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블룸버그
라나플라자에서는 무려 1100여명이 숨졌다. 불법 중축한 건물이 힘없이 무너져 내릴 때 이들은 공장 안에 갇혀 옴짝달싹도 못했다. 방글라데시 의류공장에서는 지난해 11월에도 100여명이 화마에 희생됐다.
눈여겨 볼 것은 대응방식. 크게 두 가지였다. 일부 글로벌 대기업들은 노동환경에 문제가 있는 업체와 거래를 끊었고, 일부는 노동환경을 개선하는 데 도움을 주겠다고 나섰다.
이에 반해 스웨덴의 H&M은 패스트패션 업체답지 않게 오히려 뒤로 돌아가는 전략을 택했다. 경쟁사들과 방글라데시 의류공장의 노동환경 개선에 도움을 주자며 협약을 맺은 것이다. 자라와 테스코 등 주로 유럽업체들이 참여했고, H&M이 메이저업체들 가운데 가장 먼저 서명했다. H&M의 '슬로(slow) 전략'은 과연 성공할까.
H&M은 사실상 라나플라자 참사와는 무관하다. 자체 규정상 라나플라자처럼 주거용빌딩에 들어선 공장과는 거래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H&M은 전 세계 하청업체들을 관리하는 데 똑같은 규정을 적용하고 있으며, 100명의 인력을 파견해 규정 준수 여부를 점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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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에서는 H&M이 노동환경 개선 협약을 주도한 게 방글라데시에 대한 생산 의존도가 워낙 크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H&M은 방글라데시 의류산업 최대 큰손이라서 어차피 발을 뺄 수 없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H&M이 그동안 거둔 성과는 눈여겨 볼만 하다. 대표적인 사례로 방글라데시 스웨터 회사 가리브&가리브를 들 수 있다.
H&M은 가리브&가리브가 10여년 전 다카에 5층짜리 공장 문을 연 이후 지금까지 최대 고객으로 남아 있다. 두 회사 관계에 위기가 닥친 것은 지난 2010년으로 공장에 난 화재로 여공 20명 등 21명이 숨졌다. H&M 감독관이 소화기 관리 문제 등을 지적한 지 불과 몇 개월 새 일어난 일이었다. 화재 여파로 가리브&가리브는 6개월간 문을 닫았고, 그 사이 몇몇 바이어들은 철수하거나 물품 인도를 거부했다.
하지만 H&M은 떠나지 않았다. 화재 이전과 다름없는 주문을 냈고, 화재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을 지원했다. 안전관리 규정도 강화했다. H&M이 가리브&가리브 전체 매출의 70%를 책임지고 있던 때였다. 덕분에 가리브&가리브는 돈을 융통해 공장 시설을 개선하고 다시 문을 열수 있었다.
이후 H&M은 감독관의 불시 방문 횟수를 한 달에 한 번에서 두 번으로 늘렸다. 라나플라자 참사 뒤에는 감독관의 방문이 더 잦아졌고, 점검 강도도 세졌다.
역시 방글라데시 의류회사인 DBL그룹도 H&M의 장기적인 안목과 유연한 전략의 덕을 봤다. DBL그룹이 운영하던 한 공장은 노동시간 초과 문제로 H&M과 마찰을 빚었는데, H&M은 공장과 협의해 납품기한을 일부 늘려주는 식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아울러 H&M은 정상적인 근로시간 내에 생산성이 더 큰 팀에게 보너스를 주는 식으로 근로 규정 준수를 유도했다.
이에 반해 DBL그룹의 공장과 같은 문제로 갈등을 빚었던 월마트는 '무관용 정책'에 따라 거래를 끊었다.
가리브&가리브, DBL그룹의 사례는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H&M이 방글라데시에서 거래하는 공장만 166곳이 넘는 탓이다. 더욱이 최근 캄보디아에서는 H&M 모르게 재하청으로 이 회사 제품을 만들던 공장이 무너져 20여명이 다치는 사고가 나기도 했다.
전문가들도 월마트와 H&M의 전략을 놓고 옥신각신하고 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소매업체들이 열악한 노동환경에 눈을 감지만 않으면, 가리브&가리브나 DBL그룹처럼 빠르지는 않지만 변화가 일어난다는 사실이다.