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대 출신 회계사 10년새 1/3로 급감… 왜?

머니투데이 최우영 기자 2013.07.20 0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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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의 몰락-1회] 공인회계사 위세 '흔들', 업계엔 "서울대지수가 있다"는데…

편집자주 직업명 끝에 '사'가 들어간 전문직을 성공의 징표로 보던 때가 있었다. 이제 전문직의 입에서도 하소연이 나오기 시작했다. 낮아진 문턱과 경쟁 심화로 예전의 힘과 인기를 잃어버린 전문직의 위상을 돌아본다.

# 지난해 한 '메이저' 회계법인에 입사한 A씨(29)는 행정고시 응시를 고민중이다. 3년여 공부해 공인회계사가 됐는데 대기업보다 못한 초봉 3800만원을 받고 나니 속이 쓰렸다. 입사 4년차 선배 월급도 세전 350만원 가량이다. 올해 성과급이 200만원도 안 된다는 소문도 돌았다. 선배들은 "업무량이 2배 늘어도 성과급은 깎인다"고 씁쓸해했다.

# 지난해 9월 상장폐지된 업체의 소액주주들이 회계법인에게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으나 패소했다. 법원은 "업체 직원이 위조서류를 내 회계법인이 감사보고서를 잘못 만든 것"이라고 판시했다. 해당 회계법인 관계자는 "업체가 주는 서류마다 깐깐하게 검토하면 다음해 거래가 끊길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제대로 된 자료를 요청하지 못해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토로했다.



최근 10년간 CPA(공인회계사)로 진출하는 서울대 졸업생의 숫자가 1/3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한 회계사는 최근 10년간 CPA(공인회계사)로 진출하는 서울대 졸업생의 숫자가 1/3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한 회계사는


CPA(공인회계사) 위세가 예전 같지 않다. '1등 신랑감'은 커녕 부실법인 감사를 맡았다가 같이 해고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팽배하다. 부실법인 감사로 배정되면 퇴사까지 고려할 정도다. 감사적정의견을 제출한 뒤 부도 나면 회계사까지 도매금으로 제재를 받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반 경력직 공무원으로 옮기면 5급 대우(과장급)였지만 이젠 7급(주사급)에 불과하다. 이른바 '사'자의 굴욕이라는 지적이다.

한 회계사는 '서울대 지수'(SNU index)라는 말을 꺼냈다. 서울대 졸업생 업계입문 현황을 보면 호·불황 여부를 알 수 있다는 뜻. 2003년 148명이었던 서울대 출신 공인회계사는 지난해 58명에 불과했다. 매년 선발하는 1000여명의 회계사 중 2006년 이후 서울대 출신 회계사는 두자리 숫자에 머물러있다.



◇준고시급 공부해도 처우는 평범, 책임은 막대
2000년대 초반부터 회계법인 초봉은 거의 제자리다. 물가상승을 고려하면 처우가 악화된 셈. '회계법인 가격덤핑'이 원흉이다. 최근 5년 동안 감사수수료가 급락했다. 감사대상 기업은 성장했는데 수수료는 반토막난 경우도 있다. 사내복지에 돌릴 예산은 꿈도 못 꾼다.

수익을 맞추기 위해 업무량이 늘어나고 감사 '질'은 떨어진다. 자료 요청해도 비협조적인 업체가 부지기수. 부실감사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회계사들은 "수사기관도 아닌 우리가 자료제출 강제할 수도 없다"며 "상장사에 감사의견 부적정의견이라도 내면 주주들이 벌떼처럼 일어난다"고 하소연했다.

일반기업에 비해 회계법인의 장점으로 꼽혀온 것은 낮은 연차에 책임있는 일을 맡기는 풍토. 소규모 비상장사는 3~4년차 회계사가 감사보고서를 쓰기도 한다. 이는 업체의 자료제출 비협조로 인한 부실감사와 맞물리면서 고스란히 젊은 회계사의 '뒷감당'으로 돌아온다.


◇법인 내에서도 본연업무 '감사'보다 돈되는 '세무' 몰려
최근 부서 재조정을 한 S회계법인에서는 감사부서에서 세무부서로 옮기려는 회계사들이 급증했다. 경쟁률이 5대1을 넘었다는 후문이다. 부서이동에 실패한 한 회계사는 "감사가 회계사 '메인'이지만 잘해봐야 본전이고 부실감사 한번 나면 쪽박 찬다"면서 "세무조정은 내가 법리해석 잘해서 기업이 낸 세금 소급 받으면 성과급도 잘 나오고 리스크도 없는 '못해도 본전'"이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세무부서 인기 상승은 감사영역의 수익 정체 때문이다. 잇따른 부도기업, 상장폐지사에 대한 부실감사 타격을 회계법인이 고스란히 떠안으면서 4대 회계법인(삼일, 삼정, 안진, 한영) 모두 감사영역 수익이 정체됐다. 정운오 서울대 경영대 교수(59)는 "회계사 본연 업무인 감사가 IFRS도입 이후 챙길 것은 많아지고 수익은 잘 안 나는 '계륵'이 됐다"고 전했다. 이는 감사부서 성과급에도 영향을 미친다.

4대 법인 모두 4년 전부터 성과급이 하향곡선이다. 이 중 한 회계법인은 올해 성과급이 200만원도 안 나올 수 있다는 소문에 사내 분위기가 흉흉하다.

◇"지정감사제 도입이 대안" vs "자유시장경제 역행"
일부 회계사들은 지정감사제를 통한 감사수수료 책정과 감사업무 분담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B회계사(33)는 "금융감독원이 최소한 상장기업이라도 지정감사제를 실시해 주요 회계법인에 쏠린 업무량을 분산시켜 정상 감사가 이뤄질 수 있도록 보장해야한다"며 "권한도, 자료도, 충분한 기한도 보장이 안된 채 이뤄지는 부실감사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 내다봤다.

C회계사(35)는 "감사는 공익을 위해 정부에게 자격증으로 권리를 이양 받은 회계사가 '준공공재' 공급업무를 맡는 것"이라며 "정부개입 없이 자유수임제로 맡겨놓고 저축은행사태 등 터질 때마다 금감원이 '회계법인 감리 강화하겠다'고 말하는 건 무책임하다"고 거들었다.

반면 정운오 교수는 "기업별로 감사할 회계법인을 누가 지정해줄 것이냐"며 "금융감독원 등이 지정하게 되면 자유시장경제에 역행하는 것으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한 회계사는 "법인 고위층들이 자신들 영업력으로 감사 수주를 많이 따와 회사 키워놨는데 지정감사제로 돌리자고 하면 좋아하겠냐"며 "지정감사제 도입은 절실하지만 현실화가 쉽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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