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미지비트
어느 조직이나 꼭 있다.
조직애(愛), 도전정신, 성취감...등등의 발현이라고 믿고 싶다. 하지만 안 그런 사람들도 '의외로' 많은 것 같다.
50줄의 한 회사 간부에게 "난 회사로 퇴근해"라고 말하는 걸 듣고 고개가 끄덕여졌다. 집보다 회사가 더 편하다는 거다. 이 말을 들려주면 40대 후반 이후에 접어든 축들은 그 느낌을 알겠다고들 한다. 이유가 뭘까.
첫째는, 그 정도 나이가 되면 '내 자리'가 있다는 점이다. 임원급이면 혼자서 맘 편히 있을 방도 있다. 집은? 아직 아이들이 완전히 독립하기 전이라면 집에서 가장이 시간을 보내는 공간은 소파 한쪽 가로세로 50센티미터 남짓인 경우가 많다. 30평대 아파트에서 가장이 독방 차지하고 있을 형편이 아니고, 저녁 먹자마자 안방 침대로 기어들어가 누울 수도 없는 노릇이다.
셋째, 하기 싫은 걸 하지 않아도 된다.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다는 것과는 또 다른 '메리트'이다. 청소기 밀고, 밀걸레질 하고, 재활용 쓰레기 버리러 오르락 내리락 하는 '시간 외 노동'이 회사엔 없다. 통계를 내보면 재활용 쓰레기 버리는 날엔 유난히 퇴근이 늦는 중년들이 많을지도 모른다.
집에서는 부하는 커녕, 강아지 다음 '넘버 5'된지 오래다. 옆에서 뭐라도 참견했다간 십중팔구 "당신이 뭘 안다고" "아빠는 그냥 소파에서 주무세요"라는 말이 돌아온다.
덤으로, 열심히 일한다는 평판도 얻을 수 있다.
상사가 심심해서 돌려본 전화를 내가 받게 되면 효과 만점이다. "왜 이시간에 사무실에 있어?" "아 예, 할일이 좀 남아서요"
아마 그 상사도 회사로 '퇴근'해 있었을지 모르지만 일단은 '이 친구, 열정이 있구만'이라고 먹어 준다.
22년째 기자생활 하면서 첫 몇 년은 한 달에 두 번 쉬고 일했다.
주5일제가 도입되면서 격주로 주 이틀을 쉬지만, 보통 직장인보다 빨리 출근하고 퇴근 뒤에도 사람들 만나는 '2차 출근'이 이어지는 탓에 아이들과 밥상 마주하는 건 여전히 1주일에 두세끼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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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약속 시간이 애매해서 아침 8시 조금 넘어 초등학생 아들 손을 잡고 바래다 준 적이 있다. 교문으로 들어가는 녀석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며 '내가 네 뒤에서 이렇게 쳐다보고 있었던 걸 넌 평생 모르겠지? 우리 아버지도 그랬을까? 남들처럼 9시에 출근하고 저녁에 일찍 퇴근해 아이들 깨어 있는 모습을 매일 보면…인생이 얼마나 달라질까'라고 생각했었다.
'회사로 퇴근하고픈 남자들'은 적어도 내게는 먼 이야기였다. 그렇게 느꼈다.
그런데 요즘은 가끔 회사로 퇴근하려는 내 모습을 발견하고 깜짝 깜짝 놀란다.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인 오늘, 당직도 아닌데 회사에 나왔다. 그리고 지금껏 자리에서 일어서지 않고 있다. 내 방도 비서도 없는데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