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이 유럽 최고 혁신국가인 이유

머니투데이 스톡홀름(스웨덴)=기획취재팀 2014.03.06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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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적 5년, 마지막 성장판을 열자] 기업들 협업 문화에 국가 주도 R&D에 혁신성↑

스웨덴이 유럽 최고 혁신국가인 이유


"그 부분은 개선 가능성이 보이네요. 제 점수는요…"

예리한 눈빛을 한 심사위원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참가자들에게 날아들었다. 심사평이 끝나는 순간, 탄식과 환호성이 교차했다. 마치 한국 예능 오디션 프로그램의 한 장면 같지만 실은 스웨덴에서만 볼 수 있는 '비즈니스 솔루션 오디션'이다.

스웨덴의 국가기관인 스웨덴혁신청(VINNOVA)이 주최하는 이 오디션은 '스웨덴 비즈니스 아이돌'(Swedish business idol)이라 불린다. 이처럼 오디션 방식과 같은 국가 주도의 연구개발(R&D) 투자 정책을 살펴보면 왜 스웨덴이 유럽 최고의 혁신 국가로 인정받고 있는 지 알 수 있다. 스웨덴은 최근 유럽연합(EU)의 경제혁신지수 평가에서 1위를 차지한 바 있다.



스웨덴이 유럽 최고 혁신국가인 이유
◇협업 기반 비즈니스 문제해결형으로 차별화된 혁신

오디션 방식의 투자 대상 결정 시스템은 창업 투자 생태계가 발달한 미국 실리콘밸리, 이스라엘 실리콘와디 등에도 있다. 우리나라 역시 미래창조과학부가 다음달부터 초기 창업을 지원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한국을 비롯해 미국과 이스라엘의 시스템은 해당 오디션에서 수상한 일개 기업이나 개인이 중심이 된다. 특정 기업이나 기업가에게 상금을 투자금 형태로 지원하는 것. 또한 주어진 과제를 푸는 방식이 아니라 각자의 아이디어를 펼쳐내는 방식 위주다.

그러나 스웨덴혁신청의 오디션은 '문제해결형'이라는 점이 다르다. 스웨덴 혁신청이 산업계, 과학기술계, 학계 등으로부터 '미래 글로벌 시장 선점' 및 '현재 산업계의 난제 해결'을 염두에 둔 과제를 뽑아낸다. 그리고 이에 대한 솔루션을 내놓는 참가자를 모집하고, 여러 단계에 걸친 오디션 심사를 통해 단계별 투자와 최종 투자를 결정한다.

중요한 것은 과제가 광범위하고 추상적이다 보니 개별 기업이나 개인만으로는 솔루션을 내놓을 수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오디션에서는 대부분 여러 기업들이나 개인의 연합팀이 수상을 하게 된다.


지난해 나온 과제 중 하나였던 '글로벌 시장 대상 의료서비스 매니지먼트 시스템의 업그레이드'의 경우 언뜻 손에 잡힐 듯한 과제 같지만 사실 무한한 상상력이 필요한 과제다. 의료 서비스 매니지먼트를 얼마나 광범위하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업그레이드의 방향과 폭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또한 모든 상상력을 뒷받침할 기술력도 겸비해야 답을 낼 수 있다.

이 과제를 풀기 위해서는 비즈니스 모델, 시스템 및 서비스 디자인, 기초 및 응용 기술, 엔지니어링 등 관련 산업 전체의 가치사슬(밸류체인·Value Chain)에 속하는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지 않으면 안된다. 당연히 융합과 협업이 강조된다.

오디션에 참가한 적이 있는 히얄마 닐소네 와티(Watty·빅데이터 기반 에너지 절감 솔루션 기업) 창업자는 "각자의 전문성을 최대한 발휘한다고 해도 집단적 상상력이 없으면 최적의 답을 낼 수 없다"며 "스웨덴은 개방형 협업 문화가 확산돼 있기 때문에 스웨덴 비즈니스 아이돌과 같은 프로그램이 성공하고, 그러한 투자 시스템이 가능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 분야 전문가인 유효상 숙명여대 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일반적인 창업 아이디어와 달리 비즈니스 문제해결형 사고 과정을 거친 아이디어는 일차방정식이 아닌 고차방정식을 통해 풀어낸 답과 같다"고 설명했다. 즉, 비즈니스 문제해결형 사고는 애초 발생 가능한 다양한 시나리오를 고려하기 때문에 훨씬 다양한 환경에서 성공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샬럿 브로그렌 스웨덴혁신청장↑샬럿 브로그렌 스웨덴혁신청장
◇공공부문이 도출한 과제의 솔루션, '지속가능성' 브랜드 달고 글로벌 시장으로

'스웨덴식 복지'로 불리기도 하지만 생산성이 매우 높은 스웨덴의 공공부문은 혁신에 필요한 과제 도출을 선도한다. 공공부문이 도출한 과제에 대한 솔루션은 '스웨덴표 지속가능성'이라는 브랜드를 달고 글로벌 시장으로 빠르게 확산된다. 국가의 혁신에 발목을 잡는다는 평을 듣는 한국의 공공부문과 비교할 때 매우 큰 차이다.

일례로 스웨덴의 한 지방도시인 배스터스(Vasters) 시의 복지 담당 부서는 노인 복지에 대해 고민을 갖고 있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생명과학 기업 지라프(Giraff)가 주도해 만든 노인 보호관찰용 로봇 시스템은 현재 네덜란드 건강보험회사와 스페인 지역정부 등으로 수출 예정이다. 화상회의용 디스플레이, 이동 로봇, 투약·복약·치료 관리 솔루션이 융합된 이 시스템은 간호사나 간병인의 일손을 크게 덜어주고, 더욱 세밀하게 노약자를 관리할 수 있다.

샬럿 브로그렌 스웨덴혁신청장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공공부문이 오히려 혁신에 필요한 과제를 내놓기 때문에 개별 과제를 해결할 때보다 지속가능성과 공공성이 고려된다"며 "이 때문에 기업과의 협업으로도 광범위하게 이어진다"고 말했다.

스웨덴은 원래 학계·연구계·비즈니스계의 협업이 체계적이고 탄탄한 나라다. 최근 머니투데이가 취재한 스웨덴 대표 혁신기업 15곳 모두 이사회에 R&D를 지원하는 연구소, 대학교의 일원들이 참여하고 있다. 특히 전직 CEO 등이 자신의 돈을 출자해 투자자로서뿐만이 아니라 멘토로서 기업의 혁신 경영을 돕고 있다.

또한 스웨덴 역시 네덜란드처럼 혁신 클러스터가 발달한 나라다. 각 지역의 특화 산업과 연계된 혁신기업들이 해당 지역의 산업클러스터 내에 자리 잡고 있으면서 협업 정신을 발휘해 다른 회사의 비즈니스를 돕기도 한다.

스웨덴의 클러스터는 장기적이고, 계획적이며 특히 지역에 특화돼 있다. 지역의 산업자산을 최대한 활용하고, 글로벌 시장에 눈높이 맞추고 비즈니스 개발을 시작하는 것이 특성이다. 지라프의 경우 로봇틱스 기술이 발달한 '맬라르달렌'(Malardalen) 지역의 '로봇달렌'(Robotdalen) 클러스터 프로젝트를 통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밖에도 IT, 바이오, 철강재료, 광섬유, 원격진료, 진단기법 개발, 식품산업 첨단화, 첨단 생물자원, 차세대 직물, 전자 인쇄 등의 분야에서 혁신기업들이 이 로봇달렌 클러스터 내 '사이언스 파크'(Science Park)에서 글로벌 시장을 겨냥하며 성장하고 있다.

이들 기업들은 바로 시장에 뛰어들기보다 우선 시제품과 임시 서비스를 만들어 시장성을 본다. 그리고 다른 나라 유사 사례 연구와 글로벌 세미나 등에 참석해 글로벌 시장에 맞도록 제품이나 서비스를 재조합 한다. 이 과정에서 지방자치단체, 스웨덴혁신청, 연구기관 등은 향후 더욱 커질 잠재 수요와 기술 개발 시나리오를 검토해 혁신 가능한 부분을 지원할 배후기술, 연관기술을 소개하고 자금조달도 돕는다.

투자도 일회성이 아닌 향후 10년까지 내다보는 장기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브로그렌 청장은 "지역 클러스터 내 기업 그리고 학계·연구계·대기업·투자업계 모두 체계화된 검토와 관리를 통해 낭비 없는 연구로 국가 경제발전 전략에 부합하는 일관성 속에서 성장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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