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재해'를 예고한 만화·TV광고…우울함도 승화시킨 일본의 '덕력'

딱TV 윤재식 PD 2014.05.15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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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TV]'세월호' 사고로 문화계는 개점휴업 …대재해가 많았던 일본은?

편집자주 윤재식의 '딱타쿠' -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등 다양한 서브 컬처에 대한 최신 소식과 트렌드를 빠르게 전달하고 일반인은 미처 알지 못한 사이에 우리의 삶 속에 녹아들고 있는 매니아 문화를 심층 분석해 알기 쉽게 풀어준다.

'세월호 사고'로 한국의 대중문화는 개점휴업 상태입니다. 그렇다면 지진, 해일, 원전사고 등 대재해가 유난히 많았던 이웃나라 일본은 어땠을까요? 섬뜩하게도 며칠 뒤 벌어질 대재해를 정확히 그려낸 애니메이션이 방영 중단되는가 하면 TV는 공익광고만 '공해' 수준으로 틀어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일본의 오타쿠들은 특유의 '덕력'으로 그 우울함마저 승화시켰습니다. 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시죠.
먼저 지난 4월 16일, 남해안 진도 앞바다에서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해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했습니다. 이 글을 작성하고 있는 지금도 남은 실종자들을 찾기 위한 수색작업이 진행중입니다.

사고 자체도 어처구니 없지만 늑장 대응 등 구조과정의 총체적 부실로 '구조자 0명'이라는 현실은 우리의 생명과 안전을 믿고 맡길 수 있을까 의문이 듭니다. 불의의 사고로 인한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면서, 유가족과 생존자들에게도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세월호' 참사 애도분위기 속 예능프로그램 결방 줄이어

이러한 끔찍한 사고로 대한민국은 애도 분위기에 잠겨있습니다. 각종 축제와 이벤트가 줄줄이 취소되고 민간소비도 위축돼 경기둔화 우려까지 언급되며, TV와 예술문화계 전반도 자숙하는 분위기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사고 발생 후 방송이 중단되었던 드라마와 예능프로그램 대부분은 곧 정상화 되었지만 개그나 코미디, 음악 쇼프로그램과 같은 공개 방송들은 사건 발생 후 한 달이 지난 지금에서야 재개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동일본 대지진 당시 만화∙애니메이션 휴재·휴방 조치

이웃 일본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습니다. 2011년 3월 11일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에 이어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로 1만 5000여 명의 사망자를 포함한 큰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국가적 재난을 겪은 일본에서도 대다수 방송사가 재해 관련 긴급 방송을 편성했고 피해자와 이재민에 대한 애도와 사회 전체의 자숙 분위기가 지속됐습니다. TV 애니메이션은 휴방을, 연재 만화들도 대부분 휴재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민영방송사가 주를 이루는 일본의 방송환경 특성상 짧게는 재해 발생 후 이틀 만에, 길어도 1주일 뒤에는 정규 방송 편성으로 돌아갔습니다. 다만 제본과 생산 장비의 파괴와 전력 부족 때문에 도서와 DVD 등은 상당수 발매가 연기됐죠.

어쨌든 대다수 방송사가 중단됐던 애니메이션 방영을 재개한 가운데, 한 달이 넘도록 방영이 연기된 작품이 있었습니다. 일본 현지는 물론 한국 등 다른 국가에서도 화제가 됐던 작품, 바로 2011년 1분기 최대 히트작 '마법소녀 마도카☆마기카'입니다.

↑ 일단 한번 3화까지만 보시라니까! (마법소녀 마도카☆마기카)↑ 일단 한번 3화까지만 보시라니까! (마법소녀 마도카☆마기카)


마법 소녀물의 신기원 '마법소녀 마도카☆마기카'

마법소녀 마도카☆마기카는 애니메이션 제작사 '샤프트'의 오리지널 작품입니다. 주요 제작진이 공개됐을때 많은 이들이 '괴악한 조합'이라는 반응을 보였고 방영 전부터 화제가 됐습니다.

아스트랄하며 유니크한 연출 센스로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누렸던 니시오 이신 원작의 '괴물이야기'나 2014년 2분기 현재 방영 중인 '메카쿠시티 액터즈'같은 작품을 연출한 샤프트의 대표 감독 '신보 아키유키'.

여기에 각본은 이 사람이 맡았다는 사실 자체가 스포일러인 '우로부치 겐', 그리고 치유계의 대표 만화가인 '아오키 우메'까지 가세했습니다. 애니메이션 팬들은 도저히 결과물을 상상할 수 없는 제작진의 조합으로 만들어낸 작품이 바로 마법소녀 마도카☆마기카입니다.

이 작품이 궁금하시다면 국내 애니메이션 전문채널인 애니플러스의 공식 유튜브를 통해 TV 시리즈 12화 전편을 시청할 수 있습니다.

마법소녀 마도카☆마기카 1화 전체 영상

물론 '괴이하다'는 이유로 애니메이션 방영이 오랫동안 중단된 건 아닙니다. 도호쿠 지역에 대지진과 쓰나미가 발생했던 3월 11일, 하필이면 작품 내 배경이 된 미타기하라시에 대재해가 발생하는 '발푸르기스의 밤' 에피소드가 담긴 10화가 방영됐기 때문입니다.

이후 마지막 11, 12화는 대재해로 인해 주민들이 피난을 가는 장면과 파괴된 마을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일본이 실제로 대재해를 당한 상황에서 이와 비슷한 내용을 담은 에피소드가 방영될 상황이었으니 방송사로서는 부담스러웠을 겁니다. 그 고민의 결과, 무려 한 달여동안 방영이 연기되는 사태가 발생한 거죠.

↑ 대지진을 예견(?)한 죄로 방영 중단 사태가 발생↑ 대지진을 예견(?)한 죄로 방영 중단 사태가 발생
배트맨보다 더 우울한 마법 소녀들의 끝없는 전투

마법소녀 마도카☆마기카는 분명 마법을 사용하는 소녀들의 우정과 꿈이 있습니다. 게다가 귀여운(?) 마스코트 캐릭터도 등장합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절망으로 귀결되는 '다크 판타지'의 내용 전개를 보여줍니다.

다크 히어로물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배트맨 시리즈는 오히려 밝고 희망이 느껴질 정도인데요. 특히 이 작품을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게 한 '충격의 3화'에서는 주연급 마법 소녀가 머리를 물어 뜯겨 사망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저 역시 그 에피소드를 감상한 그 때의 충격을 잊을 수 없습니다. 암울한 엔딩 노래가 흘러나오고 스텝 스크롤이 다 지나간 뒤 다음 회 예고가 나올 때까지도 정신을 못 차렸더랬습니다. 방송이 완전히 종료된 뒤 붕괴된 멘탈을 추스르며 관련 정보를 찾기 위해 외국 사이트들을 순회했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 충격의 3화 마지막 장면. 심장이 약한 분은 보지 마세요.


'충격의 3화' 이후에도 처절한 싸움은 계속됩니다. 이 애니메이션은 기존 마법 소녀물이 갖고 있던 클리셰를 완전히 비틀어 주인공은 전체 12화 중 10화에 이르러서야 겨우 마법 소녀로 등장합니다. 그전까지 주인공은 민폐 대마왕으로 시청자들의 짜증을 돋구었죠. 귀염성 넘치는 마스코트 캐릭터가 알고 보니 사건의 흑막이었다는지, 퇴치의 대상인 마녀도 알고 보니 원래 마법 소녀였다는 대형 떡밥도 투척 됩니다.

↑ 존재 자체가 스포일러인 '큐베'와 마녀로 타락하고 마는 '사야카'↑ 존재 자체가 스포일러인 '큐베'와 마녀로 타락하고 마는 '사야카'
그리고 TV판 엔딩에 만족하지 못했던 원작자 우로부치 겐은 아주 새로운 내용 전개를 극장판을 통해 보이면서 팬들에게 또 한 번 '충격과 공포'를 듬뿍 제공합니다.

400억엔이 넘는 매출을 올린 심야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일본의 애니메이션은 원작 만화와 라이트 노벨, 게임을 배경으로 해 그 인기를 함께 공유하면서 빠르게 제작됩니다. 그리고 관련 상품을 팔아 매출을 올립니다. 하지만 마법소녀 마도카☆마기카는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으로 기획 제작됐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이 작품은 시청률만으로 그 존재감을 어필했습니다. 새벽 2시에 본방송을 하는 심야 애니메이션으로서는 '대단하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2%대의 시청률, 동시간대 시청점유율은 무려 20%대에 달하는 기록입니다.

TV 애니메이션의 블루레이와 DVD는 무려 60만 장의 판매량을 보였습니다. 수천 가지 관련 상품들까지 포함하면 매출액이 무려 400억 엔을 넘고, 극장판도 신편 '반역의 이야기'가 20억 엔의 박스오피스 흥행 수익을 거둘 정도로 큰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여기서도 결말이 개운치 않게 끝났기 때문에 팬들은 또 다른 극장판을 통해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 60만 장 넘게 팔린 마법소녀 마도카☆마기카 블루레이 박스세트↑ 60만 장 넘게 팔린 마법소녀 마도카☆마기카 블루레이 박스세트
후쿠시마 원전 사태를 예견했던(?) 만화 '코펠리온'

오다이바에 있는 민영 전력회사의 원자력 발전소에서 발생한 멜트다운으로 죽음의 도시가 된 2036년의 도쿄. 이곳에서 방사선 누출에 견딜 수 있게 유전자가 개조된 고등학생들이 펼치는 능력자 배틀.

이것이 바로 이노우에 토모노리 원작의 만화 '코펠리온'의 시놉시스입니다. 2008년부터 고단샤의 '영 매거진'에서 장기 연재됐던 작품인데요. 2011년 실제로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 누출 사고 때문에 준비되어왔던 TV 애니메이션화는 전면 중단이 됐습니다. 원작 만화의 연재는 계속됐지만 애니메이션은 2013년에야 드디어 위성방송을 통해 방영될 수 있었습니다.

애니메이션 판은 시대와 배경 설정을 수정했습니다. 도쿄와 원전 노심 용해, 방사능 누출과 같은 민감한 표현도 애니메이션 판에서는 수정이 됐죠.

↑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떠올리게 하는 만화 '코펠↑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떠올리게 하는 만화 '코펠
대지진 참사로 상업광고(CF)까지 중단 속출

지금까지 작품 내용 때문에 장기간 방영되지 않았던 '마법소녀 마도카☆마기카'와 영상화 자체가 연기되었던 '코펠리온'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요. 이번에는 재해로 중단된 또 다른 것을 살펴볼까 합니다.

대지진과 쓰나미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고 큰 피해를 보게 되자 일본 기업들은 시국 상황에 맞춰 상업광고를 자제하기로 했습니다. TV 방송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민영방송사에서 광고영상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죠.

이에 그 자리를 공익광고들이 차지했는데요. 그중에 가장 많이 전파를 탔던 공익광고가 한국의 공익광고협의회에 해당하는 AC재팬이 만든 '인사의 마법(あいさつの魔法)'입니다.

공해에 가까웠던 공익광고…패러디로 즐기다



'인사의 마법'은 재해 발생 전에 이미 만들어진 공익광고로 '인사를 통해 주변 사람들과 친해지자!'라는 평범한 내용을 담은 캠페인입니다. 이를 친숙하게 국민과 시청자에게 전달하기 위해 노래를 만들어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한 것이죠.

51회 홋카이도광고협회 그랑프리상을 받은 '인사의 마법'은 일본어를 잘 모르는 분들도 영상만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일본어의 인사, 감사와 관련된 단어를 가지고 언어 유희를 즐기는 내용입니다.

첫 소절을 보면 "곤니치와 곤니치왕"이라고 나오는데요. 이는 일본어의 아침 인사말인 곤니치와에다가 일본어에서 개가 짖는 의성어인 '왕'결합한 것입니다.

두 번째 소절도 "아리가토-"라는 감사합니다란 말에다가 토끼(우사기)를 붙여서 "아리가토우사기"라고 하면서 이렇게 인사를 하면 다양한 (동물) 친구들이 생긴다는 것이 '인사의 마법' 광고 내용입니다.

그런데 그냥 한 두 번 정도면 '그런가 보다'하고 넘어갔을 이 평범한 공익광고가 위에서 언급한 대로 동일본 대지진 사태를 통해 대부분의 상업광고가 사라진 자리를 채우게 되면서 사고 이후 3개월 동안 무려 2만 회 이상 TV와 라디오 전파를 타고 일본 전역에 퍼지게 됩니다.

특히 노래 중간의 "포포포퐁~"하는 부분은 2011년 상반기 10~20대의 유행어 3위를 차지할 정도였는데요. 이렇듯 처음엔 '중독성 있네!'라고 생각했던 일본인들은 매일같이 이 광고를 보고 들으면서 지겨워 죽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영상과 노래를 가지고 제작된 다양한 2차 창작과 패러디가 TV와 인터넷에 등장하게 됩니다. 그중에 정말 어마어마한 발상의 전환을 통해 이 광고를 패러디한 영상이 일본의 인기 동영상 사이트인 '니코니코동화'에 올라오면서 모든 것을 평정했습니다.

△ 발상의 전환 광고 패러디..그레이트 아리가토우사기(그레이트 고마워요 토끼)

광고에 등장하는 토끼가 슈퍼로봇으로 변신하는 등 상상을 초월하는 2차 창작 영상이 등장했습니다. 이에 따른 충격은 일본의 오타쿠 세계를 강타해 니코니코동화의 패러디 영상의 절반 이상을 '인사의 마법' 변신 로봇으로 채우게 됩니다.

이후 업그레이드를 거쳐서 등장하는 모든 동물과 사람들을 변신시키고 심지어 초대형 로봇으로 합체까지 하는 것으로 마무리되게 됩니다.





이러한 인기는 대한해협을 건너와 한국에도 영향을 끼치게 되는데요. 한 때 서브 컬쳐계에서는 개그콘서트의 인기코너 '꺾기도'의 아이디어가 인사의 마법에서 나왔을 것이라는 설이 회자되기도 했습니다람쥐.

대형 사고나 재난으로 말미암은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 대한 따뜻한 관심과 도움도 꼭 필요합니다만, 일상을 살아가야 할 사람들의 이 같은 나름대로 대처에 대해서도 나쁘게 볼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본 기사는 딱TV (www.ddaktv.com) 에 5월 15일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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