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토 다리 베네치아의 번화가 리알토 다리 (베네치아) /사진=김홍선
우리나라는 공공시설이 깨끗한 편이다. 어느 외국 손님이 대전에 출장 다녀오고 나서 어떠했느냐고 물으니, 고속도로 휴게실의 화장실이 가장 인상적이라고 한다. 이렇게 깨끗한 대로변 화장실은 처음 본다며 손을 추어올린다. 사실 우리만큼 깨끗하게 잘 관리하는 나라도 드물다. 그만큼 청소하시는 분들이 수시로 노력하기 때문이다.
“아니 화장실 한 번 이용하는데 도대체 얼마를 받는 거야?”
“나는 잔돈을 거슬러 줄 수 있지만, 기계는 그럴 수 없답니다”라고 얘기한다. 50센트를 포기하라는 얘기다. 왜 자기에게 미리 묻지 않았느냐는 투다. 그녀는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이었다. 그 사람이 종업원인지, 손님인지 내가 어떻게 알겠는가? 적어도 돈 바꾸어 주는 사람이면 그 앞에 앉아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기계가 못 내어 주면 직접 바꾸어 주는 게 당연하다. 혼자 투덜거리면서 그곳을 나왔다.
산마르코 광장 가장 아름다운 광장으로 알려진 산마르코 광장 (베네치아) /사진=김홍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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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충격적인 것은 화장실 내부다. 피렌체의 백화점에서 경험한 일이다. 그곳에 화장실은 5층에만 있었는데, 올라갔더니 7~8명 정도가 줄 서 있다. 한 참을 기다리고 나서 들어갔다 나오기는 했는데, 약간 어리둥절했다. 변기 뚜껑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면 큰일을 보려면 어떻게 하지?
그런데, 의외로 이런 상태의 화장실을 자주 보았다. 이탈리아 도시만 그런 게 아니라 파리에서도 경험했다. 하도 궁금해서 현지에 사는 분에게 물어보았다. 그분 얘기로는 관리하기 귀찮아서 그대로 두는 거라고 한다.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믿을 수 없다. 한국에서 데려온 자녀에게 그런 환경에 당황하지 않도록 일부러 교육까지 했다고 한다. 도저히 유럽 선진국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충격적인 현장이다.
공공시설과 문명의 품위
문명이 발달할수록 품위있는 생활을 영위하려고 노력한다. 어느 모임에서 우리 주변에서 지난 100년 간 가장 크게 바뀐 것이 무엇인지 아느냐고 강사가 질문을 던졌다. 그의 답은 ‘화장실 문화’이었다. 그러면서, 조선 시대부터 일본 강점기, 한국 전쟁, 현대 시대에 이르기까지 외국인의 눈에 비친 서울의 모습이 담긴 기록을 보여 주면서 이를 설명했다. 경제 성장의 효과도 컸지만, 그만큼 더 살기 좋은 사회를 위해 노력했고 시민 의식이 발전한 탓이다.
그러나, 한국의 깨끗함은 시민 의식만으로 설명하기는 부족하다. 나는 ‘배려’의 정신이 더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외국여행에서 돌아오면 한국만큼 깨끗한 나라가 없다고 이구동성으로 얘기한다. 나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실제로 평생 외교관으로 일하셨던 분과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파견지를 정할 때 우리보다 낫다고 생각되는 나라가 채 10개 국가가 안 된다고 한다. 그러면서 한국이 가장 깨끗하고 안전하다고 힘주어 얘기한다.
밀라노 갤러리 두오모 긴처 유명 쇼핑가 (밀라노) /사진=김홍선
80년대 유학을 갔다가 들어올 때 김포 공항에 입국하면서 무언가 어두운 분위기를 느낀 적이 있다. 사람들의 표정이 딱딱해 보인다. 나도 그런 환경에서 줄곧 자랐는데 단 몇 년의 국외 생활에서 이런 차이가 느껴지다니…. 당시만 해도 우리는 미국에 비해 무언가 경직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그 반대다. 한국이 훨씬 친절하고 밝다. 외국인들도 한국의 밝음을 좋아한다. 적어도 우리 사회에서 경직됨은 많이 사라지고 표정에서 여유로움이 보인다. 그런데 중국 공항에서 80년대 한국 공항에서 경험했던 느낌이 드는 것은 나만 그런 걸까? 공항도 한국에 비해 어두운데, 극히 사무적인 표정은 당황스럽다. 어떤 담당자는 자국민에게 신경질을 내기까지 한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그랬다가는 어떤 취급을 받겠는가? 알게 모르게 우리 스스로 변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피렌체 상점가 베키오 다리 위의 오래 된 상점가 (피렌체) /사진=김홍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