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화 밀물'이 만든 강남의 섬…끝나지않은 개발 논란

머니투데이 이재윤 기자 2013.08.11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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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후']서울 강남 개포동 무허가 판자촌 '구룡마을'


80년대말 도심개발 그림자, 철거민들의 무허가 판자촌
2년전 공공개발 발표 불구, '환지 vs 수용방식' 평행선
서울시 "사업비 절감 효과"…강남구 "일부만 이익볼 것"


구룡산 자락에 위치한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전경. / 사진 = 이재윤 기자.구룡산 자락에 위치한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전경. / 사진 = 이재윤 기자.


 서울 구룡산과 대모산 초입에 위치한 마을. 대한민국 최고의 입지를 가진 서울 강남의 노른자땅이지만 지도에도 없는 마을. 3.3㎡당 3000만원에 20층짜리 초호화 주상복합아파트와 1㎞ 남짓 떨어져 있는 판자촌.



 서울 강남구 개포동 567-1번지 일대 '구룡마을'. 버려진 천과 나무 등으로 만든 판잣집 1249가구에 2500여명이 모여사는 마을이 개발을 둘러싼 논란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1990년 초부터 시작된 논란은 2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구룡마을을 흔들고 있다.

 ◇ 강남의 '판자촌'…빈민들의 '터전'



 장마가 끝난 지난 5일 오후 개포 주공아파트 1·2단지 사이에 위치한 개포중학교 버스정류장에서 2분 정도 걸어 구룡마을에 도착했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2층짜리 주민자치회관 건물이 먼저 눈에 띄었다. 주민자치회관 벽에는 '개발사업을 조속히 추진해야 한다'는 내용의 현수막들이 내걸려 있었다. 주민자치회관을 지나자 구룡산자락을 타고 자리잡은 마을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주민자치회관에 개발을 조속히 추진할 것을 요구하는 주민들이 현수막을 내걸었다. / 사진 = 이재윤 기자.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주민자치회관에 개발을 조속히 추진할 것을 요구하는 주민들이 현수막을 내걸었다. / 사진 = 이재윤 기자.
 천으로 얼기설기 쌓아올린 지붕의 집들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마을 안으로 들어서자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마을 안쪽 상황은 생각보다 더 심각했다.


 통상 지하에 매립돼 있는 상수도관이 지붕 위로 지나고 있었다. 집 앞에 쌓아둔 연탄과 LPG(액화석유가스)통도 쉽게 눈에 띄었다. LPG통 옆에서 담배를 피우는 주민들도 보였다. 화장실도 공동으로 사용했다.

 마을사람들은 서울에서 진짜 상수도는 여기뿐일 것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전기가 제대로 들어온 것도 불과 몇 년 전이라고 얘기했다. 생활환경이 열악하다보니 매년 침수피해를 겪는 것은 물론 화재가 수차례 발생해 목숨을 잃은 경우도 있다.

 마을에서 만난 최진숙씨(가명) 집 방안은 어두웠고 고약한 냄새가 진동했다. 9.9㎡ 정도 되는 집안에는 온갖 살림살이가 어지럽게 쌓여 있었고 부부가 잘 공간만 겨우 마련돼 있었다.

 벽지가 대부분 떨어진 상태였지만 정작 거주자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돈이 없어 고칠 생각도 못하고 있다"며 "벽이 약해 벽지를 다시 바를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1989년 남편과 함께 아이들을 데리고 쫓겨오듯 구룡마을로 들어왔다는 그는 이어 "자식들이 있지만 서로 먹고살기도 힘들다"며 "개발도 좋지만 그냥 여기서 살 수만 있었으면 좋겠다"고 덤덤히 말했다.

'도심화 밀물'이 만든 강남의 섬…끝나지않은 개발 논란
 주민 대부분은 80년대 중반이나 90년 초반에 구룡마을로 들어와 살고 있었다. 가난으로 이곳을 벗어나지 못한 60~80대 어르신들이었다. 주민들은 워낙 환경이 열악해 젊은 사람들은 아무리 가난해도 살 수 없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1988올림픽과 1기 신도시…서울 개발의 '그림자'

 82년 초까지만 해도 50여명이 농사를 짓는 '옛골마을'이란 평범한 촌락이던 구룡마을은 80년대 중반 급격히 팽창된 서울을 정비·확장하는 과정에서 생겨났다.

 특히 81년 '88서울올림픽'이 결정된 이후 도심정비사업이 본격 진행되면서 구룡마을에 무허가 판자촌이 들어섰다. 분당 등 수도권 1기 신도시 철거민들도 이곳에 자리를 잡으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82년 이후 정부는 4~6년밖에 남지 않은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위해 대대적인 정비사업을 진행했다. 정부는 당시 서울시내 이곳저곳에 위치한 판자촌을 깨끗이 정리했다.

 정비사업으로 밀려난 철거민들은 그나마 생활권과 가까운 서울 강남의 끝자락에 위치한 구룡산 밑에 비닐하우스를 만들어 살기 시작했다. 당시는 법에 따라 판잣집을 짓고 살아도 주민등록을 인정했다. 구룡마을에 처음 판잣집이 생겨난 것이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구획도. / 자료 제공 = 강남구.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구획도. / 자료 제공 = 강남구.
 사실 이미 이때부터 구룡마을 개발을 둘러싼 논란이 시작됐다고 주민들은 설명했다. 당시 강남은 대규모 주택개발사업으로 전국민의 관심을 받고 있었다. 1만여가구의 개포주공1~7단지 등이 82년부터 입주를 시작했다.

 논밭이던 강남이 대규모 아파트단지로 변모하면서 구룡마을도 주목받았다. 주민들에게 나눠주는 아파트분양권인 이른바 '딱지'로 큰 돈을 벌었다는 얘기가 전해졌기 때문이다. 판자촌에 살다가 개발되면 한몫 챙겨나갈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철거민들을 구룡마을 무허가 판자촌으로 끌어모았다.

 정부가 서울 주변 5곳에 신도시를 만들면서 해당 지역 철거민들도 구룡마을로 향했다. 당시 심각한 주택난 해결을 위해 89년 5곳에 1기 신도시를 만들겠다고 했고 특히 경기 광명시 철산리 주민들이 이곳으로 많이 옮겨와 불법으로 판자촌을 만들었다. 주민등록에도 등록되지 않은 유령주민들이었다.

 82년부터 인근에서 중개업소를 운영하는 H공인중개소 대표는 "89년부터 3~5년 동안 자고나면 밤에 10~20채씩 생겼다"며 "개발된다는 말이 돌면서 비닐하우스와 판잣집이 비정상적으로 엄청 늘어났다. 사실 대책 없이 욕심이 너무 지나쳤다"고 말했다.

 이렇게 89년 12월까지 2000여가구가 자리를 잡았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도심정비사업으로 쫓겨난 철거민들 뿐 아니라 개발수요를 노린 투기꾼들도 구룡마을로 손을 뻗쳤다. 96년 구룡마을에는 2139가구에 7350여명이 넘는 주민들이 살기도 했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내 판자집에 강남구청이 거주가구와 공가를 구분해 놨다. / 사진 = 이재윤 기자.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내 판자집에 강남구청이 거주가구와 공가를 구분해 놨다. / 사진 = 이재윤 기자.
 ◇20년 넘는 개발의 '소용돌이'

 구룡마을 개발이 본격 논의된 시점은 90년대부터다. 당시에는 공공개발과 민간개발을 두고 논란이 있었고 민간업체가 수차례 사업을 추진하려 했으나 보상비 등의 문제로 사업을 접었다.

 99년 마을주민들이 협의체를 구성, 벽산건설을 개발업체로 선정하고 사업을 추진하기도 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이후에도 계속 개발에 대한 논의가 있었지만 결국 2011년 4월 서울시가 공공개발을 발표하면서 일단락됐다.

 최종 발표 전 투기꾼과 원주민을 가려내기 위해 강남구가 수백 채의 가짜 판잣집을 가려내 공가폐쇄조치했다. 강남구는 마을에 24시간 상황실도 만들어 운영했다. 들끓는 투기세력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이 과정에서 주민들이 직접 나서 출입을 통제하고 감시를 서는 등 갈등을 빚기도 했다.

 공공개발로 가닥을 잡은 구룡마을 개발은 순조롭게 항해하는 듯보였으나 또다시 암초를 만났다. 최근 구룡마을 개발을 둘러싼 논란이 재점화된 것은 서울시와 강남구가 개발방식을 두고 날을 세우면서다. 강남구는 이와 관련해 검찰 수사까지 의뢰한다는 입장이다.

 시는 사업비 절감 등을 위해 토지소유권은 소유주들에게 놔두고 개발을 진행하는 환지방식을 추진한다. 구에선 공공개발의 이익이 일부 개인에게 돌아가기 때문에 해당 토지를 전면 매수해 개발하는 수용·사용방식(이하 수용방식)을 고수한다.

 해당 부지의 토지주들은 수십 년 동안 재산권을 전혀 행사할 수 없었기 때문에 토지소유권 일부를 토지주들이 갖는 환지방식으로 개발이 추진돼야 한다는 입장을 보인다.

'도심화 밀물'이 만든 강남의 섬…끝나지않은 개발 논란
 주민들도 개발방식을 두고 찬반으로 나뉜다. 대다수 주민이 열악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선 개발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다만 개발되더라도 분양받을 수 있는 자금여력이 없어 또다시 쫓겨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88년 마을에 들어와 거주 중이라는 홍숙임씨(가명·78)는 "사실 그동안 여기서 살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행운이었다. 불법으로 지어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겠지만 그동안의 세월만큼 정이 들었다"며 "개발되더라도 행복할 것같지 않고 안된다고 꼭 불행하지도 않을 것 같다. 그만 좀 싸우고 조용히 살 수만 있었으면 좋겠다"고 푸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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