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중심 /사진=김홍선
로마는 지중해를 품는 방대한 제국으로 영화를 구가했지만, 생각보다 그 중심부는 크지 않다. 7개의 작은 언덕과 그 언덕 아래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인 포로 로마노(Foro Romano), 이것이 로마의 주요 구성요소다. 술라, 폼페이,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와 같은 역사적 인물들이 활약한 무대다.
로마 콜로세움 /사진=김홍선
허나 콜로세움의 웅장함에는 감탄하지만, 정작 잘 들여다보면 황량하고 훼손된 모습에 실망하게 된다. 지진과 같은 천재지변도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인재(人災)가 더 컸다. 교회나 왕궁에 필요하다고 돌과 대리석을 뜯어가고, 심지어는 시민도 버젓이 자기 집에 가져갔다니 어이가 없다. 쓰레기도 갖다 버려서 악취 나는 우범지역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방치되어 있었음에도 그 골격이 2000년이 되도록 서 있으니, 애당초 얼마나 튼튼하게 지었다는 얘기인가? 아치(Arch)의 과학성이 여실히 입증된다.
포로 로마노에서 역사의 숨결을 느끼다
콜로세움 옆 포로 로마노 /사진=김홍선
이제는 그런 활기와 시끄러움은 사라지고, 돌무더기 흔적밖에 없다. “여기는 돌덩어리밖에 없는데 왜 왔어요?”라고 실망하는 여행객도 적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그 돌 하나하나가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생각하면 짜릿한 전율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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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테면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는 말이 있다. 로마는 도로 인프라를 잘 구축했다. 도로가 집중되는 곳에 힘이 모이기 마련이다. 오늘날 전 세계 인터넷 트래픽을 차지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IT 기업들이 노력하는가? 인터넷도 사람이 오가는 길이다. 단지 일반 도로와 다른 점은 개인들이 참여하는 플랫폼을 중심으로 여러 갈래 길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길의 본질은 같다. 길이 모이는 곳이 소통의 중심이고, 부와 힘이 모이게 된다.
그렇다면 모든 길이 모이는 로마의 중심은 어디인가? 이번에 그 궁금증이 해소되었다. 개선문 옆에 웬 돌무더기가 보이는데, 바로 그곳이 상징적인 중심(Umbilicus Urbis)이라고 한다. 그 옆에 있는 작은 연단에서 대중에게 정보를 알리고, 토론도 하면서 민심의 동향을 파악했다. 바로 그 돌무더기가 2000년 전 모두가 향하는 중심이었다니, 사진 한 컷 찍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과거로의 여행, 그 매력
포로 로마노의 팔라티노 언덕 /사진=김홍선
잘 알다시피 로마가 세계적인 패권국가로 발돋움한 계기는 지중해를 장악하게 된 2차 포에니 전쟁이다. 고대의 명장으로 꼽히는 인물 두 명이 이때 등장한다. 알프스를 넘어 로마를 풍전등화의 위기로 몰아넣었던 불세출의 전략가 한니발, 그리고 한니발의 책략을 배워서 로마 군사력의 패러다임을 바꾼 스키피오. 결국, 까마득한 후배인 스키피오는 한니발의 꿈을 좌절시키고 로마를 위기에서 구하는 영웅이 된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자 스키피오는 정치적 탄핵을 당한다. 인간 사회는 참으로 매정하다. 스키피오는 정치적 술수에 울분을 토했지만, 변론하는 대신 자신을 지지하는 시민과 포로 로마노에서 캄피돌리오 언덕으로 올라가는 장면을 연출한다. 일반 시민에게 스키피오는 아직 영웅이었으니까. ‘로마 이야기’에서는 이 장면을 극적이게 묘사하고 있다. 혹시 스키피오가 올라가던 그 길이 내가 서 있는 곳이 아닐까? 적어도 이 근방일 것이다. 2,000년 전 위대한 장군의 심정이 느껴지는 듯하다.
포로 로마노는 웅장하거나 잘 정비되어 있지는 않지만, 그 자체로서 2,000년 전 과거로의 여행을 만끽하게 해 준다. 오늘날 대부분 국가가 채택하는 법률 제도와 정치 체제의 골격이 이곳에서 싹텄다. 그곳의 돌 하나하나는 시간을 초월한 과거와의 만남으로 역사의 숨결을 느끼게 해 준다. 피부로, 느낌으로, 생각으로 접하는 역사 여행의 매력에 흠뻑 젖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