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선의 유럽여행기]돌 하나에도 의미가 있다

머니투데이 김홍선 2014.02.08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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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콜로세움에서 포로 로마노까지

편집자주 필자는 23년간 IT 분야에서 엔지니어로, 벤처 기업가로, 전문경영인으로서 종사한 IT 전문가다. '누가 미래를 가질 것인가?'라는 저서도 출간했다. 그는 최근 7년간 몸 담았던 안랩의 CEO를 그만 두고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고 있다. 인생의 2막을 준비하면서 그는 최근 유럽 여행을 다녀왔다. 유럽여행이야 더 이상 낯선 단어가 아니고, 또 전문가들의 여행기도 많다. IT 경영인의 시각으로 바라본 여행의 단상은 어떨까. 바쁜 일상으로 출장 외에 여유있는 여행을 꿈꿀 수 없는 CEO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쯤으로 시리즈를 연재한다. 여행경로는 로마에서 시작해 나폴리-피렌체-베니스-밀라노-파리까지. 20일간의 여정이다.

로마의 중심 /사진=김홍선로마의 중심 /사진=김홍선


미국 대학 역사학과에서는 로마 시대를 잘 이해하려면 HBO에서 만든 영화 ‘ROME’ 시리즈를 보라고 한다. 그만큼 고증이 철저히 이루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처음 이 영화를 보면 ‘과연 로마가 이랬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더럽고 문란한 장면에 당황한다. 아무리 영화 줄거리라 하더라도 유명한 지도자들의 천박하고 동물 같은 행동에 적잖이 실망스러웠다. 한편으로는 ‘2,000년 전이니 최고의 문명국가라도 그랬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영화 ‘ROME’을 비행기에서 보면서 혼란스러운 상상을 하는 가운데 로마를 찾았다.

로마는 지중해를 품는 방대한 제국으로 영화를 구가했지만, 생각보다 그 중심부는 크지 않다. 7개의 작은 언덕과 그 언덕 아래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인 포로 로마노(Foro Romano), 이것이 로마의 주요 구성요소다. 술라, 폼페이,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와 같은 역사적 인물들이 활약한 무대다.



로마 콜로세움 /사진=김홍선<br>
로마 콜로세움 /사진=김홍선
보통 로마를 가면 제일 먼저 찾는 곳이 로마의 대표적 상징인 콜로세움이다. 영화 ‘글라디에이터(Gladiator)’가 디지털 그래픽 덕택에 과거의 모습을 가깝게 묘사했다. 콜로세움의 설계 개념과 실제 어떻게 운영되었는가에 대해 설명을 듣다 보면, 그 치밀함에 새삼 놀라게 된다. 80여 개의 아치(arch) 문을 통해 5만 명이 넘는 인원이 10분 안에 입장하는 광경, 무더운 여름에는 돔 형태로 태양을 막아주는 천장 지붕의 멋진 모습, 물을 끌어들여 수중전투 게임을 하는 장면 등. ‘자전거 나라’ 안내자가 아이패드를 가지고 당시 모습을 재현한 그림들을 하나씩 보여주는데, 마치 내 앞에 있는 콜로세움에 과거의 모습이 투영되어 보이는 것 같다. 좋은 세상이다.

허나 콜로세움의 웅장함에는 감탄하지만, 정작 잘 들여다보면 황량하고 훼손된 모습에 실망하게 된다. 지진과 같은 천재지변도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인재(人災)가 더 컸다. 교회나 왕궁에 필요하다고 돌과 대리석을 뜯어가고, 심지어는 시민도 버젓이 자기 집에 가져갔다니 어이가 없다. 쓰레기도 갖다 버려서 악취 나는 우범지역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방치되어 있었음에도 그 골격이 2000년이 되도록 서 있으니, 애당초 얼마나 튼튼하게 지었다는 얘기인가? 아치(Arch)의 과학성이 여실히 입증된다.



사실 콜로세움은 인간들의 쾌락을 위해 피비린내 났던 아픔의 장소다. 콜로세움 내부로 들어가 보니, 검투사와 맹수들이 대기했다는 무대 아래가 적나라하게 보인다. 잔인함과 공포심이 가득했을 당시 광경을 생각하면 섬뜩하다. 한편 이곳에서 처참하게 순교한 기독교인들을 생각하니 옷깃이 절로 여며진다.

포로 로마노에서 역사의 숨결을 느끼다

콜로세움 옆 포로 로마노 /사진=김홍선콜로세움 옆 포로 로마노 /사진=김홍선
개인적으로 더 궁금했던 곳은 콜로세움 옆에 있는 포로 로마노(Foro Romano)였다. 이곳은 공화정을 앞세웠던 로마의 정치 문화, 역사적 사건, 경제 활동의 중심이었기 때문이다. 포럼(Forum)이라는 말이 유래했듯이, 이곳은 다양한 의견들이 개진되는 민회의 현장이자, 때로는 민중을 선동하는 진원지이기도 했다.

이제는 그런 활기와 시끄러움은 사라지고, 돌무더기 흔적밖에 없다. “여기는 돌덩어리밖에 없는데 왜 왔어요?”라고 실망하는 여행객도 적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그 돌 하나하나가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생각하면 짜릿한 전율이 느껴진다.


이를테면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는 말이 있다. 로마는 도로 인프라를 잘 구축했다. 도로가 집중되는 곳에 힘이 모이기 마련이다. 오늘날 전 세계 인터넷 트래픽을 차지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IT 기업들이 노력하는가? 인터넷도 사람이 오가는 길이다. 단지 일반 도로와 다른 점은 개인들이 참여하는 플랫폼을 중심으로 여러 갈래 길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길의 본질은 같다. 길이 모이는 곳이 소통의 중심이고, 부와 힘이 모이게 된다.

그렇다면 모든 길이 모이는 로마의 중심은 어디인가? 이번에 그 궁금증이 해소되었다. 개선문 옆에 웬 돌무더기가 보이는데, 바로 그곳이 상징적인 중심(Umbilicus Urbis)이라고 한다. 그 옆에 있는 작은 연단에서 대중에게 정보를 알리고, 토론도 하면서 민심의 동향을 파악했다. 바로 그 돌무더기가 2000년 전 모두가 향하는 중심이었다니, 사진 한 컷 찍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과거로의 여행, 그 매력

포로 로마노의 팔라티노 언덕 /사진=김홍선포로 로마노의 팔라티노 언덕 /사진=김홍선
포로 로마노를 내려다보면서 캄피돌리오 언덕 오르막길로 걸어 올라갔다. 캄피돌리오 언덕은 로마의 7개 언덕 중에 가장 높은 곳으로 유피테르 신전이 있던 성스러운 곳이다. 지금은 미켈란젤로가 설계했다는 신비로운 광장이 있다. 전쟁에서 승리하면 포로 로마노에서 캄피돌리오 언덕을 오르는 게 개선 행진의 코스였다고 한다. 바로 그곳을 내가 걷고 있는 것이다. 또한, 많은 일화가 이곳에 담겨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생각난다.

잘 알다시피 로마가 세계적인 패권국가로 발돋움한 계기는 지중해를 장악하게 된 2차 포에니 전쟁이다. 고대의 명장으로 꼽히는 인물 두 명이 이때 등장한다. 알프스를 넘어 로마를 풍전등화의 위기로 몰아넣었던 불세출의 전략가 한니발, 그리고 한니발의 책략을 배워서 로마 군사력의 패러다임을 바꾼 스키피오. 결국, 까마득한 후배인 스키피오는 한니발의 꿈을 좌절시키고 로마를 위기에서 구하는 영웅이 된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자 스키피오는 정치적 탄핵을 당한다. 인간 사회는 참으로 매정하다. 스키피오는 정치적 술수에 울분을 토했지만, 변론하는 대신 자신을 지지하는 시민과 포로 로마노에서 캄피돌리오 언덕으로 올라가는 장면을 연출한다. 일반 시민에게 스키피오는 아직 영웅이었으니까. ‘로마 이야기’에서는 이 장면을 극적이게 묘사하고 있다. 혹시 스키피오가 올라가던 그 길이 내가 서 있는 곳이 아닐까? 적어도 이 근방일 것이다. 2,000년 전 위대한 장군의 심정이 느껴지는 듯하다.

포로 로마노는 웅장하거나 잘 정비되어 있지는 않지만, 그 자체로서 2,000년 전 과거로의 여행을 만끽하게 해 준다. 오늘날 대부분 국가가 채택하는 법률 제도와 정치 체제의 골격이 이곳에서 싹텄다. 그곳의 돌 하나하나는 시간을 초월한 과거와의 만남으로 역사의 숨결을 느끼게 해 준다. 피부로, 느낌으로, 생각으로 접하는 역사 여행의 매력에 흠뻑 젖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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