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액주주 권익세우려다 삼성· 현대차 경쟁력 '흔들'

머니투데이 서명훈 기자 2013.08.19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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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법개정안 무엇이 문제인가(3) 다중대표소송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꼴이 될 겁니다." 상법개정안에 포함된 다중대표소송제도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한 마디로 요약한 말이다.

다중대표소송이란 지분 1% 이상을 보유한 주주가 자회사의 이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적은 지분으로 자회사 견제까지 가능해지기 때문에 소액주주의 권익이 향상되는 장점이 있다. 또한 대주주가 자회사를 함부로 좌지우지하기 어렵게 돼 '일감몰아주기' 등을 통한 편법적인 상속을 차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이런 장점에도 재계는 다중대표소송제도 도입을 강력히 반대한다. 단순히 대기업 총수의 영향력이 제한되기 때문에 반대한다고 치부하기에는 예상되는 부작용이 너무 크다. 학계에서조차 다중대표소송제도 도입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소액주주 권익세우려다 삼성· 현대차 경쟁력 '흔들'


◇애플·토요타에 칼 쥐어주는 꼴=다중대표소송제도가 도입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가장 우려되는 대목은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등 국내 대표기업들의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애플이 삼성전자 (77,500원 ▲800 +1.04%) 지분 1%를 취득한 뒤 미국 현지법인이나 자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일이 얼마든지 가능해진다. 토요타자동차 역시 똑같은 방식으로 현대차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일도 어렵지 않다.

특히 애플이나 토요타가 각각 미국과 일본 자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면 삼성전자와 현대차는 경쟁상대의 안방에서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한다. 천문학적 소송비용은 물론 경영효율성 저하도 불가피하다. 다중대표소송제도 도입으로 소액주주의 권리가 향상되는 측면이 분명히 있지만 예상되는 부작용 또한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론스타·소버린 악몽 되살아나나=다중대표소송제도가 도입되면 악몽과 같았던 론스타사태나 소버린사태가 더욱 자주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론스타는 외환은행과 극동건설 등을 인수, 6조원에 가까운 돈을 챙겼고 소버린 역시 SK (207,000원 ▼12,000 -5.5%)를 공격하고 약 1조원의 수익을 올린 뒤 떠나버렸다.


투기자본에 국내 대표기업의 지분 1%만 확보하면 자회사를 대상으로 얼마든지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점은 상당히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소송을 당한 자회사들의 주가는 떨어질 수밖에 없고 이를 틈타 지분을 매집한 다음 소송을 취하하고 주가가 회복되면 되파는 수법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거대 투기자본 입장에서는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들의 지분 1%를 확보하는 것이 그리 힘든 일이 아니다. 삼성전자는 지분 1%를 확보하는데 약 1조9000억원(8월16일 종가기준)이 필요해 다소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현대차 (251,000원 ▼500 -0.20%)(5200억원)와 포스코 (405,000원 ▼2,000 -0.49%)(2900억원) LG전자 (92,900원 ▲100 +0.11%)(1200억원) 등은 좋은 먹잇감으로 비쳐질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개미'(개인투자자)도 손실을 입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주주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가 오히려 역효과를 초래하는 위험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또 소송이 제기되면 증거조사 과정은 물론 장부열람권 등을 행사해 자회사의 기밀정보까지 빼내갈 우려마저 제기된다.

◇다중대표소송, 견제장치가 없다=해외에서도 상법개정안에 포함된 다중대표소송제도를 채택한 사례를 찾기 어렵다. 일본의 경우 다중대표소송제도가 법제화돼 있고 캐나다와 호주, 뉴질랜드 등에서도 인정한다. 미국 역시 판례를 통해 일부 인정한 사례를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이들 국가는 다양한 형태로 다중대표소송제도 요건을 엄격히 규정한다. 한국처럼 브레이크가 없는 경우는 없다는 게 학계의 대체적인 지적이다. 김지환 경남대 교수(법학)는 "상법개정안의 경우 자회사를 확대 해석할 수 있어 손(자)회사나 증손회사까지 다중대표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며 "세계에서도 선례가 드물다"고 지적했다.

일본의 경우 소송남발을 방지하기 위해 모회사가 자회사 주식을 100% 보유하고 모회사가 가진 자회사 주식가액이 모회사 총자산의 5분의1 이상인 중요 자회사에 대해서만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했다.

미국도 최근에는 다중대표소송이 법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례가 늘고 있고 영국과 독일은 단순대표소송도 법원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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