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120다산콜센터 직원(위 사진은 본 기사와 무관함) /news1=조현정 기자
# 보험설계사 B씨(33·여)는 지난해말 50대 남성 고객으로부터 "모텔로 가서 이야기하면 보험에 가입해주겠다", "한 달에 한 번씩 만나주면 더 비싼 보험도 들겠다"는 말을 들었다. B씨는 지독한 수치심을 느꼈지만 "고객이라 화도 못 냈다. 보험설계사들은 고객이 전화를 하면 반드시 받아야 하는데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고용노동부의 성희롱 처벌·징계의 근거인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양립에 관한 법률'(이하 남녀고용평등법)은 성희롱 피해자와 가해자를 '직장 내 근로자'에 한정하고 있다. 직장 상사, 동료 직원 등 근로자에게 성희롱을 당한 경우에만 재발 방지 약속 등 피해 구제를 받을 수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법도 성희롱 가해자를 '공공기관의 종사자, 사용자, 근로자'로만 한정하고 있다. 가해자가 고객인 경우에는 법 적용이 어렵다.
한국여성민우회 관계자는 "고객에게 성희롱을 당할 경우 이에 대한 대응을 전적으로 '사업자'의 재량에 맡기고 있어 실제로 지켜지는지는 알 수 없다"며 "성적 착취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노동자들의 당연한 권리가 사용주의 아량에 달려 있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직원이 고객으로부터 성희롱을 당했을 때 적극적으로 나서 해결하려는 사업주는 많지 않다. 대리운전 콜센터 직원 C씨(26·여)는 지난 9월 술취한 고객으로부터 이상한 신음소리를 듣고 놀라 전화를 끊었다. 이에 콜센터 사장은 "장사 말아먹을 일 있느냐. 무슨 일이 있어도 전화를 먼저 끊으면 안 된다"고 호통을 쳤다. 이후 C씨는 거의 매일 이를 악물고 성희롱 전화를 견뎌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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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노동자회 '평등의전화 상담사례집'에 따르면 지난해 '고객에 의한 성희롱' 상담은 전체 상담 건수 가운데 9.2%를 차지했다. 집계가 시작된 2009년 이후 꾸준히 10% 안팎의 비율을 유지하고 있다.
송은정 한국여성노동자회 노동정책부장은 '고객에 의한 성희롱'에 대해 "제도적으로 무방비 상태"라며 "여성 노동자에게 '인내'를 강요하는 등 현실적인 사회 분위기를 고려할 때 가해 고객에 대해 서비스 이용에 제한을 주는 등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