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타니 고진은 일찍이 ‘인문학의 가능성’(‘논좌’ 2007년 3월)이란 글에서 “인문학은 어떤 가능성을 가질까라는 물음”은 “정보로 바꿀 수 없는 지식의 가능성을 묻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그의 설명은 이어진다. “이런 문제는 컴퓨터와 테크놀로지만의 문제는 아니다. 기본적으로 자본주의의 문제다. 장사꾼은 싸게 사들이고 비싸게 팔아 차액을 챙긴다. 산업자본주의도 ‘차이’에서 이윤을 얻음으로써 증식한다는 원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하지만 그 결과, 차이가 점차 사라지고 이윤율도 낮아진다. 따라서 자본주의는 늘 차이를 만들고 새로운 차이를 찾아내려고 한다. 선진국에서 포화상태가 되면 도상국에서 차이를 찾는다. 대충 이렇게 국제화가 이뤄진다.”
한때 구조주의와 포스트구조주의, 탈구축, 문화연구 등의 인문과학이 빛나던 시대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인간의 정신과 문화에 대한 연구는 인지과학과 뇌 과학, 정보과학에 인식론적 주도권을 빼앗겨버렸다. 그런데도 우리 인문학은 문학, 역사, 철학만을 중시하던 조선시대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듯한 느낌이다.
지난해에는 ‘어메이징 그래비티’(조진호, 궁리) ‘서민의 기생충열전’(을유문화사), ‘멸치 머리엔 블랙박스가 있다’(황선도, 부키), ‘인간에 대하여 과학이 말해준 것들’(장대익, 바다), ‘온도계의 철학’(장하석, 동아시아), ‘빅 히스토리’ 시리즈(이명현 외, 와이스쿨) 등 국내 저자가 쓴 수준 높은 교양서들이 출간됐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대중의 과학화’를 위한 획기적인 변화가 시급하다. 올해는 정말 좋은 과학서가 많이 출간되어 누구나 가치의 원근감을 갖고 자율적인 판단을 내릴 줄 아는 능력을 갖출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기를 애타게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