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에 있는 베끼호 궁전 앞. 궁전은 우피치미술관과 연결돼있다. /사진=김홍선
고급 주택가에 있는 미술관은 아담했다. 1층에는 신고전주의 작품 위주로 전시되어 있었고, 모네 작품은 마지막 코스였다. 모네의 작품으로 가득한 홀(hall)로 들 어서는데, 한 그림이 눈에 확 들어왔다. ‘해돋이’라는 유명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 시선이 고정되면서, 한동안 그 앞에 조용히 앉아있었다. 설명이 필요 없다. 마음이 평온해지면서 그냥 빠져 들어가는 느낌이다.
사실 이번 여행에서는 미술 작품을 많이 관람했다. 바티칸 박물관, 우피치 미술관에서 반나절 이상 보내면서 미술사를 한번 훑어 내리기도 했다. 한평생 본 것보다 훨씬 많은 작품을 짧은 며칠 동안 본 것이다. 50이 넘어서야 제대로 미술공부를 한 셈이다. 그렇지만 인상파 작품은 이곳에서 처음 접했다. 확실히 그동안 봤던 작품과는 큰 틀의 변화가 있다. 작품에 스며 들어가는 오묘한 빛의 조화가 아름답다.
또 하나 결정적인 원인은 튜브 물감의 발명이다. 물감을 휴대하게 되니, 작업실이라는 물리적 공간에서 벗어날 수 있다. 마치 모바일 환경이 되면서 PC가 스마트폰과 태블릿으로 변신해서, 새로운 삶의 방식과 사회 변화를 일으킨 것과 같다. 작업실 밖으로 나온 화가들은 빛의 효과를 보기 시작했다. 신기술이 예술의 조류를 바꾸는데 이바지한 것이다.
많은 화가가 이 흐름에 합류했고, 온갖 조롱과 비판에도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그런데 눈여겨볼 것은 수많은 화가가 있었음에도 우리는 몇몇 화가의 이름만 기억한다. 학창 시절부터 헷갈렸던 마네와 모네 같은 이들이다. 결국, 변화를 선도했던 리더의 이름만 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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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 박물관을 가는 이유는?
세스티나 성당을 가는 도중에도 수많은 천장화가 전시되어 있다. 모두 훌륭한 작품이다. 그러나 이를 눈여겨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오로지 관심사는 하나다. 드디어 박물관의 마지막 백미인 ‘천지 창조’. 천장을 가득 채운 그림이 눈에 들어온다. ‘와! 대박!’ 저절로 탄성을 자아내지 않을 수 없다. 어쩌면 저 멀리 있는 프레스코화가 이렇게 뚜렷하고 선명하게 보일까? 대단하다! 새벽부터 온종일 고생한 보람이 있다.
중세 시대에는 교회를 장식하는 천장화가 유행했다. 심지어 베르사유 궁전에는 욕조가 놓였던 방에도 천장화가 있다. 목욕하면서 심심할 테니 보라는 것이다. 가히 사치스러운 발상이다. 예술가들은 힘들어도 후원자의 요구에 응하지 않을 수 없었나 보다.
조각가 출신 미켈란젤로에게 천장화는 전혀 새로운 도전이었다. 그러나 4년간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극복한 집념의 도전이 불세출의 작품을 탄생시켰다.
누가 역사에 기억되는가?
문득 “100년 뒤에는 지금의 시대를 어떻게 평가할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든다. 우리가 사는 시대의 코드는 단연코 정보기술(IT)이다. IT는 과거 몇백 년에 걸쳐서나 나올만한 발명과 혁신을 단 몇십 년 만에 이룬, 디지털 문명을 이루어가는 동력이다. ‘융합’이란 키워드는 IT가 있기에 탄생한 사회 현상이다.
무수히 많은 IT 제품이 탄생하고 있다. 그러나 100년 뒤에도 남아 있을 제품은 없다. PC, Windows, 스마트폰 등, 당연히 없어진다. 물론 그 속에 담긴 컴퓨터 개념은 발전된 형태로 진화할 것이다.
제품은 다 잊히더라도 시대를 바꾼 혁신가(innovator)는 기억할 것이다. 그렇다면 누구 이름이 역사에 남겠는가? 재미있는 상상이다. 아마도 스티브 잡스는 기억되지 않을까? 개인용 컴퓨터를 발명하고, PC에 GUI를 적용하고, 스마트폰과 태블릿으로 포스트 PC 시대를 연 선구자다. 검색의 구글, 유통망의 아마존, 인간관계의 페이스북 창업자도 가능성이 있다. 그 외에 누가 기억될까? 돈을 많이 번 사람도, 큰 기업도 모두 잊힐 것이다.
역사 속에 기억되는 사람은 혁신의 정신으로 새로운 도전을 해서 큰 흐름을 바꾸는 이들이다. 물론 그런 천재만이 사는 세상은 아니다. 따르는 사람, 비판하는 사람이 어우러져서 새로운 시대를 같이 만들어 간다. 그러나 역사의 물줄기는 이런 소수의 인물에 의해 주도되기 마련이다. 모네, 미켈란젤로, 다빈치 등, 위대한 예술가의 삶과 정신을 잘 반추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