年관리비 1.5억 "어디갔지?"…옥상은 관리회장 '꿀꺽'

머니투데이 송학주 기자 2014.04.24 0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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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뺨치는 집합건물 '비리']<1>동대문 한 상가 관리위원회의 '횡포'

임종철임종철


#2005년 9월 이모씨(40)는 서울 동대문에 위치한 2층 상가 11.97㎡(이하 전용면적)를 6500만원에 구입했다. 직접 운영보다 임대소득을 얻을 요량이었다. 이씨는 매매계약 후 보증금 500만원, 월 40만원에 세를 줬다.

상가 소유주들로 구성된 관리위원회가 있어 매달 4만6000원의 관리비도 낸다. 하지만 매년 열어야 하는 총회를 하지 않고 관리비 결산보고도 없었다. 대부분 상가 주인들은 회장이 잘 하리라 믿고 맡겼다.



이씨는 이달 초 3년 만에 총회를 개최한다는 얘기를 듣고 참석했다가 황당한 얘기를 들었다. 옥상에 있는 2채의 가건물이 어느새 회장 소유로 등록돼 있었던 것이다. 관리비 결산내역도 자세한 수입·지출내역 없이 월별로 금액만 적힌 것이 고작이었다.

이씨는 "최근엔 아파트도 관리비를 내면 어떻게 얼마나 쓰이는지 자세하게 알려준다"며 "상가 주인들이 대부분 멀리 살고 직접 관여할 수 없는 점을 악용해 관리위원회 회장과 관리소장이 연간 1억5000만원 넘게 쓰면서도 자세한 내역을 공개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상가·주상복합·오피스텔 같은 집합건물의 관리가 아파트보다 부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무엇보다 집합건물은 관리비 등 관련 민원이 지속적으로 제기됐지만 법적 근거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행정당국이 아무 조치도 취할 수 없다는 게 문제다.

집합건물법에는 소유주들로 구성된 관리단을 통해 관리인을 선임해야 한다. 하지만 이를 지키지 않는 곳이 많다. 일부 상가의 경우 자체 정관을 편법으로 만들어 적용해 문제가 발생한다.

실제로 이씨가 제공한 정관엔 '총회 등 회의는 총 회원 과반수 출석으로 하되 출석인원이 적을 경우 편의상 참석자로만 개의하고 출석회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관리위원회 회장과 회장이 직접 뽑은 이사와 관리소장 등 10여명이 회의를 하고 안건을 통과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집합건물법에 관리인은 매년 관리단 총회를 소집해 예산·결산내역 등을 보고해야 하지만 최근 수 년 동안 정상적인 보고는 한 번도 없었다는 게 이씨의 설명이다.

이달 진행된 총회에서 보고된 결산내역에는 '2013년 수입 1억8118만원, 지출 1억5084만원, 잔액 2785만원' 등 금액만 적혀 있다. 관리비 등 최근 3년간 4억8041만원의 수입이 있지만 자세한 지출내역은 알 수 없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해당 상가 관리위원회장은 "정관에 따라 차질없이 업무를 수행했다. 편의상 수입·지출내역을 금액으로만 표기했을 뿐 자세한 내역은 관리소장에게 물어보면 잘 알려줄 것"이라며 "일부 불만이 있지만 지금까지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고 답변했다.

이 상가의 경우 건물 옥상에 설치된 가건물이 상가 주인들 모르게 회장 개인 소유로 변경된 것이 드러나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는 엄연한 공유지분으로 상가 주인들의 동의를 얻어 처분했어야 함에도 이를 지키지 않았다는 게 상가 주인들의 주장이다.

해당 회장은 이에 대해 "부회장 시절 전 회장과 매매계약을 해 합법적으로 돈을 주고 샀다"며 "전 회장이 개인 소유로 돌렸을지는 몰라도 합당한 비용을 치렀기 때문에 전혀 문제될 게 없다"고 말했다.

아파트 등 공동주택은 국토교통부의 '주택법' 적용을 받아 행정기관이 현장조사를 하고 조사를 회피하면 제재를 가할 수 있다. 하지만 소유권이 구분된 집합건물은 법무부의 '집합건물법'을 적용받아 문제가 발생하면 민사적 해결만 가능하다.

결국 집합건물은 비리가 발생해도 행정기관이 개입할 수 없는 사각지대에 놓인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집합건물은 대부분 임대수익용이어서 소유자들의 관심이 적어 관리과정에서 부실이 발생해도 알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동대문의 한 상가 주인은 "억대의 공동재산이 전체 건물주 모르게 개인에게 넘어간 일은 절대 묵과할 수 없다"며 "이에 대해 서울시 집합건물 분쟁조정위에 알아보니 회장이 응하지 않으면 어떠한 분쟁조정도 하지 못하는 상태"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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