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새벽' 박노해, "무엇이 좋은 삶인가" 다시 묻다

머니투데이 이언주 기자 2014.02.05 06:28
글자크기

아시아 사진전 <다른 길>展··· 5일부터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본관

박노해 시인이 자신의 사진 작품 '남김없이 피고 지고' 앞에서 사진에 담긴 사연을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이언주 기자박노해 시인이 자신의 사진 작품 '남김없이 피고 지고' 앞에서 사진에 담긴 사연을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이언주 기자


"내가 졸지에 티베트에서 가장 불쌍하고 가난한 사람이 됐어요. 왠지 아세요?"

푸른 초원 위, 머리를 양 갈래로 땋은 앳된 여인이 어린 아이를 안고 서있다. 한쪽에는 그들의 보금자리로 보이는 천막이 여러 개의 장대에 의지해 서있다. 흑백 사진 속 이 풍경은 언뜻 황량해 보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여인의 입가에는 순박한 미소가 지어져있고, 자연 그대로의 풍광은 청량감마저 더한다.

시인이자 노동운동가 박노해(57). 그가 자신의 시집 '노동의 새벽' 발간 30주년을 맞아 5일부터 서울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본관에서 박노해 아시아 사진전 '다른 길'을 연다. 전시 개막에 앞서 4일 낮 기자들과 만난 그는 이번 전시의 주제 사진이기도 한 '남김없이 피고지고'라는 제목의 사진 앞에서 이야기를 펼쳤다.



"티베트 초원입니다. 이곳 사람들은 집을 짓지 않고 야크 털로 짠 천막을 짓고 삽니다. 그런데 이들에게는 공동윤리가 있습니다. 누가 감시하는 것도 아닌데 결코 3개월 이상 한 곳에 머물지 않습니다. 불편함을 감수하고 옮겨 다니는 이유는 그러지 않으면 초지가 황폐화되기 때문입니다. 함께 살아가는 땅이고 내 아이가 살아갈 땅이라는 생각으로 공공의 것을 지켜가는 거죠."

그런데 어쩌다 박 시인이 티베트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이 됐을까. 미소 띤 그가 설명을 이어갔다. "저 여인이 저한테 묻더라고요. 야크는 몇 마리 있는지, 그래서 한 마리도 없다고 했죠. 그럼 말은 몇 마리 있냐고 해서 또 다시 한 마리도 없다고 했어요. 집도 자식도 없는 걸 확인한 그 여인이, 일단 짜이(전통 차) 한 잔 하라더니 제가 떠날 때 새끼 야크 한 마리를 주더라고요. 이걸 잘 키우면 내년엔 젖도 짤 수 있을 거라면서요."



박 시인이 줄곧 주장하는 '공공의 삶', '인간성', '전통의 지혜'가 바로 이런 것일까. 그는 이번 전시를 통해 '무엇이 좋은 삶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나'라는 우리 시대의 물음에 희망을 주고자 한다. 그는 전시에 소개되는 120여 점의 사진을 통해 '진정한 나를 찾아 사는 것', '대지에 뿌리박고 자급자족하는 좋은 삶을 사는 것', '우애와 아름다움을 누리며 사는 것'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이번 사진전은 인류정신의 지붕이라 일컬어지는 땅 티베트에서부터 예전에는 천국이라 불렸으나 지금은 지옥이 된 파키스탄을 거쳐 인디아, 버마, 라오스, 인도네시아까지 모두 6개국에서 박 시인이 찍은 7만장 중 선별, 정통 흑백 아날로그 방식으로 인화한 것이다.

'노래하는 다리' Lake Inle, Nyaung Shwe, Burma, 2011. ⓒ박노해.  가수 윤도현은 이 사진을 이번 전시 작품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으로 꼽았다. /사진제공=나눔문화'노래하는 다리' Lake Inle, Nyaung Shwe, Burma, 2011. ⓒ박노해. 가수 윤도현은 이 사진을 이번 전시 작품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으로 꼽았다. /사진제공=나눔문화
(왼쪽)'파슈툰 소년의 눈동자' Drosh, Khyber Pakhtunkhwa, Pakistan, 2011. ⓒ박노해<br>
(오른쪽)'짜이가 끓는 시간' Barsat village, Gaguch, Pakistan, 2011. ⓒ박노해 /사진제공=나눔문화(왼쪽)'파슈툰 소년의 눈동자' Drosh, Khyber Pakhtunkhwa, Pakistan, 2011. ⓒ박노해
(오른쪽)'짜이가 끓는 시간' Barsat village, Gaguch, Pakistan, 2011. ⓒ박노해 /사진제공=나눔문화
그의 사진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은 바로 '빛'. 그중에서도 '역광'과 '절제된 빛' 사용에 주목할 수 있다. 작고 보잘 것 없어 보이던 존재들도 역광 촬영으로 그 존재감이 특별해졌고, 주인공의 앞면에 깔린 길고 짙은 그림자는 중후함과 드라마틱한 느낌을 전한다.


박 시인은 어떻게 이들의 삶 속에 들어가게 됐을까. 낯선 타지 인에게 자신들의 생활을 오롯이 드러내고, 때론 그를 보듬고 살펴주기까지 했다니. 토박이 현지인들과의 첫 만남이 어땠는지 묻자 그는 "저는 마을에 들어가면 사진작가 아니거든요"라며 운을 뗐다.

"제가 동네에 들어서면 아이들이 제일 먼저 달려옵니다. 그럼 축구부터 해요. 제가 중학교 때 축구선수였기도 하고 지금도 축구를 아주 좋아하거든요. 분쟁지역에서는 폭격이 울리면 같이 엎드리기도 하고 부모 형제 잃은 아이들을 만나면 함께 펑펑 울기도 하죠. 저도 7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그 심정을 잘 알거든요. 그러다보면 차도르 쓴 여인이 와서 짜이를 한잔 건넵니다. 그렇게 차 한 잔으로 마을사람들과 친해지기 시작하는 거죠."

참으로 따스하고 인간적이다. 그런데 이처럼 자연스러운 것이 놀라운 일이 됐고, 새삼스러운 이야깃거리가 됐다. 그가 말하는 시대정신과 인간성의 회복,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본연의 감성을 이번 전시를 감상하며 꺼내보면 어떨까.

작품 가격은 165만~770만 원(부가세 포함) 선이다. 전시는 다음달 3일까지 열린다. 전시기간 중 매일 오후 2시·7시 도슨트(전시 설명)가 열리며, 오는 5·13·16·24일 '작가와의 대화'도 마련됐다. 1회 70명 선착순 마감하며 전시 홈페이지(www.anotherway.kr)에서 신청하면 된다. 관람요금은 일반 5000원, 학생 3000원. 티켓은 현장 구매 및 인터파크 온라인 예매를 통해 할 수 있다. 문의 (02)734-1977.



'얼굴 없는 시인' 박노해, 그는 누구인가...

'노동의 새벽' 박노해, "무엇이 좋은 삶인가" 다시 묻다
본명은 박기평. 1957년 전라남도 함평 출신이다.
박노해는 '박해받는 노동자의 해방'이란 뜻의 필명이다.

1970~80년대 '얼굴 없는 시인'으로 활동하며 89년 '남한사회주의 노동자동맹'(사노맹)을 결성했다. 분단 이후 우리 사회에서 처음으로 사회주의 혁명을 공개 선언했다. 91년 체포 돼 무기징역을 선고받았고, 98년 8·15 특별사면으로 석방 당시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지 않겠다"며 국가보상금을 거부 했다.

2000년 '생명·평화·나눔'을 내건 '나눔문화'를 설립하며 사회문화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