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를 벌면 무엇을 할 것인가?

머니투데이 실리콘밸리=유병률 특파원 2013.07.2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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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률의 체인지더월드]<56> '도시'를 '창업'하는 실리콘밸리 창업가들

자포스(Zappos) 창업자이자 CEO 토니 셰이. /사진출처:블룸버그 자포스(Zappos) 창업자이자 CEO 토니 셰이. /사진출처:블룸버그


사업에 성공해서 아주 큰돈을 번 한 사람이 있다. 그는 낙후한 도심을 사들인 뒤, 거리를 단장하고, 공원과 공연장, 학교, 그리고 예쁜 아이스크림가게도 만든다. 그리고는 이곳으로 젊은 창업가들을 불러 모은다. 사업밑천을 투자하고, 일하고 생활할 공간도 제공한다.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레스토랑과 바도 있다. 꿈 꿔온 혁신적 아이디어를 마음껏 펼쳐보라고 말이다. 원주민들에게는 무이자로 돈을 빌려줘 작은 가게를 차릴 수 있도록 한다. 새로 온 창업가들과 원주민들이 어울려 삶의 공동체를 만들 수 있도록.

이 사람은 바로 세계최대 온라인 신발사이트 ‘자포스(Zappos)’의 창업자이자 CEO인 토니 셰이(39)이다. 현재 네바다주 라스베가스에서 이런 프로젝트를 착착 진행하고 있다. 프로젝트의 이름은 ‘다운타운프로젝트(DowntownProject)’. 그는 “세상을 뒤집는 혁신은 사람들이 같은 생활공간에서 마주치고, 부대끼고, 나누고, 협업하는 가운데 절로 나오는 것"이라 믿고 있다. 그래서 이 프로젝트의 모토도 ‘마주침(collision)’, ‘협업(collaboration)’, ‘공유(sharing)’이다.



스타트업과 소규모가게들의 삶의 공동체가 들어설 라스베가스 프레몬트거리. /사진출처:다운타운프로젝트 홈페이지(downtownproject.com) 스타트업과 소규모가게들의 삶의 공동체가 들어설 라스베가스 프레몬트거리. /사진출처:다운타운프로젝트 홈페이지(downtownproject.com)
그는 2009년 회사를 아마존에 12억 달러(약1조3500억원)에 팔아 큰돈을 벌었다.(매각 이후에도 토니 셰이가 계속 경영하고 있다.) 그는 번 돈 가운데 3억5000만달러(약 4000억원)의 사재를 털어 라스베가스 다운타운의 프레몬트 거리를 사들이기 시작했다. 이곳은, 바로 남쪽 카지노 거리의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동네이다. 한때 카지노, 백화점 그리고 중산층들이 있었지만, 남쪽으로 다 옮겨 가면서, 가끔씩 돈 없는 관광객들만 찾을 뿐이다.

그는 3억5000달러중에서 2억달러(약 2200억원)는 땅과 건물을 매입하는데, 5000만달러(약 560억원)는 스타트업(이제 막 생긴 벤처회사) 투자에, 또 5000만달러는 소규모 가게들을 만드는데, 나머지 5000만달러는 교육시설과 문화사업에 쓰고 있고, 또 쓸 계획이다.



카페, 부티끄, 바, 갤러리, 커뮤니티 공간으로 채워질 컨테이너 파크 조감도. /사진:다운타운프로젝트 홈페이지카페, 부티끄, 바, 갤러리, 커뮤니티 공간으로 채워질 컨테이너 파크 조감도. /사진:다운타운프로젝트 홈페이지
매주 테드(Ted)와 같은 강연과 뮤직 페스티벌이 열릴 공연장. /사진:다운타운프로젝트 홈페이지  매주 테드(Ted)와 같은 강연과 뮤직 페스티벌이 열릴 공연장. /사진:다운타운프로젝트 홈페이지
그렇다고 유명 건축가를 고용해 휘황찬란하고, 잘 계획된 도심을 디자인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기존의 작은 집들, 빈 사무실, 빈 창고를 개조해서 스타트업이 입주하고, 예쁜 카페와 가게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출발은 프로젝트이지만, 그곳에 뿌리를 내리고 살 사람들이 스스로 공동체를 만들어가도록 하겠다는 것. 그래서 그가 살고 있는 동네 아파트 담벼락에는 누구든 다운타운에 더 필요한 것을 제안할 수 있는 게시판이 있다.

프레몬트 남쪽 카지노의 거리 '스트립(Strip)'의 레스토랑에서 일하다, 다운타운프로젝트로부터 무이자 대출을 받아 레스토랑을 연 나탈리 영. /사진출처:다운타운프로젝트 홈페이지   프레몬트 남쪽 카지노의 거리 '스트립(Strip)'의 레스토랑에서 일하다, 다운타운프로젝트로부터 무이자 대출을 받아 레스토랑을 연 나탈리 영. /사진출처:다운타운프로젝트 홈페이지
역시 다운타운프로젝트로부터 무이자대출을 받아 패션숍을 연 사라 니스페로스. /사진출처:다운타운프로젝트 역시 다운타운프로젝트로부터 무이자대출을 받아 패션숍을 연 사라 니스페로스. /사진출처:다운타운프로젝트
다만 사람들이 지켜야 할 것이 하나 있다. 되도록이면 걸어서 다닐 것. 그래야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더 자주 부대낄 수 있으니까. 먼 거리를 가야 한다면 공유대의 자전거를 이용하고, 더 먼 거리를 가야 한다면 공유주차장에 마련해둔 전기차를 이용하면 된다. 그는 이미 100대의 테슬라 전기차를 주문해놓았다.

“우리의 목표는 서로 다른 생각과 배경을 가진 수많은 사람들을 이곳으로 불러 모으는 것이다. 밀집된 도시에서 협업을 하고 나눌 수 있다면 혁신은 절로 일어날 것이다. 이런 매직(마법)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을 더 마주치게 하는 것(collision)이다,”


그는 이곳 인구밀도를 현재 1에이커(약 1224평)당 14.5명에서 100명으로 올리겠다는 계획이다. 2004년 샌프란시스코에서 라스베가스 외곽으로 옮긴 자포스 본사도 이곳 옛 시청 건물로 곧 입주한다. 자동차 없는 보행자 위주의 거리를 만들려는 것도, 공연장에서는 '테드(Ted)'와 같은 강연을 매주 열려는 것도 사람들이 더 많이 마주치고, 공감하고, 협업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다운타운프로젝트’ 홈페이지에는 그날그날 이 거리에서 열리는 사람들 간의 다양한 만남과 이벤트가 공지되고 있다.

스타트업들이 함께 일할 코워킹 사무실 모습. /사진:다운타운프로젝트 홈페이지 스타트업들이 함께 일할 코워킹 사무실 모습. /사진:다운타운프로젝트 홈페이지
프레몬트 거리에 들어설 소규모 가게에 대한 아이디어를 불여 놓은 포스트잇. /사진출처:다운타운프로젝트 홈페이지 프레몬트 거리에 들어설 소규모 가게에 대한 아이디어를 불여 놓은 포스트잇. /사진출처:다운타운프로젝트 홈페이지
불모의 도시를 상대로 한 그의 거대한 혁신 실험이 그냥 꿈으로만 끝날 것 같지는 않다. 토니 셰이 외에도 이미 미국의 많은 젊은 창업가들이 예고된 성공을 뒤로하고, 더 이상 아무것도 잉태할 수 없는 불모의 땅으로 서서히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시 성공한 창업가 앤드루 양(38)이 2011년 만든, 비영리조직 ‘벤처 포 아메리카(Venture for America)’를 보자. 이곳은 브라운대, 듀크대 등 우수한 대학 졸업생들을 빈곤과 실업과 씨름하는 도시로 보내는 사업을 펼치고 있다. 그곳에서 창업을 배우고, 회사를 세우게 하자는 목적이다. 이들은 2년간 현지 스타트업에 합류해 일을 하고, 이후 펀딩을 받아 그곳에서 회사를 차리게 된다. 최근 파산을 신청한 디트로이트, 흑인들의 총격사건이 끊이지 않은 뉴올리언스 같은 곳에서 말이다.

 ‘벤처 포 아메리카(Venture for America)’ 창업자 앤드루 양. /사진출처:뉴욕타임스 ‘벤처 포 아메리카(Venture for America)’ 창업자 앤드루 양. /사진출처:뉴욕타임스
벤처포아메리카 사업 개념도. /출처:홈페이지(ventureforamerica.org)벤처포아메리카 사업 개념도. /출처:홈페이지(ventureforamerica.org)
현재 이 프로그램을 통해 108명의 대학졸업생들이 70개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다. 올해 신청자는 작년보다 2배 늘어난 550명에 달했는데, 이중 선발된 80여명의 평균학점이 3.6점일 만큼 선발 절차도 까다롭다. 로스앤젤레스 헤지펀드로부터 (달러로) 여섯 자리 연봉을 제안 받은, 클레몬트대 한 졸업생은 “나는 공동체에 거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곳에서 일하고 싶다”면서 억대 연봉을 뒤로 하고 ‘유령의 도시’로 불릴 만큼 비참한 몰골이 된 디트로이트로 향했다. 폐허의 땅에 새로운 희망을 써보겠다는 것이다.

창업자 앤드루 양의 말이 의미심장하다. “젊고 똑똑한 젊은이라면 새로운 것을 창조해야 한다. 더 이상 은행가와 컨설턴트의 길로만 가서는 안 된다. 인적자원의 재분배가 필요하다. 불모의 도시에 가서 뿌리를 내리고, 그곳에서 일자리를 만들고, 지역경제를 재건해야 한다. 이런 ‘마이크로 임팩트(작지만 강한 충격)’가 모이면 전혀 새로운 경제를 건설할 수 있다. 우리는 2025년까지 10만개의 일자리를 만들 것이다.”

이 모든 것은 기적 같은 현실이며, 현실 속의 기적이다. 그리고 큰돈을 번 사람이 어떤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해야하는지 정확한 지침을 주고 있다. 한국에도 많은 IT인재들이 창업의 대열에 합류하고 커다란 성공을 향해 매진하고 있다. 정부도 창조경제를 부르짖고 있다. 그러나 창업에 성공하고 창조경제를 만들어서 궁극적으로 어떤 세상을 만들겠다는 그림은 그려보지 않는다. 돈을 벌면 세상을 아름답게 바꿔야한다는 꿈도 함께 꾸면 좋겠다. 버려진 땅, 힘겨운 사람들이 행복한 도시를 만들고 살게 하는 것, 그것이 대박을 꿈꾸는 창업가들의 진짜 대박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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