정당의 '일원'이 되는 것은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자기편'이라고 인정받지 않으면 취재도 잘 안된다. 그래서 대개 정치부 기자는 담당 정당과 끝까지 한배를 타는 경우가 많다.

같은 회사 정치부 내에서도 여야 담당 기자끼리 공공연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심지어 정보공유도 여야 기자가 따로 논다. 대통령 선거때라도 될라치면 이런현상은 더 심해진다. 대통령 당선자를 커버하던 기자가 청와대 출입기자가 되고, 정치부장이 되는 게 자연스럽다. 그래서 정치부 기자 팔자는 까딱하다간 정치 보스 따라가는 '뒤웅박 팔자'이기 십상이다.
요즘은 많이 줄었지만, 출입기자가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이 되는게 자연스런 '코스'였다. 정치부 기자들이 국회의원들을 흔히 '선배'라고 부르는 것도 이런 '한솥밥 의식'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 기자들이 기사나 칼럼을 제대로 쓸 리가 없다는 의심을 받는게 억울할지 모르지만, 적어도 밖에서 일반 국민들이 보기엔 그렇다.
행정부나 입법부 같은 권력기관을 취재해야 하는 기자들일수록 그런 의심을 받는건 어쩔수 없고, 정치인으로 변신한 언론인의 과거 칼럼들을 뒤져 보게 되는 것도 인지상정이다.

물론 언론인이라고 해서 공직을 맡지 말란 법은 없다. 역대 총리나 총리 후보들보다 여러 모로 훌륭한 언론인은 과거에도 지금도 널려 있다고 믿고 싶다.

하지만 훌륭한 선배들이 대거 정부 요직에 발탁돼 "펜대를 놓은 뒤엔 높고 좋은 자리로 갈 수 있다"는 '언피아' 의식이 언론인들에게 자리 잡게 된다면 '언피아'도 불길한 농담에 머무는게 아니라 어엿한 실체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내가 갈 수도 있는 조직, 나를 이끌어 줄 수 있는 사람들을 냉정하게 잣대질할 수 있을까. 나의 앞길을 닦아 놓은 선배님을 쿨하게 비판할 수 있을까.

◇ '첫 기자출신' 문창극 총리 후보, 박수 치자니...

이쯤 해서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발행인)이 노무현 대통령에 의해 주미대사로 내정됐을 때 쓴 문 내정자(당시 주필)가 '권력과 언론의 숙명적 긴장관계'를 언급하며 쓴 칼럼에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다.

"주미대사는 다르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자리로 권력으로부터 초연하기 힘들다. 신문의 사명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권력을 비판하고 감시하는 것이다. 발행인이 그 자리에 감으로써 혹시 신문이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을까...."
(물론,"만일 중앙일보가 대주주의 영향을 받지 않고 정론의 길을 걷게 된다면 이런 편견은 자연히 사라지게 될 것이다"라는 '본론'이 뒷부분에 있긴 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실패 끝에 선택한 문 내정자가 훌륭한 총리가 되길 바라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절박한 상황인게 우리 현실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언피아'의 모범사례가 열리면서 언론과 권력의 숙명적 긴장관계가 끊어지고 언론의 퇴행을 목격하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반대로 문 내정자가 실패한 총리로서 기억된다면 "'언피아'가 나라 말아 먹었다"는 국민적 지탄이 나오지 않을까 또 겁이 난다. 그렇게 되면 언론인 출신은 어디 가서 '생계형 일자리' 하나도 얻게 되지 못할 처지다.

'퇴출 대기자'인 40~50대 기자들로선 이래저래 답답할 노릇이다.

총리 내정자를 보면서, 나라를 걱정하기에 앞서 내가 몸담고 있는 언론계를 걱정하는건 도량이 좁아도 한참 좁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소심 마인드로 언피아는 무슨 언감생심 언피아인가.
인상 찌푸리고 있자니 누가 한마디 할 것 같다. "담배나 피워"
그래 옆사람한테 담배 한 대 얻어 피우면서 끈끈한 정을 구걸하는 '담피아'가 내겐 제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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